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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시로바로앉는여자 Oct 04. 2021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셔츠를 들추어 배꼽을 확인했다_ 엄마인터뷰

일곱 살 때 엄마 손을 붙잡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인천제일교회'였던가 맥아더 장군이 상징인 자유공원 가는 길에 뾰족하고 예쁘게 솟은 하얀 지붕이 인상적이다. 최근에 엄마 인터뷰를 하며 느낀 것이지만 당시 7세, 5세, 3세의 딸 셋을 키우는 32세 엄마는 요란한 마음을 붙잡아주는 ‘어떤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종교를 갈망하기보다는 그 시간을 갈망했을 것이다. 주말엔 나와 둘째 동생을 데리고 교회에 가는데 그 시간이 엄마에게 자유의 시간이었던 듯했다. 아이 둘은 어린이 예배에 가면 예배 후 성경학습 및 레크리에이션 시간까지 최소 2시간은 엄마에게 자유의 시간이 주어진다. 이름도 자유공원인 곳, 벤치에 앉아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고, 볕이 좋은 날 이웃과 잠깐 만나 자판기 믹스커피 한잔 했을 것이다. 

그 시간이 집이 아닌 곳에서의 2시간이라 좋았고 2시간이 7일을 버텨줄 엄마의 영양제였겠지.     

대구로 이사 가기 전까지 5년을 꽤 열심히 다니셨다.


그러나, 교회를 선택하기까지 엄마는 큰 고비를 넘기셔야 했다. 이것 또한 최근에서야 안 일이다. 엄마의 이야기를 정리하자니 딸의 무심함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것이 보인다.  마치 뇌에 힘든 사건들은 모두 잊어버리라는 명령어를 심어 넣은 듯 가정사의 중요한 시련과 고비는 나의 기억에서 백지가 되어 있었다. 아마, 춘매여사님 이야기가 무르익을수록 병원에 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선택적 기억 상실증'이란 게 있다고 하더라.   

  


엄마가 교회를 간 다음날 밤이었다. 꿈속에서 무서운 목소리가 귓가에 쩌렁쩌렁 울렸다. 영화에서나 나오는 듯 한 괴상한 변조 음성으로 계속 소리친다. 오래된 납량특집 드라마‘M’을 아시나 모르겠다. 거기서 심은하가 M으로 빙의되면 목소리가 변조된다. 엄마는 분명 드라마 M의 목소리라고 하셨다.

'거기 가지 마'

'거기 가지 마'

'거기 가지 마'

엄마는 너무 무서워 잠을 깨고 꼴딱 세웠다. 잠이 들면 무서운 소리가 들릴까 봐 눈을 감지 않으셨다. 그다음 날 밤에도 잠이 들기 힘들었고 잠깐 잔 사이에 괴상한 음성의 소리가 계속 들렸다.

'거기 가면 너 죽일 거야'

'거기 가면 너 죽일 거야'

'거기 가지 마 '

'가지 마.'

엄마가 찾고자 하는 하느님은 엄마 안의 다른 신과 영역다툼을 하고 계신 걸까. 다음 주말이 오기 전까지 매일 밤의 꿈은 엄마를 시험에 들게 하였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마태복음 6장 13절)     

시험에 든 엄마는 악으로부터의 구원을 받으신 걸까. 토요일 밤에 꿈을 꾼 그날... 꿈속에서 있는 힘껏 외쳤다고 한다.

" 그만 나가. 내가 선택한 일이야. 교회에 나갈 거야. 꺼져!!!! "

    


이 문장을 엄마 입을 통해 듣는 순간 내 얼굴에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엄마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던 당시에 지금의 나처럼 자신을 일으키기 위하여 무언가를 하고 싶었으리라. 그것이 종교든 취미든 생계든, 육아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엄마의 절규였다. 

춘매 여사는 몸이 허약했지만 정신이 매우 강한 사람이다. 중요한 순간마다 아빠는 도망쳤고 엄마는 버티고 이겨냈다. 아빠가 교통사고 났을 때에도, 막내가 교통사고 났을 때에도, 보증금 사기를 당했을 때에도. 아빠가 문 뒤로 숨어 가쁜 숨을 몰아쉴 때 가느다란 엄마는 척척 모든 일을 나서서 해결해 갔다. 


이제야 기억난다. 

일전에 엄마의 꿈이 무엇이었냐고 물었을 때 수녀님이 되고 싶었다 했었지. 왜냐고 묻지 않았다. 순수한 엄마는 '수녀님'이 잘 어울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예쁜 것을 참 좋아하시니까. 수녀님이 되려다 예쁜 꽃과, 예쁜 옷에 생각이 온통 팔린 엄마는 쫓겨날 것이 분명하니까. 수녀의 꿈을 가졌던 엄마, 예쁘고 아름다운 것에 몰두하는 엄마. 육아의 고단함에 몸부림치던 엄마, 아빠와의 문제로 시련 앞에 기댈 곳 없어 맞서서 해결점을 찾았던 단단한 엄마.

내가 잘 몰랐던 엄마의 시간이다.      

일주일 동안 꿈속에 나타나 엄마를 괴롭힌 사탄을 춘매 여사가 물리친 것일까? 

일요일, 단단하게 마음을 한 번 더 여민 후 교회에 나가셨고 그다음 날부터 꿈을 꾸지 않으셨다고 했다.    


2023년 9월 30일 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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