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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시로바로앉는여자 Aug 16. 2024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우주에서 헤매다 만나자

매년 브런치공모전이 뜰 때쯤이면 브런치 플랫폼이 외롭게 내 묵은 글들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챈다. 기대와 열정의 글쓰기가 탈락과 반응 없음의 응답을 들으면 한풀 꺾여서 한동안은 들어가고 싶지 않을 터. 나만 이런 건 아닐 것이다. 잘 있었니? 나의 배설감정들, 보잘것없는 하소연들.

그럼에도 차곡차곡 올해 나의 생각을 또 정리해 보려고 들어왔다. 한동안 책 속으로 도피해 있었다. 많이 읽었다고 잘 쓰는 것은 아닐 텐데 다시 하반기를 힘내서 써보고 싶어졌다. 나에게 아주 큰 이슈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부모양육검사를 하라고 연락이 왔다. 학부모지원센터에 상담을 어렵게 신청해 놓았기에 신청에 성공한 사람만 가능한 검사다. 도대체 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매월 공지가 뜨는데 대기를 하고 있다가 시간이 되면 몇 초의 지체도 없이 바로 클릭을 해야 간신히 신청이 된다.  

지난주 검사한 결과를 가지고 심리상담사와 비대면으로 상담을 하는 날이다. 나는 우리 애가 어떻고 저떻고 세세하게 필기를 해놓았고 (그렇지 않으면 횡설수설할 것 같아서 병원에 갈 때도 디테일하게 적을 목록을 출출력해서 의사에게 건넸다) 그것을 가지고 상담사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이의 서사와 아이가 어떻게 그렇게 바뀌었는지 선생에게 고자질하듯 잔뜩 부정적인 것들을 쏟아냈다. 그리고는 눈물을 흘렸다. 상담사에게 위로받고 싶어 하는 다 큰 어른의 쇼맨쉽이다.  최근 웬만한 눈물은 다 흘려보냈다 생각했는데 '저기요' 하고 시작한 나의 떨리는 음성 소리를 듣고 눈물버튼이 눌러졌다. 아이는 하루하루 같은 듯 다른  양상의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급발진이 무서워 자동응답기처럼 기본적으로 나누어야 할 대화만 주고받고 있다.


검사 결과를 같이 보자며 보여준 결과지를 보자니 앞에서 풀어놓은 아이의 부정적인 이야기는 나로부터 비롯된 것임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그래프를 따라가다 놀랍게 짧게 끊겨버린 '합리적인 설명'과'지지와 응원' 부분은 내가 아이를 바라보는 객관적인 지표라고 했다. 어떤 사안에 대해 길고 친절하고 섬세하게 설명하고 안되면 될 때까지 자꾸 시도하는 것이 엄마의 역할이라고. 칭찬과 지지의 언어와 표현이 부족하지 않았나. 

맞아요 선생님. 저 그런 사람이에요. 

나는 할 말만 했으면 좋겠고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전화나 연락이나 메시지도 필요한 부분만 전달하고 받기만 하는 소극적인 커뮤니케이터다. 좋은 쪽으로 이야기하자면 아이가 잘못하거나 못해도 

"괜찮아" 이 정도만 얘기하는 잔소리하지 않는 엄마.  왜 괜찮은지, 다음번엔 왜 안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과감히 생략했다. 그게 아이를 위한 것이라 생각했지 '설명이 부족한 엄마'인 줄 몰랐던 것이다. 

도덕성과 연결된 다소 긴듯하지만 꼭 필요하면 섬세하고 친절하게, 될 때까지 설명하는 것. 나도 참 듣기 싫어했던 아이다. 

'친절하고 섬세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은 참 어렵다. 나는 자신에게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었으니까. 몸에 배지 않은 것을 어렵게 해 나가는 일은 이제 하고 싶지 않은 나이가 되었으니까. 요즘처럼 지치도록 덥다고 매일 하던 일을 안 할 수가 없는 것처럼 아이의 곁을 지키는 어른을 포기할 수가 없겠지. 한 여름에도 매일 저녁밥을 짓고 새로운 국을 만들고  요리블로거의 신기방기 레시피를 시도하는 것처럼 아이의 마음에 들어가기 위해 방법을 달리하여 이 관계를 평화롭게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그도 살고 나도 살고. 

상담 한번 받았다고 신이 나를 도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다시 시도해보려 한다. 친절해지자. 다정해지자. 상냥해지자, 눈높이를 낮추자.  

아이는 키만 큰 아가다. 생리하는 어린이다. 전두엽이 고장 나 사고가 멈췄다.

이런 주문을 외워본다.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

그 '처서'가 왔다. 매일밤 30도의 온도계를 보며 뒤척이던 시간도 곧 귀뚜라미 소리 들으며 어디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공기에 행복감을 느끼며 잠을 청하기도 하겠지. 절기의 힘을 믿으며 아침을 맞이하는 것처럼 나는 나의 힘을 믿어보기로 하자. 이럴 때 잘해보려고 수많은 책 속에 고개를 파묻지 않았나. 미묘하게 기분 좋은 처서의 공기는 곧 도착할 예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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