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소독약 냄새를 맡을 때마다 소환되는 그리움이 있다. 2006년에서 2007년으로 넘어가는 그해 겨울, 난 병원에 입원해있었다. 점을 빼기 위해. ‘무슨 점을 빼는데 입원까지 해?’ 생각할 수 있지만 평범한 점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마에 있던 점인데 크기가 무척 컸다. 열세 살이 되도록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피부 아래로 더 커져만 갔다. 결국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했다. 입원 전날까지만 해도 딱히 두려움이나 슬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엄마가 숨죽여 우는 걸 보기 전까진.
전신마취로 시작해 다섯 시간이 넘는 큰 수술이 끝났다. 부모님은 내가 빨리 안정을 취할 수 있게 1인실을 계속 알아보셨는데 쉽게 자리가 나지 않았다. 그 전까지 별 수 없이 6인실에서 지내야만 했다.
마치 뇌수술을 한 것 마냥 두꺼운 붕대를 머리에 칭칭 감은 신기한 내 모습에 눈길이 쏠리는 게 당연하긴 하겠지만... 하루 종일 나를 주시하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들 정도였고 자주 드나드는 외부인에 온갖 약 냄새, 앓는 소리들까지 모든 게 나에겐 힘들었다. 특히 내 맞은편 침상에 계시던, 화상수술을 무려 40번 넘게 하신 아주머니는 집에 두고 온 딸 생각이 난다면서 유달리 나를 챙겨주는 오지랖(?)을 보였다.
퇴원하면서 두 번 다시 여기 올 일 없다고 생각했는데, 두 달 뒤 2차 수술을 하게 되었고 운명인지 다시 전에 있던 6인실로 배정되었다. 당시 화상환자였던 아주머니는 여전히 그 자리에 누워 계셨다. 한번의 인연이 다시 이어진 데 것에 마음이 움직인 걸까, 아주머니와의 불편했던 관계는 점점 편안한 사이로 변해갔다. 저녁 8시면 항상 그 아주머니와 산책을 다니기까지 했으니까.
그날도 여느 때처럼 병원 로비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들고 한 바퀴를 돈 다음, 병실로 돌아왔다. 아주머니는 누우러 먼저 들어가시고 나는 화장실에 들렸다. 팔을 둘러싼 여러 개의 링거 줄을 정리하고, 그날따라 유난히 독한 항생제 냄새를 맡아가며 옷매무새를 다듬으려 일어나던 순간까지가 화장실에서의 마지막 기억이다. 화장실 간다던 아이가 소식이 없어 걱정 되어 일어선 아주머니 덕에 나는 쓰러진 채 발견되었고, 응급처치 후 2시간은 잠들어 있다 깨어났다. 항생제 부작용으로 인한 쇼크였던 것 같다.
고맙다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엄마에게 아주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병원에 오래 있다 보면, 별 일 다 겪고 별 꼴 다 보니깐, 남한테 관심도 많아져요. 그래도 빨리 발견했으니 다행이지 뭐~”
다음날, 엄마가 오시더니 짐을 싸기 시작했다. 1인실 자리가 났다며 말이다. 난 엄마에게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나 그냥 6인실 있을래, 여기 좋아”
같은 방 당뇨를 앓고 계시던 할머니께서 "아가, 병실 식구 다 됐네~"라며 해맑게 웃으셨다. 오랜만에 방안에 있던 모두가 웃었다. 맞은편 아주머니도 화상자국으로 뒤덮인 얼굴 사이로 힘겹게나마 웃음을 보이셨다.
생명의 은인이기도 한 그 아주머니와 13살 겨울을 그리 우울하지 않게 도와준 6인실 식구들. 이제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기억에서 희미해졌지만... 본인들이 아프고 힘든 만큼 다른 사람의 아픔까지 챙기고 안아 준 그 분들에 대한 고마움은 희미해 질 수 없다. 지금은 소독약 냄새에서 벗어나 부디 건강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