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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시로바로앉는여자 Oct 17. 2021

사라져 버렸다.

셔츠를 들추어 배꼽을 확인했다_엄마인터뷰


1995년 4월 28일. 

고3 0교시 수업을 끝낸 8시 40분부터는 보통 도시락을 까먹거나 쪽잠을 잔다. 요즘 고3들도 이러한지 모르겠다. 7시 50분에 무려 0교시 수업이 있다. 

그날따라 창을 활짝 열고 밖을 바라보며 잠을 쫓느라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큰 폭발음이 들렸다. 너무나 커서 자다가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달콤한 고 3의 쪽잠을 단번에 깨울 만큼 강력했다. 짙은 연기가 굉음과 함께 솟구쳐 올랐고 무엇인가 허공을 날아다녔다. 무엇일까? 눈을 껌벅이는 순간 두 번째 폭발음과 코를 마비시키는 탄 냄새. 큰일이 일어났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고 10분 후 교내방송이 나왔다.

" 잘 들으셔야 합니다. 여러분. 아직 학교에 오지 않은 친구가 있거나 우리 학교 근처의 학교에 가족이 등교를 하는 집 학생들은 선생님께 확인해주세요. 그리고 바로 1층에 내려와서 집에 전화를 하세요. 학교 앞 지하철 공사장에서 가스가 폭발했습니다."


지하철 공사장이라고?

그 앞은 백화점 공사와 지하철 공사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고 무려 3개의 고등학교와 2개의 중학교가 밀집해 있는 큰 사거리다. 아침에 지각을 하여 허둥지둥 달려가는 학생들과 공단과 회사로 가는 근교에서 오는 만원 버스가 줄 서 있는 곳이다. 모든 게 불타고 있었다. 역한 냄새에 구토가 올라왔다. 자동차, 사람, 공사 부자재가 뒤엉켜 타고 있었다. 허공에 날아오른 물건은 명확한 형채의 자동차였고 공사장 철구조물과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교실은 아비규환이었고 사고 현장 앞에 학교에 재학 중인 동생을 둔 친구들은 비명을 질렀다. 이날 하루는 가족의 생사 확인하는 작업으로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쾌쾌한 냄새는 우리들의 감정을 더욱 요동치게 만들었다. 지금 돌이켜보건대 근처에 사는 많은 이웃들은 한집 건너 한집 사고에 가족을 잃거나 부상을 당했던 것 같다. 101명 사망에 200여 명이 부상이라고 공식 기록이 있지만 그날 이후로도 꽤 많은 부상자는 근처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사망자 100명 중 50여 명은 중학생이다. 우리 학교에도 2명의 학생이 사망하여 3일 후 애도 미사를 지냈다.

몇 날 며칠 타는 냄새는 우리를 따라다녔다. 학교에서든 독서실에서든 집에서든. 냄새가 몸에 들러붙어 기생하고 있는 것 같았다. 냄새로 만든 옷을 입은 것 같았고 슬픔과 뒤범벅되어 기분과 마음은 한없이 가라앉아있었다. 밥을 먹다가도 냄새가 올라와 수저를 놓아버렸고 주말에 코미디 프로를 보면 죄책감이 올라왔다. 봄꽃은 화려한데 슬퍼 보였고 친구들은 쉬는 시간마다 창밖을 보며 멍 때렸다. 

한 달이 지났을까... 그때까지도 우리는 웃지 않았다. 그런 사건 한가운데 또 우리엄마의 예지몽이 있었다. 예지몽이라고 했지만 사실, 먼저 안다고 한들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사고 당일 엄마와의 대화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선명하다.

"우리는 다 괜찮지만 아이들이 불쌍해서 어쩌니... 어제 꾼 꿈이 생생해서 불길했는데 이런 큰일이 일어났구나"

엄마가 간밤에 꾼 꿈이 아이들의 죽음을 암시했다는 것에 허무함이 밀려왔다. 몇 시간 먼저 알았다고 달라질 게 없잖아. 

"상여행렬이 눈앞에 길게 펼쳐졌고 맨 앞에 꽃상여가 지나가더라. 나는 신기한 광경을 계속 바라봤어. 그랬더니 꽃상여가 멈추고 거기서 하얀 옷을 입은 아이가 나왔지. 나를 보고 웃었어. 아이고 예쁘네. 네가 왜 거기서 나오니 나는 물었지. 그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상여 안으로 들어갔고 다시 긴 행열이 계속되었어. 엄마는 하염없이 바라보며 꿈에서 깼다 "

우리는 상여행렬 속 가족이 되어 '불쌍해서 어쩌나'를 외치며 어느덧 곡을 하고 있었다. 가는 길 외롭지 말라고 함께 울어달라고 꿈에 나타났니 얘들아.

95년 4월의 사건은 대구는 슬픈 영혼이 가득한 곳으로 기억되었다. 몇 년 후 또 큰 대형사건이 터졌고 그 후로 친정집에 갈 때에도 지하철을 타지 않았다. ‘타지 못했다’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면서 사진처럼 남아있던 장면을 기억해냈다.

수능을 치고 난 후 평화롭기 그지없었던 12월 초 동성로 한복판 버거킹 창가에 앉아 친구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검은 발바닥이 훤히 보이는 슬리퍼에 뜯어지고 남루한 거적때기로 포대기를 만들어 강아지 인형을 업고 있었고 한 손에는 개목줄을 잡고 생기 없는 눈으로 시내 한복판을 중얼거리며 다니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저 아주머니 봄부터 저러고 다녀... 듣자 하니 지하철 가스폭발 사고 때 두 아이를 잃었다고 하더라. 너무 불쌍해. " 친구가 말했다. 이후에도 3번 정도 더 본 것 같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아주머니는 이를 보이며 자주 웃었다. 그녀의 눈에 아이들이 웃고 있었을까.   


엄마의 꿈은 무섭고 슬프다. 귀신이니 죽음이니 하는 소재가 눈앞에서 펼치지고 그것이 기가 막히게 맞을 때가 많으니까. 엄마의 예지몽이 나에게 큰 힘을 발휘한적은 없었고, 미리 알아서 불행을 막았던 적도 없었다. 

어쩜 들으면서도 허무했던 엄마의 꿈이야기. 그런데,  허무가 아니고 엄마의 정성인걸까 생각해보았다. 본인으로서 모든 기운이 다하기를.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꿈은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는 엄마의 마음.

인간이 일어날 사건사고를 먼저 안다고 하여도 세상은 달라질 것이 없다. 학교에 가고 회사에 나가고 일상을 살아내는 것이 마땅한 것이라서. 미래를 아는 예언자일지라도 지금 나의 일상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 해야 할 일들 하는 것은 지구 종말이 가까워진다 해도 멈출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의 유년에 엄마의 예지몽 및 무서운 꿈에 내가 귀를 그렇게 기울이지 않게 된 이유다. 그런데 하나씩 껍질을 벗겨낸 과거의 기억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던 꿈인 것 같다. 이제 나의 과제는 살면서 그것들의 실체를 분류해보는 것이리라.    

과거는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2023년 10월 1일 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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