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 27
이번에는 제가 갖고 있는 장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청각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장애를 갖고 있다 보면 장애인이라서 어려울 것 같다, 못할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장애를 갖고 살아가면 왜 어려움을 가질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것은
내가 스스로 할 수 있음에도
신체적 장애로 제약을 갖는 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이해와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사는 것입니다.
스스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실은 변함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인내심이 필요하고, 직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려면 서로 많은 부분에서 감내가 필요합니다. 이 부분은 비장애인들이 일방적으로 감내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제 경험을 토대로 말씀드리자면, 장애인 당사자와 비장애인 당사자 둘 다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저는 첫 직장이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소통이 너무 투명하게 잘 되었습니다.
필터링이 없어서 함께 일한 직원들이 너무 솔직하게 다 말했습니다. 별 말을 다 들었습니다.
제가 디자이너로 들어가서 일을 시작했는데 저에게 일을 주시는 사장님께선 말로 대화하셨습니다. 애초에 수어를 할 수 없는 분이셨고 말로 대화하는 게 당연시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요.
일러스트를 그려야 하는데 그분이 지시할 때마다 제가 중간중간 단어를 놓치는 부분은 자꾸 계속해서 물어봐야 했습니다. 상사에게 계속 물어보면 짜증을 내니까 눈치껏 해야 합니다. 저는 보통 최대한 제가 다 알아들은 부분만 메모해 놓고 나중에 메신저로 사장님께 문자를 보내서 이해한 내용이 맞는지 확인을 했습니다.
듣는데 문제가 없는 사람들은 어려운 문제가 아닐지 모르겠지만 저는 집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장님 지시를 듣는 동안에는 다른 직원들이 저기요 하고 겸사겸사 말을 건네도 신경 쓸 수 없었습니다.
잘 못 알아듣거나 소통이 잘 안 되면 비장애인들도 짜증 나고 답답하지만 저도 많이 답답했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대기업에 좋은 기회로 일을 하게 되면서 메신저와 체계적인 시스템 덕분에 불편함이 상당수가 해소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팀장님께서 업무를 지시할 때 전화로 저에게 통화 거신 적이 있습니다. 글로 대화를 쳐서 업무 지시하는 것을 불편해하시는 분들이 직장 내에 많이 계셨습니다.
거의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전화통화나 대면 대화를 선호하시는데, 저는 재택근무로 들어왔으니 당연히 전화로 유선을 통해 업무를 지시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여기서도 저는 귀가 안 들려서 메신저로 대화하는 게 좋습니다라고 설명을 드리면서도 서로 묘한 불편함은 있었습니다. 팀장님께서 전화를 하셨을 때 제가 전화를 받고 여보세요? 하고 팀장님이신걸 전혀 몰랐던 어색한 상황도 있었고, 메신저로 제가 설명을 드리는 과정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던 거죠.
장애인과 함께 일을 한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어떤 불편함을 겪는지 잘 아실 것 같습니다.
반대로 장애를 갖고 회사에서 업무 하거나 사회경험이 있으신 분도 겪은 불편함이 있으실 겁니다.
이 부분이 상당히 두드러짐에 따라 선진국과 그 중간을 나눌 수 있다는 말을 제가 어디선가 배웠습니다. 선진국의 기준이 사회적 인식과 복지 수준에 따라 갈린다는 통계자료에서 배웠습니다.
생각해 보니 선진국 사람들은 항상 어딘가가 여유로웠고 복지 수준도 사회 자체가 여유가 있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장애인이 사회생활을 하며 살아가려면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의 여유로움에 상당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여유롭지 않으면 장애인들을 누군가가 고용하려 하지 않고 기업들이 전부 다 꺼려할 겁니다. 사람들은 장애인들이 나와서 어딘가에서 일상을 살아가도 불편함으로 얼굴 붉히며 싸우거나 비난을 할 수 있습니다. 교육도 여유가 없으면 누가 장애인을 가르치려고 하고 키우려고 할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사회가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청각장애가 있음에도 활동을 다양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장애인들이 서로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강한 마음도 필요합니다. 끈질긴 사람들은 장애가 있음에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루어낸 경우가 있습니다.
사회가 도와주고 사람들이 도와야 하는 부분이 있겠지만, 스스로 이걸 할 수 있다고 가능성을 사회에 보여줘야만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상황도 많습니다.
저도 청각장애를 갖고 있어 어려움도 많지만 계속해서 길을 찾고 도전하는 이유는 "스스로 보여줘야만 사회를 설득하고 사람들을 납득시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장애인이 장애 때문에 할 수 없다고 믿는 것은 사회적인 영향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여유에 따라 사회가 달라진다고 믿어요.
저도 사람인지라 힘들 때에는 마음의 그릇이 딱 요만큼 제 몫을 해내는데 그 이상으로 마음이 넓어지진 않습니다. 넓은 마음을 가지려고 해도 도량이 작으니 짜증이 나고 안 좋은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다 고난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내 나름대로의 도량이 넓어져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습니다.
사회도 마찬가지로 도량이 있고
그릇이 넓어지는 만큼
살만 한 세상이 오는구나 느꼈습니다.
냉정하게 내린 판단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두렵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장애인으로 살아가면 많은 것들을 못한다고 제지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사람들의 여유로움의 척도와 직결이 됨을 느끼고 있습니다.
현실은 생각보다 차가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여유가 있어야 보는 것도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에 잘 사는 사람들이 머리가 꽃밭이라는 말은 과언이 아닙니다. 사는 게 너무 퍽퍽하면 별 것 아닌 것도 안 예쁘게 보이기 마련이죠.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들이 얼마나 잘 살아가는지, 세상이 얼마나 팍팍한지 본인이 직접 체감하는 과정입니다. 참 신기하죠? 저도 제가 살아가면서 사람 사는 게 매일매일 새롭고 신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