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집에 있는데 웬 모르는 아저씨들이 집안에 훅~ 쳐들어왔다. 누구세요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 TV며 냉장고며 빨간 딱지들이 일사천리로 붙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압류 딱지였다. 그들의 표정은 무서웠다. 무섭게 생겨서가 아니라 너무도 덤덤한 무표정이어서 무서웠다. 그만큼 내 안의 마그마도 덩달아 끓어올랐다.
당시 난 건드리지 않아도 폭발하는 중2병 중환자였다. 내가 아끼던 카세트에까지 딱지가 붙었을 때 폭발했다. 마침 늘어진 테이프에선 Queen의 Bohemian Rhapsody가 거짓말처럼 흘러나왔다. Just Killed the man이라는 가사에 힘입어 아저씨의 손에 들린 딱지에 이단 옆차기를 날리는 상상을 하는 중... Mama~가 다시 이어졌고 놀라서 주저앉은 어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할 수 없이 상상을 접었다. 아저씨들은 알아듣기 힘든 어려운 말을 하고 돌아갔고 나는 약국에 달려가 사온 청심환을 어머니 목에 넘겨드리면서 누군가를 떠올렸다. 애증의 이름 아버지...
권위적이면서 비즈니스 감각도 얼마간 있었던 아버지는 사업을 벌이길 좋아했고 그만큼 말아 드시는 것도 좋아했다. 가족과 상의도 없이 투자하고 사업을 키우다가 그만 큰 빚을 지게 되었다. 빚을 갚을 길이 없자 집은 물론 가전에까지 경매에 붙여지게 된 것이다. 번듯한 양옥집 라이프는 얼마 안 가 끝이 났다. 대학 때까지 반지하 전월세를 전전했다.
비오는 날이면 에어리언 산란관 같은 비닐을 천정에 붙이며 비를 받아내는 게 일상이었다. 그날 집달관 아저씨들의 딱지 붙이는 표정이나 비닐을 천정에 붙이는 내 표정이나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빚은 비처럼 막아도 막아도 끝이 없었다. 오히려 복리처럼 무섭게 몸집을 불렸다.
학교에서 나는 늘 웃고 다녔지만 내 얼굴에 어느 순간 드리워지는 깊은 그늘의 정체를 알아채는 친구는 거의 없었다. 김작카 선배도 나를 늘 웃고 거침없는 말투에 장난치기 좋아하는 다정·다혈 후배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대학 3학년이 되었다. 1,2학년 때와 마찬가지로 알바로 등록금에라도 보태기 위해 눈에 불을 켰다. 마침 벤처 붐이 일던 때라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벤처회사에 겨우 자리를 얻어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다. 그날도 일을 나가기 전 집에서 눈을 붙이고 있는데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초인종이 연속으로 울렸다. 대문을 여니 이웃어른이었다. 내 인사는 받은 체 만 체 '어이구~이 사람아' 하면서 아버지가 있던 안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영문도 모른 채 따라간 내가 보게 된 건 삼류영화의 한 장면처럼 당혹스럽고 충격적이었다. 사업실패에 절망한,..그럼에도 누군가 나의 괴로움을 알아줬으면 하길 바란 아버지의 음독 현장이었다.
정신없이 병원으로 모시긴 했지만 한숨을 돌리고 나니, 아버지의 치료보다 병원비가 더 큰 걱정으로 몰려왔다. 의료보험이 적용 안 되기 때문이었고 그간의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보탠다 해도 턱없이 모자랐다.
회사엔 이런 사정 때문에 못 간다고 미리 연락은 해놓았었는데 저녁에 회사 선배 한 명이 병원에 찾아왔다. 이런저런 위로를 해주고 돌아가면서 봉투 하나를 조용히 내밀었다. 열어보니 어림잡아도 오십만 원이 넘을 법한 돈이 들어있었다.
자본 없고 인원도 얼마 안 되는 회사라 직원인 그 선배 월급도 백만원 남짓했고 집안 형편도 썩 좋지 않았는데 그보다 더 어려운 내 사정을 알았던 것이다.
“마침 오늘이 월급날이라서 그래. 난 총각이라 크게 돈 쓸 일도 없어, 이 돈이 너에게 더 필요하고 잘 쓰일 것 같아”고 웃으시면서 건네주셨던 돈 오십여만원. 그 돈은 나에게 오백만원 이상의 가치로 다가왔다. 끝을 알 수 없는 캄캄한 터널 속에서 나를 용기 있게 나아가게 해준 구원의 손길이었다.
다행히도 인연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직장 선후배 관계를 넘어 이제 가족동반 여행도 다니며 함께 나이 들어가는 인생 선후배로 이어지고 있다. 많이 혼내기도 하고 그만큼 더 많이 격려도 해주시는 내 인생의 사수.
아직 오십만원은 갚지 못했고 받으시길 원하지도 않지만 내 삶을 통해 더 값지게 갚아나갈 것이다. 지켜봐주세요. 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