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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의적 백수 Jan 29. 2020

37. 내가 백발을 고집하는 이유

염색한 지 25년, 젊은 꼰대

나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비슷하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왜 염색 안 하세요?', '머리가...' 등등. 대부분은 머리카락의 색깔과 관련된 말들이다. 처음 염색을 하기 시작한 것이 아마 중학교 즈음이었으니, 지금까지 25년 정도는 염색했다가 안 했다가를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회사 다닐 때에도 1년의 절반 정도는 염색을 안 하고 지냈고, 지금은 쭉 안 하고 있으니, 거의 백발이다. 어떤 이들은 (주로 미용실 헤어디자이너 선생님들) 탈색을 몇 번을 하고서라도 만들고 싶은 색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가끔 염색도 안 하고, 커트만 하고 가는 검은 머리의 사람들을 부러워하곤 한다.


사실 염색을 하는 건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미용실에서 앉아있는 시간이 최소한 1시간 30분에서 많게는 2시간은 걸리니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귀차니즘 말고도 내가 백발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만만해 보이지 않기

졸업할 때까지, 그리고 군대를 전역할 때까지도 열심히 염색을 하고 다녔다. 그런데 회사생활을 하면서는 염색을 안 하게 되었다. 물론 광고회사라는 특성상 가끔은 노란 머리를 할 때도 있었고, 회색을 할 때도 있었지만, 그런 회사의 자유로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로 PD 일을 하면서 습관적으로 안 하게 되었다.


사내방송 PD라는 일은 늘 임직원들을 섭외해서 인터뷰를 해야 하는 게 다반사다. 그런데 남들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한국인들의 성향도 있어서인지 섭외가 쉽지는 않다. 재미있게도 회사는 직급만으로 나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백발인 내 모습은 인터뷰를 한결 수월하게 만든다. 섭외도 더 잘 되고, 촬영협조도 잘 됨은 물론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언젠가부터 염색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한 번은 어떤 팀에 촬영하러 갔는데, 거기에 앉아계시던 팀장(부장급)님이 갑자기 일어나셨다. 멀리서 나이 든 누군가 찾아와서 깜짝 놀라신 듯싶었다. 그러고는 수월하게도 촬영은 진행되었다. 촬영이 끝날 때까지도 물론 내 직급이나 나이를 굳이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AE를 하면서 어떤 상사는 이런 이야기를 해 주신 적이 있다. 입사 10년 차에 처음 AE업무를 하고 있으니, 늙은 신입을 위한 조언이었으리라. 노안에 백발인 나의 모습이 탐탁지 않아하시기보다는  'AE는 광고주한테 만만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 그러니 굳이 나이가 적다고 염색할 할 필요는 없다.'라고.


한국은 아직도 전형적인 꼰대 문화가 있다. 나이가 많아 보이면 존대를 하고, 조심을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무시하고 막말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오죽 그런 말씀을 해 주셨을까...


그래도 꼰대는 있다

언젠가 모셨던 한 본부장은 내 머리 색깔을 보고 머리 색깔이 왜 하얀지 물어보셨다. 본부에 부임하신 지 얼마 되시지 않았으니, 궁금하셨을지도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흰머리가 많이 났는데, 지금은 염색하지 않으면 이렇다고 이야기했는데, 대뜸 하신다는 소리가 '거짓말하고 있네.'라고 하셨다. 


엥? 굳이 본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임원한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을까. 어쨌든 그분은 그런 분이셨는데, 본부원들의 신뢰도 별로 얻지 못하고, 더 윗선의 평가도 별로였는지 다른 본부장들에 비해 짧은 기간 근무하고 나가셨던 분으로 기억한다. 이전 본부장님이 퇴임하실 때에는 아쉬워 하는 본부원들도 있었고, 눈물을 보인 사람들도 있었다면, 이 분 나가실 때에는 아쉬워하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


어찌 되었든 머리카락 색깔을 가지고 나를 판단했던 그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기사 당연한 이야기지만 외모를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는 것 같다. 첫인상에 영향을 줄 수 있을지언정 그 사람의 전부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슬프게도 조직생활에 있어 외모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외모'가 전부가 아니란 걸 '왜 모'를까?




사실 구구절절 이야기를 썼지만, 염색에 대한 귀차니즘도 크고, 이제는 그냥 내 아이덴티니인가 보다는 생각이 더 크다. 그러다 보니 굳이 염색을 해야 할 필요도 못 느끼고 있다. 계속 회사생활을 하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그렇든 아니든 염색을 계속 안 하려는 생각은 든다. 지금은 내 개성이려니 받아들이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면 얼굴도 언젠가는 백발이 어울리도록 늙어갈 테니 나는 내 백발을 사랑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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