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창님 사연] Best Drivers

사연 제공 : 한규창 님

by 김작카

취업난에, 코로나에, 등록금 마련에 힘들고 정신없이 바쁜 요즘 대학생들에게 조금 미안한 얘기가 될 수도 있겠다. 보통은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나의 대학시절 때를 말하자면 수시로 뿌려지는 최루탄 향기 속에서도 낭만은 건재했고 요즘처럼 1학년 때부터 취업을 향해 달려야 하는 중압감도 없던 참 좋은(?) 때였다. 뭐 요즘 학생들은 모를 고뇌와 시대의 울분이니 하는 얘기로 우리 때가 더 힘들었다고 애써 포장하고 싶지 않은 맘을 이해 바란다.


수업도 끝났겠다, 중간고사도 끝났겠다. 그날따라 유난히 하늘은 높고 우리가 나누는 말은 살이 쪘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살쪄가는 말들 사이로 덜덜 거리는 소리 하나가 비집고 들어왔다.

소리 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려보니 예상했던 대로 어딘가 많이 아파 보이는 차 한 대가 우리 쪽으로 오더니 곧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리는 사람도 연식이 좀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군대도 아직 안 간, 같은 과 후배였다. 차에 대해 물어보니 짐 정리 문제로 아버지 차를 잠깐 끌고 나온 거고 며칠 후 폐차할 거라 했다. 우린 굴러가는 게 신기하다며 놀렸지만 떠나갈 시간이 얼마 안 남은 차에 타보는 것도 기억에 남을 경험이라 생각하여 모두 기꺼이 올라탔다.


처음엔 가볍게 한 바퀴 돌고 가볍게 하차할 생각이었지만 말처럼 쉽나. 학교 근처를 한 바퀴 다 돌았을 때 뭔가 아쉬운 표정의 선배가 한 마디 꺼내고야 말았다. “혹시 내일 수업들 있어?” 마침 세 명 모두 수업이 없었다. 선배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강원도 가자” 조금 뜬금없었지만 많이 기뻤다. 익숙한 만큼 지겹기도 한 이 공간을 완전히 벗어난다는 설렘에.


비슷한 나이끼리 모여 직접 차를 끌고 강원도까지 탈출하는 것은 모두 처음이었다. 집에 전화는 해놨지만 서울을 벗어나기 전까진 긴장했었는데 영동고속도로 이정표를 보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야호 소리를 질렀다. 완전한 해방감을 맛본 것이다. 그렇게 도착한 강원도는 신비의 세계였다. 서로 교대로 운전하며 신나게 강원도를 헤집고 돌아다녔다.


짧은 시간 압축적으로 돌아다닌 뒤 설악산 구경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가려는데 문제가 생겼다. 아무리 키를 돌려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핸드폰도 없고 보험사에 도움 요청도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뭔가를 더듬대다가 겨우겨우 보닛을 열어 봤으나 우리가 뭘 알겠는가. 서로의 눈만 끔벅끔벅 쳐다볼 뿐이었다. ‘혹시 너 차 볼 줄 아는 거 아니었어?’ 하는 표정으로.


그때 건너편에 줄줄이 서있던 택시에서 기사님들이 하나둘 내리더니 우리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오?” “아, 차가 시동이...” “잠깐 나와 봐 우리가 좀 볼게” 기사님들은 마치 자기 차처럼 여기저기 세심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쎄루모타가 나갔네” “쎄... 쎄무 옷 타요?” 차에 대해 운전경력이 쌓이고 나서야 뜻을 이해했는데 ‘스타트 모터’의 일본식 발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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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들은 서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야기하며 최선의 방법을 상의하셨다. 그러고는 근처 가게에 가서 전화를 빌려 잘 아는 정비업소에 빨리 와달라고 요청했다. 서울에서 온 학생들인데 오늘 꼭 고쳐서 올라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한 시간도 안 되어 정비사가 오셨고 거짓말처럼 시동이 걸리게 되었다. 기사님들은 학생들이니 돈도 조금만 받으라고 하시면서 끝까지 우리를 챙겨주셨다.


철없던 시절, 무작정 떠났던 강원도 여행에서 우리는 기사님들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어떤 관광지에서보다 더 큰 감동을 받으면서 서울로 돌아왔다. 그 후, 강원도는 우리에게 가장 좋아하는 지역이 되었다, 그뿐 아니라 누군가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주저 없이 도와줄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된 계기를 마련해주셨다.

감사합니다. 그때 그 기사님들. 당신들은 연예인도 유명인도 아니지만 제 가슴에 유일한 강원도 홍보대사입니다.

-한규창-



저도 남의 인생이 잘 굴러가도록 도움이 될 수 있는

고마운 사람이고 싶습니다. :)

-김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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