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제님 사연] 아버지, 내 안에 새겨진 그의 흔적

사연 제공 : 조양제 님

by 김작카

내 인생에 가장 고마운 사람, 고마운 사연이 무엇이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한 것은 아마도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글의 내용이나 글의 솜씨를 떠나 그런 글을 쓴다는 그 순간이 오히려 벅찬 감사의 순간으로 다가온다. 늘 당연한 듯 살았던 나였기에, 늘 내가 잘 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 오만함이 바이러스처럼 내 정신 속에 살아있었기에 이 글을 쓰는 순간이 나를 겸허하게 만들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순간이어서 참 고맙다.


아버지와 아들, 가까이 하기에는 참 먼 당신 사이다. 주변에 보면 아버지와의 사이가 유쾌발랄한 경우는 거의 보기 드물다. 정적, 묵직함, 어색함, 불편한 에너지가 둘 사이를 흐른다. 너무 닮은 둘인데도 나이를 먹을수록 말수도 줄고 스킨십도 줄어든다. 내가 아버지를 보는 시선도 그렇지만 내가 아버지가 되어 자식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렇다. 엄마와 딸은 친구처럼 백화점도 잘 쏘다니는데 아버지와 아들은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그 둘 사이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서로 표현하는 것이 냉장실에서 냉동실로 옮겨간 정도라고 보면 된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냉동실에 보관중인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려 한다. 어릴적 우리 집안은 가난했다. GOD의 노랫말에 나오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신 어머니의 그 가난을 나도 겪었다. 아버지는 경남 함안에서 리어카를 끌고 경기도 부천으로 이사 오셨다. 아들 둘, 딸 하나를 먹이려고 사람들이 많은 대도시로 왔다. 부천에서 처음 하신 일이 막노동이었고 일수 놀이었다. 난 아버지가 나름 살림살이를 키워갈 때 즈음 태어났다. 그리고 고사리 손으로 아버지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일수 수금하는 곳을 따라다녔다. 가끔 수금하는 곳에서 어린 놈이 귀엽다고 사탕 하나, 과자 하나 주는 게 아버지를 따라 다닌 보상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돌아다니는 게 재밌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참 많은 얘기를 해줬다. 사람들 얘기, 세상 살아가는 얘기 등등 어린 놈이 듣든지 말든지 아버지가 깨달은 세상 이야기를 오토바이 기름 새듯이 나에게 흘려보내줬다. 난 그 말들 중에 90%는 길거리에 다시 흘려 보내고 겨우 10% 정도만 내 속에 담았던 것 같다. 집에 있을 때 아버지는 나에게 한자를 가르치셨다. 웬만하면 거절하고 게으름을 피웠을 텐데 엄하지 않게, 재밌게 가르치셨다. 그때 내가 배운 한자실력이 평생을 갈 줄은 전혀 생각 못했다. 내가 책을 좋아하고 대학도 국문과에 들어간 것이 아버지의 영향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아버지는 책을 참 많이 읽으셨다. 그리고 본인이 읽고 깨달은 내용을 아들에게 이야기해주셨다. 내가 국문과에 들어갔을 때는 시조 쓰는 법을 알려달라고 하며 자기의 생각을 사사조의 시조 틀 안에 담아 표현하셨다. 글자 수는 어떻게 그리 잘 맞추시는지 전공자인 나도 감탄할 정도였다. 읽는 책의 종류도 참 다양했는데 특히 심령과학 서적이나 주역, 역사서 같은 책을 많이 읽으셨다. 아버지 덕에 한단고기를 처음 만났고 우리 민족의 역사가 많이 왜곡되고 쪼그라들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심령과학의 경우는 조금은 무섭지만 흥미진진한 귀신의 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었다. 심지어 귀신을 쫓아내는 제령도 몸소 시범을 보여주셨다.

알게 모르게 내 몸 속, 내 정신 속에는 아버지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세상의 돈 있는 놈, 힘 있는 놈들 앞에서 당당한 정신도 나는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 당당함이 어떨 때는 오만함으로 둔갑하는 게 난처할 정도로 아버지의 흔적은 아주 강하게 남아 있다. 내 나이 50이 넘어가면서 친구들의 아버지들은 이미 세상을 뜨시거나, 치매에 걸리시거나 요양원에 들어가 계신다. 그런데 내 아버지는 아직도 정신이 또렷하고 목소리도 크시다. 그것도 감사할 일이지 않을까 싶다.


아버지의 고마움을 생각하다 보면 고맙다는 생각보다 미안하다는 생각이 더 크다. 그만큼 받은 것만 많고 해 드린 게 없다. 사실 그게 이 땅의 모든 자식들이 갖는 공통된 양심이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더 하다. 막내라서 슬쩍 뒤로 빠지고, 사는 게 팍팍하다는 핑계로 여기저기 고장이 많이 나는 아버지의 다리를 주물러 드리러 가지도 못했다. 워낙 가치관이 꼿꼿해서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지도 못하시는데 그 외로움을 달래줄 대화상대도 못 해드렸다. 그래서 이 글을 쓰다 말고 전화를 드린다. 귀도 잘 안 들려서 목소리는 더 커지셨다. 그게 참 안타깝다.

우리가 느끼는 고마움의 대상은 사실 거창한 게 아니다. 표현이 얼어붙어서 차마 꺼내지 못한 사소한 것들이 많다. 고마움은 가까운 곳에 숨어 있다. 그리고 가능한 드러내지 않으려고 더 깊은 곳으로 숨는다. 그러다보니 고마움을 받은 우리는 당연한 듯이 살고, 표현은 냉동실에서 몇 십년간 꽁꽁 얼어붙어 있다. 내가 지금 냉동실에서 아버지의 기억을 꺼냈듯이 이 글을 읽는 모두는 각자의 기억 속에 가족에 대한 고마움 하나는 꼭 있을 것이다. 단 하루라도 그 얼어붙은 기억을 꺼내어 표현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게 어떨까 하는 소박한 마음이다.

-조양제-


아이에게 고마워 네가 아빠의 내일이라

널 위해서 뭐든지

또 무리해서 못할 짓 없어

-싸이 <We Are Young>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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