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구님 사연] 나홀로여행에서 얻은 마음 '푹'~

사연 제공 : 이현구 님

by 김작카

이십대의 마지막 해, 호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혼자 떠나는 첫 해외 배낭여행’이었다. 띄엄띄엄 영어학원에 다니며 회화 연습을 하긴 했지만 현지인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기에는 실력이 한참 어설펐고, 3개월이란 짧지 않은 기간도 초보여행자인 나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누구의 간섭도 없이 오롯이 혼자 낯선 나라를 떠돌아 보고 싶었던 꿈이 드디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구글맵 같은 테크놀로지는 상상도 못할 때라 내 손에는 늘 작게 접은 종이지도가 꽉 쥐어져 있었다. 첫 도시인 시드니에 도착한 지 며칠이 지난 어느 오후, 나는 다운타운 중심가를 걷고 있었다. 차이나타운을 먼저 둘러본 후 항구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달링하버까지 걸어갈 참이었다.


차이나타운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시드니의 여느 동네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중국의 어딘가에 와 있는 듯 아시아 음식과 물건을 파는 상점들이 복잡하게 이어졌고, 나와 같은 검은 머리의 사람들이 거리에 가득했다. 그 풍경을 사진에 담으려고 목에 걸고 있던 카메라를 잡았다. 앗,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카메라 케이스는 사라지고 카메라만 맨몸으로 매달려 있었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이번 여행을 위해 구입한 디지털카메라와 세트로 깔맞춤하고 싶어 저지른 코발트빛 케이스였다. 어딘가 길 위에 떨어뜨린 것이 분명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주변을 돌아다니며 구석구석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메 아이 헬프 유?”라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드니 눈앞에 키가 작고 가무잡잡한 피부의 청년이 서 있었다. 바로 앞에 작은 식료품 노점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땅바닥만 바라보며 주변을 서성거리는 내 모습이 눈에 띄었나 보다. 나는 파란색 카메라 케이스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가 찾는 걸 도와주겠다며 가게를 옆 가게 여자에게 맡기고 나를 따라나섰다. 난 방금 만난 낯선 사람의 친절이 어리둥절했지만 직감적으로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자신의 이름을 ‘푹’이라고 소개한 인도네시아 청년은 내가 올 때 어느 길로 왔는지 묻더니 내가 왔던 길을 꼼꼼히 되짚으며 앞서 걸었다. 10분이 넘게 되돌아 걸었지만 케이스는 보이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지친 나는 이제 그만 포기하겠다고 했다. 푹은 정말 괜찮겠냐고, 자기는 시간이 있으니 내가 원하면 좀 더 찾아보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 괜찮았다. 물건을 잃어버린 속상함을 함께 해준 친구 덕분이었다.


우리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달링하버까지 함께 걸었다. 3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지만 얘기하는 게 즐거워 시간이 무척 짧게 느껴졌다. 해가 기웃 저물 무렵 달링하버에 도착한 우리는 연락처를 주고받은 후, 내가 시드니를 떠나기 전 달링하버에서 같이 맥주를 마시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그때 다시 만나 맥주를 같이 마신 것은 물론이고, 우리는 25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지낸다.

푹을 만난 그날 이후 나는 사람의 만남과 관계에 대해 새로운 눈을 갖게 되었다. 익숙하고 오래 묵은 인연이 더 소중한 줄로만 알았는데, 때론 찰나의 만남이 가장 빛나는 인연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기회를 빌려, 그동안 수많은 여행길에서 마주쳤던 어려운 순간마다 나를 구원해 주었던 낯선 인연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현구-


“해외여행 중 호의를 베푸는 누군가와 곧 만나기로 했다는 현구님의 글을

동호회 카페에서 보았을 때...모두들 좋겠다, 재밌겠다는 댓글을 달았지만

전 조심하라는 댓글을 달았네요. 저의 인도에서의 경험까지 들어가며...

고마움은 숨겨진 나쁜 의도가 없을 때 빛을 발합니다.

다행히도 HG님은 인덕이 많았는지, 우연히 만난 그들의 대부분이 좋은 이웃이었고

지금은 아일랜드에서 푸른 눈의 멋진 오빠 존과 결혼해 잘 살고 있습니다.”

-김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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