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 앞으로 나아갈 뿐

삶의 지혜 - 30

by 명형인

이제 드디어 30회 마지막에 다다랐습니다. 마지막 글은 무엇에 대해 쓸 까 고민해 보았는데요. 지금까지 제가 써왔던 29개의 글들을 종합해 결론을 짓는 끝맺음 주제로 마무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의 시작에는 항상 끝맺음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많은 사람들은 참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제가 봐도 다른 사람들은 항상 꼭 무엇인가에 전념하며 몰두를 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세상을 바라보고 어떤 바람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제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사람마다 각자 만의 이상적인 세계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유토피아라는 단어를 흔히 들어보셨죠? 요즘 상당히 많이 쓰이고 있어 저도 귀에 익은 단어입니다.

보통 상상의 세계를 유토피아라고 표현하는데 깊이 들어다 보면 사람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세계라고 정의합니다. 모든 힘의 균형이 맞고 중립적이어서 싸움과 고통 질병 같은 부정적인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옛날사람들이 유토피아라고 부른 것 같습니다. 지금은 유토피아는 이상적인 세상으로 많이 쓰입니다.


내가 만약 전쟁 없는 평화를 추구한다면 그 세상이 유토피아가 되는 것이고, 내가 물질적으로 풍요해서 돈을 그냥 마음대로 써도 돈이 계속 남아도는 그런 세상도 그 사람만의 유토피아가 될 수 있습니다. 이상향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이지만, 그 사람의 욕망과 자아를 실현하는 세계가 지금의 "유토피아"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30대가 되면서 20대에는 겪지 못한 일들도 겪고 격변의 시기를 보냈습니다. 제30대 시기를 통해 저도 저 나름대로 내린 정의와 이상이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세상은 이래야 해라고 생각하는 것이 유토피아가 된다면, 그 유토피아는 상상의 세계일지 모른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제 유토피아가 또 바뀐다면 그건 진정한 유토피아가 아니잖아요?


제가 성장해서 40대가 된다면 분명히 제가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눈이 또 바뀔게 분명하니까요. 유토피아는 유니콘이 뛰어놀며 요정들이 구름 위에 모여 커피를 한잔 마시는 그런 세계입니다.



유토피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갈 이유를 얻는다


어쩌면 유토피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계속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원동력으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유토피아가 만약 실제로 온다면 저는 아마 하던 것을 놓고 그냥 놀고먹고 지낼 것 같아요. 전에 아파서 계속 놀고먹고 오랫동안 쉬니까 엄청 고역이었습니다.


오래 쉬면 행복하고 좋을 줄 알았는데 백수 생활도 오래 하면 고역이더라고요. 이유가 참 신기합니다. 처음에는 불안감이 있었고, 불안감을 극복하고 넘어서는 순간 그냥 지루해졌습니다.

사람이 항상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는 말이 진짜 괜히 있는 말이 아닙니다.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면 완전히 잃어버린 사람이 됩니다. 무언가를 함으로 쓰레기를 주움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금전적인 보상이 들어온다면 그걸로 사람이 살아갈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저희 어머님은 저를 낳는 순간 제가 청각장애인이어서 좌절하셨지만 그것 때문에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하셨습니다. 생에 처음으로 도전한 많은 일들이 저를 출산한 후로부터 이루어졌다고 해요.

그전에는 안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미루고 있었는데 저를 낳는 순간 딸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반응이 없어 병원에 데려가 청각장애 판정을 받던 순간 가만히 있으면 큰일 나겠구나 정신이 번쩍 드셨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을 다 키워내고 저희 아빠랑 이혼을 하게 되면서 어머니께서 가정에 기여하신 부분이 상당히 많으심에도 위자료를 한 푼도 못 받고 나오셨습니다. 사람이 참 간사하고 이기적인 게 이혼하게 되면 자신의 재산을 먼저 챙기려고 하고 배우자에게 한 푼도 한 톨도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성인군자는 몇 없습니다. 상대방의 재산 기여도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내가 전부 다 했다고 말하지요.


저희 어머니께서는 저랑 제 형제들을 법정에 증인으로 내세워서 아버지의 주장이 틀렸음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여기서 어머니는 저랑 형제자매들이 상처를 받고 서로 싸우고 분란을 만들기 원치 않아 어머니께서 스스로 가정 기여도에 따른 재산분할을 포기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사업을 할 때 저희 어머니 뒷바라지 덕분에 신림동 원룸 1칸 방에서 20평 아파트로 이사하고 아버지가 더 욕심을 내어 가족의 종착점은 60평짜리 아파트였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가족의 풍요는 아버지가 홀로 일군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신림동 원룸에서 태어난 아이입니다. 원룸에서 태어났으면 요즘 세상 시선으로는 불운이 가득한 언러키 베이비여야 하는데, 어머님은 저를 항상 러키 베이비라고 부르셨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복을 가져다주었다고 열심히 살아오셨는데, 이혼을 하시고 나서 갑자기 더 열심히 사셨습니다.

이제는 어머님께서 여자라서 안될 거 같다고 말하셨던 궂은 알바도 하기 시작하셨고, 이혼한 여자라는 딱지를 극복하고 경기도 외곽 지역에 소형 평수의 작은 아파트 1채를 매매하셨습니다. 열심히 아껴서 대출 갚고 열심히 돈 버셔서 일하시고 외가 쪽 가족들에게 염치없어도 도움받고 의지하면서 보답도 해드리면서 사셨습니다.


어머님은 이혼하시고 돈을 한 푼도 못 받았다는 최악의 상황을 삶의 이유와 목적으로 삼으셨습니다. 내가 이 상황에 처하니 늙어서 노후대비가 되지 않으면 내 자식들이 엄청 고생하겠구나!

본인의 삶을 이제 나 스스로 챙겨야 하는 순간이 어머님의 원동력이 되셨습니다.


지금은 저희 아버지께서 자꾸 네 엄마가 어떻게 아파트를 한 채 사셨냐고 물으십니다. 자꾸 물으시는 그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그 물음을 들을수록 사람이 살고자 결심을 하면 안 되는 게 없구나 라는 확신을 강하게 갖게 됩니다.


저는 제가 가진 청각장애가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잖아요?


저도 청각장애를 가져서 한국으로 와보니 취업이 너무 힘들고 선택의 폭이 적었습니다. 디스토피아가 있다면 저는 지금이 디스토피아 같습니다.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취업 하려면 사람들이 귀가 안 들리는데 소통이 어려워서 직원 교육도 힘들다고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고, 가게에서 단순한 일을 하겠다고 해도 말이 안 통할 것 같은데 무슨 일을 시키냐고 안된다고 합니다.

이런 회사와 가게가 상당히 많습니다. 고용을 해주시는 마음이 넓은 사장님들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고 대기업들은 장애인 전형 채용으로 경력을 쌓는데 도움이 거의 없는 사내 청소 일이나 단순업무를 줍니다.

단순업무를 해서 돈을 번다는 사실이 장애인들에게 참 다행이지만, 경력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시대이기에 경력을 쌓아야 하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한국에서 취업 공고를 돌리자마자 아 내 인생이 힘들겠다 를 먼저 느꼈습니다.


좋은 기회로 디자인을 중소기업에서 배우게 되었지만 회사에서는 속도가 비장애인들에게 맞춰져 있고 청각장애인들은 따라가려고 해도 힘듭니다. 현실이라 어쩌겠어요? 제가 회사에서 일하면서 인간힘을 써서 어찌어찌 따라갔지만 제 몸에 이상이 생기고 병이 들었습니다. 만성피로에 시달려서 자꾸 응급실 가고 기절하고 회사에서는 업무 지장이 된다고 난색하고 제가 업무 능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대표님이 난색을 하셨고 저는 자진해서 퇴사했습니다. 제가 지금 계속해서 일하는 게 회사에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데 제가 퇴사하는 게 낫다라고 대표님께 말씀드렸더니 순탄하게 퇴사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제가 처한 불리한 상황을
기회로 삼았습니다.


퇴사 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다음 계획을 세웠어요. 그림책을 3권 출간을 했고, 퇴사 후 개인사업을 선택해 지금도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하이데버라는 저만의 브랜드를 키워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지금은 블로그와 글쓰기 활동, 인공지능 학습 등 여러 가지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좋은 기회로 학교에서 강의하거나 인터뷰 등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모임도 간간이 하고 있습니다. 제 인생은 운이 아니었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기에 매우 감사합니다. 개인사업이 항상 쉽지만은 않아 돈에 시달리고 쪼들릴 때도 있었고 갑자기 매출이 늘어 숨통이 트인 적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유토피아는 없지만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 -

keyword
이전 29화용서하는 것은 쿨하지 않지만 용기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