점화효과 (Priming Effect)와 기폭제 (Trigger)
나이키 매장에 가면 새 신발의 산뜻한 고무냄새와 섞인 나이키만의 냄새가 있습니다.
이 나이키 냄새와 관련된 흥미로운 연구가 있습니다.
나이키는 매장에 시트러스 계열의 상쾌한 향을 사용하여 고객들에게 신선하고 에너지 넘치는 느낌을 제공하였습니다.
이것은 나이키의 브랜드 이미지와도 잘 맞아떨어졌는데요.
이러한 상쾌한 향은 스포츠에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켜 고객의 매장 내 채류 시간을 늘리고 구매 의사를 향상시킵니다.
실제로 나이키가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나이키 매장에 향을 더하자 이전보다 고객의 구매의사가 최대 80%까지 증가되었습니다.
큰 선거에서 투표를 하러 집을 나설 때 선택할 후보나 정책을 미리 정해두시는 편인가요?
2000년 애니조나 선거구에서 학교 재정 지원 증가 안에 대한 투표가 있었습니다.
당시 투표를 분석한 결과 학교 안에 설치된 투표소가 다른 곳에 설치된 투표소보다 학교 재정 지원 찬성 비율이 훨씬 높았습니다.
심지어 교실과 사물함 사진이 투표소 근처에 배치된 것만으로도 학교 재정 지원에 찬성할 확률이 높아졌다는 실험도 있습니다.
선거에서 내 가치관에 근거한 투표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외부의 영향을 받는 실험을 보면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외부의 자극 (소리, 냄새, 이미지, 단어 등)에 의해 이후의 의사결정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을 점화효과 (Priming Effect)라고 합니다.
만약 병아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과일로 주제를 바꾸면 자연스럽게 바나나를 떠 울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에서 바나나가 아침 대용으로 좋다고 이야기를 나누다 'SO_P'에 빈칸을 채워 단어를 완성하라는 퀴즈를 보면 비누(SOAP) 보단 수프(SOUP)를 떠올릴 확률이 높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떠오르셨나요?
점화 효과라는 강력한 연상 작용을 유도하기 위해선 기폭제(Trigger)가 필요합니다.
보통 기폭제는 소리, 냄새, 이미지, 단어 등에 숨어 있습니다. 나이키의 향기, 투표소 근처의 학교 이미지 같은 것이죠.
한 사례를 예로 들어볼게요.
짧은 영상을 보고 의견을 나누는 실험이 있었습니다.
이 영상의 시작에 IBM 로고를 보여줬을 때보다 애플 로고를 삽입했을 때 참가자들은 더 높은 창의성을 발휘했습니다.
이 실험에서 각 회사의 로고 이미지는 기폭제입니다.
애플 로고라는 기폭제는 애플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업 이미지를 참가자들에게 상기시켰고 이는 뒤에 이어진 논의에서 참가자들의 창의성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기업들은 점화효과를 통해 자사 제품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와 구매가 이루어지길 유도합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브랜드는 고객에게 내재된 기폭제 (국적, 문화, 세대 등 학습하지 않아도 이미 내재되어 있는 기폭제)를 자극하거나 새로운 기폭제를 학습시키기 위해 온갖 마케팅 활동을 합니다.
이 산뜻한 오렌지색 박스를 보면 어떤 브랜드가 떠오르시나요?
1940년대 2차 세계대전 중에 기존의 베이지색 포장지 부족으로 인해 우연히 사용하기 시작한 에르메스의 오렌지 컬러는 이제 에르메스의 고급스러움, 우아함, 희소성과 창의성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IT 기기로 잠시 눈을 돌려보죠.
2022년 애플의 애플워치 울트라가 미국 $799, 한국 1,149,000원이라는 고가로 출시되었습니다.
애플은 애플워치 시리즈 중 최고가 제품인 애플워치 울트라에 어울리는 이미지는 연상시켜 줄 기폭제가 필요했습니다.
고객에게 단순히 가격이 비싼 제품이 아닌 최고 성능의 혁신, 창의, 희소성을 지닌 명품으로 포지셔닝(positoning)시키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것은 컬러입니다.
바로 오렌지색이죠.
애플워치 울트라의 오렌지 컬러는 고객에게 최고 명품의 고급스러움과 희소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올해 갤럭시워치 울트라가 출시되었습니다.
갤럭시워치도 오렌지 컬러를 메인 컬러로 선택하였네요.
갤럭시워치가 애플워치의 전략을 카피한 것 아닌가라고 실망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브랜드에서 긍정적인 편향 사고를 유발하는 기폭제를 공유하는 브랜드나 제품들은 무궁무진하니까요.
그리고 당연하게도 애플워치가 손목에 올려진 최초의 오렌지색 시계도 아닙니다.
신뢰도가 높은 연예인을 보험회사의 모델로 사용한다거나, 침대 =? (정답은 과학)이라고 퀴즈를 내거나, 고배기량의 엔진 소음을 들려주는 스포츠카 브랜드처럼 1차원적인 점화효과를 유도하는 광고 사례는 무궁무진합니다.
그런데 최근 출시된 기아의 새로운 프리미엄 세단 The new K8 광고는 좀 더 우아한 방식을 사용하네요.
[The new K8 | The Priceless | The Brightest Days] <링크>
이 광고에 멋진 신차의 다이내믹한 주행 장면은 들어있지 않습니다. 실내 인테리어가 얼마나 고급스러운지, 외관이 얼마나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인지, 연비는 어떤지 등은 강조하지 않죠.
부모님의 추억을 되살려주는 아들과 부모님의 과거 장면들이 절묘하게 교차편집되고 격정적인 BGM 'IL MONDO'가 어우러져 보는 이로 하여금 광고가 아닌 단편영화 한 편을 본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신차에 대한 큰 호감을 만들어내죠.
부모님의 추억, 아버지와 아들의 가족애 -> The priceless -> The new K8 로 이어져 순차적으로 호감을 점화합니다.
인류에 깃들어져 있는 가족애를 신차에 대한 호감의 기폭제로 사용한 올해 본 가장 인상 깊은 광고였습니다.
The Scent of PAGE라는 교보문고향 디퓨저가 있습니다.
나이키 매장과 마찬가지고 교보문고에서 고객의 서점 내 채류시간을 늘리기 위해 조향 된 향인데, 고객들의 요청으로 일반에 판매된 제품입니다.
고객들은 이 향을 통해 집에서도 서점과 같은 차분함과 편안함, 집중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긍정적인 점화 효과를 유도하는 기폭제를 소비자들이 스스로 찾은 팬덤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점화효과의 기폭제는 보통 소리, 냄새, 이미지, 단어 등에 숨어있는데 사소한 몸의 움직임도 기폭제로 작동하곤 합니다.
사소한 행동이 우리의 무의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연구한 실험들이 있습니다.
한 실험에서, 사람들에게 새 헤드폰을 나눠주고 헤드폰으로 오디오 품질 테스트를 할 테니 지시대로 머리를 움직여 달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절반은 머리를 위아래로 끄덕거리는 지시를, 나머지는 좌우로 흔들라는 지시를 받고 헤드폰에 대한 평가를 진행했습니다.
평가 결과를 모아보니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인 긍정의 제스처를 한 사람들이 헤드폰에 훨씬 더 좋은 점수를 줬습니다.
비슷한 실험으로 강제로 웃는 얼굴을 연습한 사람과 찡그린 얼굴을 연습한 사람이 동일한 만화를 봤을 때, 웃는 얼굴을 했던 사람들이 만화에 더 높은 평가(더 웃기다고)를 주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앞선 두 실험을 보면 긍정적인 태도와 행동은 더 높은 확률로 긍정적인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는 주제의 책들이 유행했는데 우리는 의외의 곳에서 그 해법을 찾을 것 같네요.
지난 글 한 줄 요약 : 열등한 선택지를 제공하여 다른 선택지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을 디코이 효과(Decoy Effect)라고 하는데 세 가지 옵션 전략은 디코이 효과를 가장 극대화할 수 있다.
이번 글 한 줄 요약 : 외부의 자극 (소리, 냄새, 이미지, 단어 등)에 의해 이후의 의사결정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을 점화효과 (Priming Effect)라고 하고 이 점화 효과를 유도하기 위해선 기폭제(Trigger)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