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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보노보노 Nov 22. 2019

일상의 슈퍼히어로

알고 보면 우리 생활 곳곳에 슈퍼히어로들이 숨어있다.

슈퍼히어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 주변만 봐도 마블 영화를 안 본 사람이 없을 정도니,

말 다한 것 아니겠는가.



일상에는 보기 힘든, 나의 삶을 구원해줄 어떤 위대한 존재. 우리는 그런 존재가 나타나기를 내심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를 만난 날은 어떤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그는 지하철 철도 위로 떨어진 나를 구출하기 위해 갑자기 옷을 찢고 날아오르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 대단한 씬을 기대하게 했다면 죄송하다.


여느 날처럼 모든 것에 권태로움을 느끼던 날이었다. 그날도 나는 택시를 타야 했다. 나는 이제 막 추워진 날씨에 스타킹을 신고 나온 스스로를 탓하며 옷깃을 여미고 택시를 타러 가고 있었다.



택시를 타자마자 나온 것은 깊은 한숨이었다. 생각보다 내 한숨이 꽤나 묵직하게 나온 모양이었다.

택시 기사님이 조용히 말을 거셨다.


혹시 제가 잘못한 게 있나요?


? 방금  닫고 탔는데 벌써 불만이 있을 리가요. 물론 10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12번 출구에서 기다리고 계셔서 몇 보 더 걷긴 했습니다만.

그런 걸로 뭐라고 할 만큼 저 그렇게 쪼잔하진 않아요 택시 기사님.


여러 가지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으나, 오해하실까 우려되어 빠르게 대답했다.


아, 아뇨. 다른 일로 한숨을 내쉰 거예요.


기사님은 내 대답을 들으시고는 질문하신 이유에 대해 말을 이어 가셨다.


사실, 바로 전 손님과 싸움이 있었어요.
콜택시가 아니라서 호출 비용도 받지 않는데 손님이 만나기로 한 장소에
제때 나와있지 않았거든요.

처음 시작부터 그랬는데,  그 손님이 도착지에서 갑자기 다른 사람을 태우고
다시 출발지로 가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 경우엔 미리 말을 해줘야 하는 거거든요.


..  손님과 다툼이 있으셨던 모양이었다. 속이 상하신 듯했다.


뜨끔했다. 나는 택시가 잘 안 잡히는 곳에 사는 터라, 7분 이상 택시가 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일이 꽤 자주 있었다. 그래서,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내려가기 전에 미리 택시를 호출해놓곤 했었다. 하지만, 가끔 2분 이내 거리에 계셨던 기사님들이 나보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시는 경우도 없진 않았다.


괜스레 미안해져 택시 하시다 보면 힘드신 일이 많으시겠다며 위로를 건네고, 화제를 돌렸다.


제가 한숨을 쉰 건...

먼저 마음을 열고 힘든 말을 꺼내신 터라, 택시에 오르자마자 내가 한숨을 쉬었던 이유를 얘기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택시기사님이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셔서 대답을 해드렸는데, 들으시더니 갑자기 우냐고 물으셨다. 내 목소리가 낮고 떨림이 있어서 우는 줄 오해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사소한 것에도 오해해서 미안하다며 사과를 건네셨다.


우는 것 같다고 말해서 미안해요.
말 한마디가 참 중요한 건데...


툭 뱉으신 말에 많은 생각이 오갔다. 직장에서 누군가 무심코 내게 건넨 농담 속에 섞인 진담이 상처가 되었던 기억, 힘들었던 일들이 순간적으로 수면 위로 둥실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이거, 받아요.


잠시 생각에 빠져있었는데, 박카스 한 병을 움켜쥔 손이 내 앞으로 쑥 내밀어져 있었다. 순간, 사고가 멈추었다. 뭐지?


조심스레 박카스 병을 건네받았다. 갑자기 받은 위로에 순간적으로 놀라 박카스 병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기사님은 별다른 위로의 말을 건네는 대신 집에 가서 먹으라는 말만 하셨다.


주변에서 위로의 말은 수없이 들었고 내게 친절한 사람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왜인지 이 박카스 한 병만큼의 위로는 처음 받아보는 것 같았다. 흔한 위로의 말과는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저보다 기사님이 더 필요하신 것 아니에요?


나보다 더 피로하실 텐데, 자신이 마실 것을 내어주신 것은 아닌가 하여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의외로, 기사님은 박카스를 많이 가지고 다닌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본인도 힘들면서 왜 나를 챙겨주시나 싶어 가슴이 괜히 먹먹했다.


내가 만난 슈퍼히어로는 이렇듯 평범했다. 상처를 쉽게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일상의 슈퍼히어로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실수도 하고, 화도 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특별함은 주위를 둘러보며 다른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끌어올려 주는 슈퍼파워로부터 나온다.


사실 이 능력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내가 힘든데 누굴 챙겨’라는 마인드로 살아간다. 맞다. 본인이 힘든데 누군가를 챙기는 것은 초능력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잠재된 능력이지만, 누구나 발현하는 능력은 아니기에 그렇다.


 능력을 끌어내는 데에는 힘이  들어가지만, 그만큼 발현할만한 가치가 있다. 타인의 위로는 누군가에겐 극복하지 못할 것 같았던 하루를 살아낼 수 있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무심코 건넨 위로가 더 큰 위로가 되어 돌아왔듯이, 나 혼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그 진흙탕에서 나를 구원할 슈퍼히어로는 내가 지금 무심코 지나친 그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은 마치 퍼즐처럼 서로 연결되어있다.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이끌어 올려줄 수 있는 구조의 사회에 살고 있다.


내 손을 잡아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면, 누군가의 손을 먼저 잡아보는 것은 어떤가. 조금 더 힘들고, 조금 더 손해 보더라도 슈퍼히어로를 일상에서 만나는 기쁨을 누군가는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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