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 29
여러분은 누군가를 용서해 본 적이 있나요? 저는 살면서 용서한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손에 꼽아야 두세 명 정도입니다. 용서할 일이 없다는 것은 피해를 많이 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그렇게 평탄하고 무탈하게 살아가는 게 하루하루 은혜 같은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사건과 사고는 꼭 생기고, 속이 상할 일이 많습니다.
속이 상할 일을 피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피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같이 되지 않네요.
마찰이 생기고 상처 입고 속상해하다가 그 상대를 용서함으로 떠나보내기도 합니다.
저에게 용서하는 것은 미움과 이별을 고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미워하고 증오해 봤자 본인만 속상하고 힘듭니다.
세상에 내가 눈을 둘 아름다운 구석이 여전히 많은데
미운 상대에게 계속 눈을 돌려야 할까요?
그래서 용서하기로 마음먹었고 용서함과 동시에 저는 제 삶에서 그 사람을 완전히 떠나보냈습니다. 미움과 이별을 하면서 인연도 떠나보냅니다.
용서하는 과정은 쿨하지 않습니다. 멋진 과정도 아니지요.
지저분하고 고통스러운 흔적이 잔뜩 남아 흩어진 방바닥을 보는 것 같습니다. 용서가 쉽다고 누가 말했을까요? 저에겐 용서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상대는 저에게 스스럼없이 선을 넘고 과감하게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상처가 하나둘씩 박힐수록 그 상대의 잘못을 눈 감아주기 어려웠습니다.
어느 순간 내가 이제 그 사람을 떠나보내야겠다고 결심이 들 때 용서가 이루어졌습니다.
지금까지 묶어놨던 공동체 의식과 시선, 그리고 내가 좋은 사람이 돼야만 한다는 얽매임에서 벗어나니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그리고 용서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아요.
용서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용서할 때 스스럼없이 떠나간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용서했음에도 계속해서 가려운 등을 긁어주듯 습관적으로 또 부딪히고 또 선을 넘고 상처를 주려고 휘두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도 알고 싶지 않았는데 알게 된 사실입니다.
안 하려니 허전해서 본인이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생존과 가까운 수단으로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겁니다. 저에게 그런 부류의 사람은 용서함에 아주 큰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SAT 시험을 본 지가 언제 적인데 이제 와서 아주 큰 시험대에 마주쳤습니다.
용서를 하는 과정이 쿨하지 않다고 했지요? 저에겐 용서함은 용서와 동시에 법정소송이었습니다. 제가 소송을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용서가 전부 다 완전히 용서함으로 법적인 조치도 취하지 않고 오로지 선한 행위만을 하는 거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용서"가 매우 모순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용서"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더 괴롭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끔찍한 본성을 숨기고 있는 인간들이 많습니다. 용서가 완전한 선이라면, 그림자가 생기지 않을까요?
용서한다는 정확한 의미는 상대방의 잘못을 없던 일로 하노라가 아닙니다.
내가 끔찍이 미워하고 증오하는 감정에서 나 스스로 이별하겠다고 고하는 게 "진정한 용서"입니다.
내가 그 상대에게 품는 미움과 증오가 사라지면, 상대방을 맑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제가 용서를 했기에 상대방을 더 이상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제가 아끼는 사람들을 공격해서 간접적으로 저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제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하고 고통받고 있는 걸 제가 그냥 넋 놓고 보고 있었으니까요. 나랑 결혼을 앞두고 있는 상대기도 하고 저는 소중한 사람이 고통받도록 내버려 두기 싫었습니다.
미움이랑 이별을 했기에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1년 넘게 지속되었던 기나긴 형사소송은 비로소 고소유예 처분과 함께 합의로 끝났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일말의 기회를 주고 저도 소송으로 인해 잃어버린 시간들을 메꾸기 위함입니다.
계속 들쑤시고 망하기를 바라는 악의가 가득 찬 소란은 잦아들었습니다.
힘들게 하는 사람이 남이 아니라
가족인데 용서할 수 있을까요?
이건 전혀 전혀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네요.
가족이면 서로 사랑하고 위하고 칭찬을 해도 모자랄 판인데 예외사항이 있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게도 가족이면서 가족일원인 상대방을 끌어내라고 그가 망하면 속으로 기뻐하며 그가 잘 되면 시샘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겪은 사람들 만이 알 수 있는 아픔과 상처입니다. 절대 함부로 말하고 평가하면 안 됩니다.
평범해 보이는 가족도 존재하지만 그렇지 않은 특이한 가정도 존재합니다.
내 가족 중 한 사람이, 혹은 내 부모 중 한 사람이, 부모님 둘 다 나를 힘들게 한다면 용서를 할 수 있을까요?
제가 24살 때 이 문제에 아주 크게 직면했습니다. 상담도 2년간 받았습니다.
나를 낳은 부모가 나를 못났다고 말하고, 내가 잘 되면 그걸 자신의 자랑거리와 관심거리로 삼으며 집안으로 들어오면 싹 돌변해 폭언과 비난을 서슴는다면 그 부모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제가 아름답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용서하기 어렵습니다. 저도 용서하기까지 거의 10년 넘는 시간이 필요했으니까요. 사랑받아야 마땅한 자식임을 제가 처음으로 알았던 때가 20살 때였습니다.
미국에서 학교 선생님을 만나고 친구들을 자연스럽게 사귀어 친구들과 진로 문제부터 여러 가지 자잘한 실수와 혼났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보통의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더 해주고 싶고 나 자신이 비난을 받을 언정 자식이 행복하면 된다 라는 크나큰 사랑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평균치가 제 평균치와 보통의 평균치가 달랐던 거지요. 그때 저는 저를 힘들게 한 가족이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속내까지 다 이해가 되더라고요. 제가 워낙 탐구를 하고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 사색하는 기질이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서 그런 거라고 상담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보통은 이 과정까지 오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심리상담이 꼭 필요합니다. 상담은 고치는 것이 아니라 기초체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자식이 잘 안 되면 못났다고 말하며 원금을 회수해야 한다고 계산기를 꺼내 두들기는 부모님과 쓴소리를 하고 좀 더 잘해보거라라고 말을 하시면서 남몰래 속상해하시며 자식에게 쥐어 줄 쌈짓돈을 몰래 준비하시는 부모님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저는 처음에는 너무 미웠습니다. 미움은 중독이 되기 쉽습니다. 미움이 독이 되어 중독이 되면 내가 이 상황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기 힘듭니다.
힘든 마음을 다른 데로 돌리거나 힘듦을 잊을 수 있는 쾌락에 손을 대기도 합니다. 그게 게임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다양한 형태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비로소 가족을 용서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에게 슬픔을 대체할 대체재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독립을 해서 이 집을 나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27살 때 늦은 첫 독립을 시작했습니다. 살던 곳을 멀리 떠나 원룸을 얻어 월세로 살기 시작했지요.
그때부터 용서할 용기가 생겼습니다.
더 이상 이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가족임에도 불쌍한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저에겐 그 사람은 가족임에도 소중한 가족들을 제 발로 차버리고 길을 잃어 진흙탕을 걸어 들어가 스스로 빠져 잠식하는 것도 모르고 계속해서 비난하고 조롱하며 발버둥 치고 자랑하고 자존감을 채우려고 휘적거리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은 젊음이 영원하지 않다 하던가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30대에 접어들어 저는 장성해 가는 반면 부모들은 이제 늙어가 돌봄과 의지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남을 용서하는 것은 미움과 이별하는 거라고 하지만, 가족을 용서하는 것은 다르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가족 일원을 용서하는 것은 사랑과 추억과 그 모든 것들을 전부 다 사진으로 남겨두어 추억상자 속에 담아두는 과정이었어요. 슬슬 내가 그래도 이런저런 일을 겪었지, 그래도 지금 잘 살아왔고 앞으로 잘 살아야지 하며 다짐을 굳게 하고 아팠던 과거와 함께 미련을 허심탄회하게 내려놓았습니다.
이제는 일말의 증오도, 그리움도 없이 깨끗이 비워진 마음의 그릇이라고 할까요?
가족을 용서한다는 것은 그릇을 비우는 것과 같습니다.
자식이라면 당연히 부모님이 기뻐하시길 바라고 잘해드리고 싶어 하는데, 저는 그 그릇을 비워냈습니다.
닳고 닳아 케케묵은 그릇을
천으로 쓱쓱 닦으면서 광을 내고
깨진 부분은 파편을 조심스럽게 주워
접착제를 붙여 깨진 단면을 따라
한 땀 한 땀 보수했습니다.
오랜 시간 마음의 그릇을 닦고 보수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저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 잘하기로 결심했지만 그릇을 비워내는 것이 썩 아름다운 일은 아닙니다.
가족에게 사랑받아야 마땅한 사람인데 고통받고 계시는 사람들이 그릇을 정갈하게 비워내고 훨훨 날아가도록 소망합니다. 저에게 용서는 미움과 이별함과 동시에 묵은 그릇을 깨끗이 비워내 깨끗이 닦아내는 것입니다.
비워낸 그릇에는 자신의 소중한 것들로 새로 담아 예쁘게 가꿔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