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님 사연] 그때는 몰랐던 고마움

사연 제공 : 박성철 님

by 김작카

나는 어린 시절 삼 남매의 막내로, 나름 여유 있는 가정에서 부러울 것 없이 자랐다. 그 여유로움은 얼마 못 가 끝났다. 아버지가 다니던 직장이 부도를 맞았다. 한동안 쉬다가 출근하면 다시 부도가 나는 운명을 두어 번 겪으시더니 재기할 기력도 없는 듯 주저앉으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는 가족력으로 물려받은 간질환으로 힘겨워하셨다.


큰 형 학비와 어머니 병원비는 물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잘못 쓴 사채 빚까지 계속 불어났다. 결국 나와 누나는 남(?)의 집살이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외사촌 누나 댁에 맡겨지게 된 것이다. 언제까지일지도 모른 채. 아무리 친척 집이고 아무리 우리 나이가 어렸다지만 불안하고 불편하고 미안한 마음이 생기는 데는 도리가 없었다. 당시 외사촌 누나에겐 나보다 어린 아들 둘이 있었는데 나는 그들을 챙겨주는 형이 되어준 걸로 그 미안함을 살짝 덜 수 있었다.


지금 짐작해보니 사촌 매형이 외항선원으로 일을 하셨기에 일 년에 한 달 정도만 집에 계시는 상황이라 나와 누나가 같이 생활할 공간이 생겼던 것 같다. 나를 형이라고 불렀던 조카들과 그 집에서 2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을 가족처럼 살았다.


우리 남매가 늘 눈치를 보며 살았지만, 외사촌 누나는 전혀 눈치를 주지 않으셨다. 삼시 세 끼를 어머니처럼 챙겨 주셨다. 단 한 번도 우리 남매를 남이나 더부살이하는 식구처럼 대하지 않고, 어쩌다 한번 들리는 친척 동생들처럼 살갑고 반갑게 대해 주셨다.

사연의 주인공 성철님과 외사촌 누님의 사진


그 뒤로 우리 집에서 외숙모께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 일로 우리 집과 외숙모 집안은 등을 돌리게 되었고, 외사촌 누나의 마음과 상관없이 나와 누나도 그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 외 다른 여러 사람에게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우리 가족은 야반도주까지 하게 되었다. 외가 친척과의 인연도 자연스레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병상에 계셨고, 우리 남매들은 성인이 되어갔지만, 가난을 통해 가족이 똘똘 뭉치는 건 영화 <기생충>에서나 기대할 일이었다.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외 가족 간의 갈등을 겪은 후, 지금은 나 하나만 세상에 남아있을 뿐.


지금 나는 경제적으로는 어려움 없이 지내고 있지만, 가끔씩 색 바랜 앨범을 펼칠 때마다 가슴 한편이 가난해진다. 흑백사진들 속에 등장하는 어린 시절 외사촌 누이 생각의 모습은 앨범을 덮고 나서도 가슴 한 구석에 계속 맴돈다. 어린 시절 끊긴 연락을 복원할 수도, 어른들 간의 불화로 잘린 인연을 수습할 길도 없다. 그저 앨범 속의 사진 두어 장으로만 남아 있다.

외사촌 누나는 당시 30대 주부였고, 아들 둘 키우기도 힘들었을 텐데, 나이 어린 외사촌 동생을 둘씩이나 2년을 어떻게 키웠을까? ‘옛날 엄마들은 그랬으니까’라는 말로 치부할 수 없는 매우 힘들고 어려운 결정이자 생활 그 자체였으리라 생각한다.

어린 시절, 왜 그 고마움을 더 깊이 느끼지 못했을까? 이제 와서 이름 석 자로는 찾을 길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오늘 회사로 가는 길에 있는 소나무 한 그루를 유심히 보았다. 공원 사이에 유독 높고 꼿꼿하게 솟아 있는 장송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을까? 외사촌 누나에게는 전할 수 없는 고마움이 누군가에게 또 다른 고마움으로 전해지길 기대해본다.

-박성철-


"힘겨운 하루를 보낸 내 가족들의 낮은 숨소리

어린 날 보살펴 주던 내 누이의 고마운 추억이 있죠"

-이승환 <가족> 중에서-


-김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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