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진님 사연] 인생은 잘 몰고 있지?

사연 제공 : 최호진 님

by 김작카

훈련소를 마친 후 서울 근교의 부대로 자대배치를 받았을 때의 일이다. 수송부대였던 까닭에 도로운전 교육을 받게 되었다. 사실 난 운전면허가 있었고 운전도 할 수 있었지만, 교육은 운전면허 여부를 가리지 않고 필수였다.


허름한 군용차 한 대에는 나를 포함 갓 전입한 이병 세 명에, 군무원인 운전교관이 올라탔다. 선임이 탄 것도 아니니, 이병들 입장에서 그만한 자유 시간은 없었다. 선임들 눈치 볼 필요도 없지 부대에 가면 쏟아지는 많은 사역에서 벗어날 수 있지, 시내 드라이브까지 할 수 있는 환상의 시간이니 말이다. 아무리 먼 거리 주행이라도 누구 하나 피곤한 기색 없이 다들 초롱초롱한 눈과 넘치는 힘으로 운전교육을 즐겼다.


그날은 내가 운전대를 잡는 순서였다. 모처럼 운전이 탄력을 받았던지 속도가 제법 나오기 시작했다. 그 전날 소나기로 길 중간중간에 물웅덩이가 고여 있었다는 것도 깜박한 채 말이다. 성수대교를 건너던 중 갑자기 차창에 물 폭탄이 내리쳤고 당황한 나는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차는 그 자리에서 두세 바퀴를 돈 후에야 겨우 멈춰 섰다. 앞쪽에 물웅덩이가 있었는데 차가 빠르게 돌진하니 물이 튀어 오르며 창으로 들이닥친 것이다. 그럴 땐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멈추면 되는데, 눈앞이 안 보이니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고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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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연히 교관에게 혼찌검이 날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평소에 엄하고 깐깐했던 교관은 기대(?)와 달리 아무 일 없었던 듯 운전자만 바꾸고 교육을 계속 진행했다. ‘돌아가서 날 잡겠구나.’ 생각을 했는데, 그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식사시간에야 조용히 나에게 말을 꺼냈다. 평소에 운전을 잘했으니 너무 맘고생 말고 좋은 경험을 얻었다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얻은 것이 많았으니 앞으로 비가 많이 오면 그런 경험을 할 것이라고 하면서 이번 일과 비슷한 상황이 와도 절대 당황하지 말라는 따뜻한 조언까지 함께 해주는 것이었다.


모두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상황이 생기면 누구나 평정을 잃게 되고 당사자를 호되게 질책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다. 그런 당연한 선택을 버리고, 다른 방법으로 오히려 더 좋은 교육효과와 감동을 주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에 돌아와 비슷한 일이 몇 번 발생했을 때 아무 문제없이 잘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을 살면서 특별히 고마운 사람을 생각해내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길을 선택하고 보여줬던 그 당시의 운전 교관이 가장 고마웠던 분으로 떠올려진다.

-최호진-


“열심히 살게 해 줘서 고마워요”

-강풀 웹툰 중에서-


-김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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