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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토란 Mar 05. 2021

"문 닫고 나가요"

어찌 문을 먼저 닫고 나가느냔 말입니다만.

 

© pechka, 출처 Unsplash 

  


  얼마 전 병원에 3주 넘게 입원해 있었다. 입원 생활이란 정해진 침상에서 자고, 똑같은 옷을 입고, 정해진 반경 내에서 생활해야 한다. 요즘은 환자의 권리도 많이 격상하여 본인의 치료 방향에 적극적으로 참여가 가능하다지만 그래도 신뢰하는 전문가 집단인 의료진의 드라이브에 따라가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이렇게 지극히 수동적일 수밖에 없고 기본적으로 불편함과 대부분은 통증을 수반하는 생활을 이어가다 보면 없던 예민함도 슬금슬금 올라온다.

   하루 세 번 정확한 시간에  "ㅇㅇ님, 식사 나왔습  니다"하고 침상 발치의 테이블 위에 식판이 올려지면 나의 의지나 배꼽시계와는 상관없이 따뜻한 음식을 먹으려면 서둘러 식사를 해야 한다. 또 하루에 한 번 5분도 안되는 회진 시간을 위해 그 시간 언저리엔 침상에서 정자세로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뭐 이런 것쯤은 대수롭지 않다. 

  문제는 잠자리이다. 똑같은 규격의 인조가죽위에 얇은 홑창 하나 씌어 놓은 불편한 매트리스와 베게, 깨끗하게 세탁은 되었으나 서걱거리고 뻣뻣한 이불, 몸에 달고 있는 주사나 카테터 등으로 불편한 수면 체위 변경, 야밤에도 잦은 활력징후 측정이나 채혈 등 검사를 위한 의료진의 들락거림(이렇게 표현하니 그들의 노고가 격하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지금의 나는 과거 그들 그룹 말고 전지적 환자 시점에서 씀), 또 다인실이라도 있게 되면 다른 환자들의 동선, 말소리, 처치하는 소리 등 이런 이유들로 깊은 잠을 자기란 쉽지 않다. 

   이런 이유들로 밤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은 발소리조차 조심조심이다. 환자를 살피러 와서도 미등을 켜거나 요즘은 각자의 미니 손전등을 가지고 다니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다녀간지도 모르게 살금살금 확인하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한 사람을 달랐다. 병실의 슬라이딩 도어를 열 때 속도부터 달랐다. 그냥 시간대에 상관없이 활기차다. 

  이미 그 소리에 나의 non REM 수면패턴은 깨진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거기까진 이해. 그런데 늘 나갈 때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나간다. 열고 들어왔으면 닫고 나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던가? 병실 문이 열려 있으면 마치 최근에 본 드라마 <에밀리 인 파리>에서 길가에 침대를 옮겨놓고 CF 촬영을 하는 것처럼 사방이 뚫린 곳에 덩그러니 내 침상이 놓인 기분이 든다.   그 문을 통해 들어오는 휑한 바람, 스테이션이나 복도에서 들리는 소음들 탓에 안온한 느낌이 전혀 없다.  가뜩이나 축 처진 몸을 일으키고 주섬주섬 슬리퍼를 찾아 신고 나가 문을 닫고 와야 했다. 물론 그렇게 꼬리가 긴 사람은  그 한 사람만의 일이었다. 몇 번을 그리 반복하다가 이내 부탁을 하기에 이르렀다.

   "선생님, 나가실 때 문 좀 닫아 주세요."

대개는 한두 번 그리 부탁을 하면 그다음은 자동일 줄 알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그런데 웬걸. 역시나 말하지 않으니 몰랐다. 부탁을 하지 않으면 또 문을 활짝 열어놓고 처치 카트를 끌고 총총총 사라진다.

그럼 난 속으로 왈왈왈 멍멍멍하면서 구시렁대면서 발을 내려 주섬주섬  슬리퍼를 찾는다.

  일을 잘 하는 것과는 별개이다. 환자들은 보통 내가 그들보다 약자의 입장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배려 받기를 원한다. 또 그 정도의 배려 받음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의 공감 세포 수는 확실히 다른 것 같다.

내가 저 사람의 입장이라면 하고 한 번만 생각해 보면 그런 행동쯤은 자연스럽게 묻어 나올 것 같은데 말이다.

  문 닫고 나가요 처럼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것은 아닐까?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사람들은 만나면 필경 저 사람은 다른 채널로 듣고 해석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마 그도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한 듀티에 내가 맡은 환자 수가 10명 남짓인 걸 감안하면 내내 그리 다른 채널을 가지고 일하는 건 서로가 너무 소모적이다. 

  문 닫고 나가요와 나가서 문 닫아요. 국어 문법이 어렵다고 하지만 이런 일상적인 소통마저 어렵다면 대략 난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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