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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의적 백수 Feb 24. 2020

38. 인사철, 그 싱숭생숭함에 대하여

한 해의 성적과 승격

벌써 2020년의 2월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시끄럽기 그지없는 시간이 흐르고 있는데, 나 같은 반백수야 출퇴근이 없으니 그저 집콕만 할 뿐이다. 거기에 대학원 개강도 2주가 연기되어 뭔가 붕 떠있는 기분이긴 하다. 


어쨌든 집에 앉아 가만히 생각해보니 2월 말이면 회사는 늘 싱숭생숭했던 것 같다. 11월에 업적고과, 역량 고과에 대한 내용들을 시스템에 입력하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과가 발표되고, 2월 말이면 승격 발표가 된다. 흔히들 승진이라고들 하지만, 사내에서 공식적으로 승격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사실 승진과 승격의 차이에 대해서 뒤져봐도 이런저런 글들이 있는데, 딱 이게 맞다고 느껴지는 건 안 보인다.)


그런데 고과는 이전 글(https://brunch.co.kr/@4gazi/53) '고과가 실력은 아니다'에서도 밝혔듯이 딱히 실력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막상 성적표를 받아 들고 나면 씁쓸해지기 마련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세상에는 모두가 만족할만한 인사고과란 없을 테니까...


그렇게 씁쓸한 시간이 흐르면 발표되는 승격 발표는 조직 내에서 고과보다 더 싱숭생숭함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안 됐어?

승격 발표를 보다 보면 작은 회사는 모든 부서의 전체 인원 리스트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요즘에는 온라인으로 다 공지가 올라오니, 바로바로 확인도 된다. 


여담이지만 2005년~2007년에 군생활을 할 당시에는 장군 진급 발표가 팩스로 도착을 했다. 군대에는 팩스병들이 있는데, 그 날은 완전 긴장상태로 팩스를 기다리다가 팩스가 도착하자마자 보고대상 숫자만큼 복사하고 바로 달려가 전달하는 식이라 배송사고가 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야 했다. (성격 급한 상사는 전화로 리스트를 불러달라고 하는데, 그건 통신보안 규정 위반이다...)


그런데 승격 발표 공지와 함께 군대나 회사나 똑같은 반응은 '아... 또 누가 안 됐네...'라는 거다. 승격된 사람 리스트를 보면서 '누구는 몇 년째 안 되고 있네, 누구는 또 떨어졌네...' 같은 이야기가 참 많다. 주변에도 과장 진급을 몇 년째 누락하던 사람도 있었는데, 인사 발표 시기가 되면 주눅 들어 있는 듯한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다.


얘는 왜 됐어?

하지만 이와 반대로 의외의 인물들이 승격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또 한 번 탄식이 나오는 것이다. '아, 얘는 왜 진급했대? 뭐 때문에?'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곤 하는데, 사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윗 분들께 좋은 인상을 남겼다는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왜냐하면 회사에서 승격을 하는 방법에는 고과를 차근차근 잘 받아서 승격을 하는 방법과 또 다른 방법은 특진이다. 삼성에서는 발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특진은 뛰어난 업적(?)을 보인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항간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특정 조건으로 일정 비율 발탁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오면 성과가 좀 낮더라도 발탁 대상 조건에 들어가 발탁되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의외의 인물이 승격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는 건 아닐까라는 추측이다.


축하도 위로도 하기 좀 그래

누구는 승격을 하고, 누구는 승격을 못하고 하다 보니 승격자 발표 날은 사무실 분위기가 싱숭생숭한 것이다. 승격자에게는 조용히 가서 축하해 줄 수밖에 없고, 승격 못한 사람에게는 어떤 위로도 하기 어렵다. 그저 조용히 하루 일과를 마치는 셈이다. 그래서 승격자 발표를 금요일 저녁에 하는 곳도 있었다. 내가 아는 어떤 회사는 주말에 승격자 발표를 하는 기발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야 주말 동안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을 테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모두가 행복한 승격

글 첫 부분에 세상 모두가 만족할만한 고과는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내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모두가 행복한 승격을 겪어본 경험은 있다. 삼성인력개발원에 있을 때인데, 2월 마지막 날 승격자 공지가 올라오면 모두가 축하를 건네는 풍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조직은 각기 다른 소속사의 사람들이 모여있는데, 고과를 기본적으로 상위고과를 깔고 가기 때문에 부장까지 승격이 누락될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최상위 고과를 다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모두가 행복한 고과는 아니다. 물론 모두가 행복한 고과를 받는 곳도 있지만...^^;;;) 임원으로 승진하시는 분들이야 100%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 조직은 관계사에 비하면 임원 승진 비율이 엄청나게 높은 편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삼성인력개발원에 있는 동안에 승격자 발표날은 거의 회식 분위기였다.




살다 보면 1년, 2년 승격이 늦춰진다고 너무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회사 생활하면서 모셨던 임원 분들 중에는 임원이 되기 전에 승격이 누락되었거나 동기들은 다 발탁되고도 본인은 안 되었던 경험들을 갖고 있는 분들이 좀 계셨다. 하지만 오히려 그 시간들이 본인에게는 약이 되어 지금은 동기들은 다 은퇴했음에도 본인은 임원 생활을 하고 계시다고도 하셨다. 그러고 보면 인생사 새옹지마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 중에 승격이 안 되어 너무 억울한 사람들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라. 승격을 빨리할수록 집에 갈 날이 빨리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라고. 


'승격'은 내 마음을 한층 더 '승격'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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