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곤님 사연] 고마운 일은 매일 있어

사연 제공 : 김대곤 님

by 김작카

저는 ‘소모임’이라는 앱을 통해 '서울독서여행, 채움'이라는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김대곤이라 합니다. 5월의 마지막 주 어느 날 우리 모임은 서울의 다른 독서 모임과 교류를 하기로 했습니다. 알고 지내던 친구들은 물론 새 얼굴들을 만나고, 좋은 강연까지 들을 수 있어 더 설레던 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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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 이론의 재해석'이라는 강연 주제에 살짝 부담은 느꼈지만 선뜻 모임에 동참해 준 친구들이 고마워 차에 친구들을 태우고 신나게(?) 강연장을 찾았어요. 강연장에선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기묘한 이야기가 펼쳐졌고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이지 않고, 절대적이다."라는 알쏭달쏭한 결론이 강연자의 입에서 나올 때쯤, 내가 강연을 괜히 들었나 하는 막막함이 밀려오더라고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강의를 듣는 친구들 모두 저와 비슷한 표정이었어요. 1부 강연이 끝나고, 우린 빨리 그곳을 떠나 우리끼리 대화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강연장이 있던 연희동에서 1시간 가까이 차로 이동해 수락산 자락에 있는 한 카페에 도착했을 때, 제 눈이 뒤집어지고 모두가 놀랄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차 안에 있어야 할 가방이 없어진 겁니다. 강연장에서 나올 때 분명히 어깨에 메고 있었는데 말이죠. 평소 뭔가를 잘 두고 오는 습관에 강의장에서의 몽롱함이 더해졌기 때문일까요. 가방 안에는 책, 지갑, 다이어리 등 여러 가지 소중한 것들이 들어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물건은 노트북이었습니다.


10년 동안 한 회사에서 몸담아 축적해 놓은 자료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음은 물론 다다음날 월요일 아침, 회사 대표님과 구성원들에게 보고하고 공유할 중요한 문서들까지 담겨 있었어요. 순간 몸이 휘청이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가방의 행적을 찾아야 하는데, 시간은 계속 흐르고, 어디서 부터 가방을 찾아야 하는지 엄두조차 나지 않을 때였죠. 동행했던 친구들과의 기억을 조합해, 차로 이동하기 직전까지의 기억을 정리했습니다. 이대로 영원히 가방을 분실하게 된다면, 월요일 아침 나는 어떻게 될까? 하는 막막함과 두려움이 몰려오던 때였어요.


우리가 방금 듣고 온 상대성이론의 한 자락처럼 시간과 공간이 휘어지는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혼자서 차를 몰고, 연희동으로 다시 향했습니다. 차를 세워둔 주차장 인근을 배회하며 어딘가 두고 갔을 가방을 찾기 시작했죠. 상황은 꽤 절망적이었습니다.


장소는 유동인구가 많은 거주자 우선의 주차구역이었고, 우리가 다녀간 그 시간대는 피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지나갔을 테니까요.

만약 누군가 가방 안을 들여다봤다면, 대부분 혹 했을 겁니다. 현금이 들어있는 지갑, 노트북, 타인의 일상을 훔쳐볼 수 있는 다이어리 등 귀중품이 아주 많았으니까요.

넋 나간 얼굴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 일본식 가정 백반 가게에서 나온 젊은 사장님이 저를 부르시더군요.


"저기 혹시 가방 찾아요?", "네?"

꺼져가던 희망의 불씨가 살아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 네! 맞아요! 혹시 여기 놓고 간 제 가방 보셨나요?", "따라오세요!"

그렇게 주인장을 따라 가게 안에 들어갔더니, 한 구석에 놓여있는 제 가방을 건네주는 게 아니겠어요? 가게 안에는 손님들도 많았지만, 몹시 기쁜 나머지 두 손으로 가방을 끌어안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장님, 정말 감사해요!",

"아니, 이렇게 소중한 가방을 왜 길 위에 놓고 가는 겁니까?",

"제가 몹시 부족하여, 이런 실수를 가끔 하곤 합니다. 사장님, 제가 어떻게 사례를 해 드려야 할까요? 방법을 알려주세요.",

"사례는 됐고, 다음에 가게에 오셔서 맛있는 음식 드시고 가세요. 그거면 됩니다.",

"꼭 오겠습니다. 사장님! 꼭 올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가게 안에서 식사를 하던 손님들도 대충 상황이 감지됐는지, 우리의 모습을 보며 희미한 미소를 보이더군요.

그렇게 가방을 차에 싣고, 집에 돌아오는데 '소중함', '귀중품', '고마움'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소중함? 그건 내 과거가 담긴 것들. 귀중품? 그건 내 미래, 그리고 회사와 동료,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 고마움?

그건 이렇게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지만 내가 잘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모든 것들이라고, 그때 깨달았어요.

그 이후는 어떻게 됐냐고요? 월요일 아침, 저희 팀은 회사의 대표님께 무사히 보고를 드렸고, 팀은 상반기 회사의 에이스가 된 것만큼 큰 칭찬을 받았습니다.

가게는 다시 가봤냐고요? 아직이요. 글을 쓰며, 잊고 있던 고마운 사람이 생각났거든요.

이 글이 세상에 나오면 글을 들고 작은 성의를 보이러 반드시 갈 생각입니다.

저랑 같이 저녁 드시러 가지 않을래요? 물론 제가 쏩니다.

- 김대곤 드림_Dream.



"야 차현석!

심야영화 보여줘서 고마웠어

사물함 빌려준 것도 고마웠어

몰래 학교 다니게 해 주려고

민수 아빠에게 쇼해준 것도 고마웠어

우리 할머니...

장례식에 가줘서 고마웠어

해강예고 데려다줘서 고마웠고

친구놀이해준 건 진짜 고마웠어

한때나마 친구로 돌아와 줘서 고마웠어.

가짜였어도

불쌍해서 그랬어도

동정으로 그랬어도

그 마음 고마웠어...

(중략)

잘 지내 차현석~"

-드라마 <두 번째 스무 살> 중에서-


-김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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