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희망, 보리차로 시작하는 아침 루틴
2020년 한 해, 아마 대부분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을 것이다. 오프라인 활동 및 모임 등이 제한되고 대신에 온라인으로 많이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학교 수업부터 재택근무 그리고 콘서트,
전시, 강연, 소모임 등 대부분 모든 활동들이 온라인으로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나 또한 요즘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온라인 습관 모임을 여러 개 하고 있는 중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금방 무기력해지고 게을러졌다. 그래서 집 안에서 생산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걸 하고자 여러
온라인 습관 모임에 참여했는데 그중 그림 온라인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중이다.
하루는 프로그램 매니저님이 각자 좋아하는 그림을 함께 나누자는 미션을 제시해 주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를 골라 이미지와 함께 왜 좋았는지,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를 설명하는 미션이었는데 이 미션을
보자마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 그림이 떠올랐었다.
난 왜 이 그림에 강한 끌림을 받았던 것일까? 실제로 이 그림을 본 적도 없고 책에서 본 게 다인데 말이다.
그 이유는 바로 그림 속에서 어떤 정성과 평화로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림 속 여인은 우유를 다른 항아리에 붓고 있는 모습이다. 먹기 좋게 잘라진 빵들, 적당한 위치에 놓여 있는
물건들. 그리고 닫힌 창문을 통해서 햇살이 희미하게 들어오고 있는 것 같다. 이 어딘가 조용한 평화로움에
왠지 모르게 어떤 숭고함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최근에 읽은 소설책의 한 인상적인 구절이 있다.
"그녀는 이른 시각, 이렇게 서점이 텅 비어 있을 때 서가 사이를 돌아다니며 손님을 기다리는 이 모든 책들의
고요한 희망을 느끼는 것을 좋아했다." - 아무도 문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111p 중
문장 속에 있는 이 '고요한 희망'이 무척 인상적이었고 공감을 느꼈다. 책들의 고요한 희망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그녀 (책 속의 주인공)가 매 아침마다 사람이 없는 조용한 서점에서 느끼는 하루의 평화롭고 고요한
시작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매일 나는 아침에 일어나 항상 이불을 개는 습관을 가진다. 그다음 거실로 나와 주전자에 보리차 티백을 넣고
물을 끓인 다음 머그컵을 꺼낸다. 조심스럽게 다 끓여진 보리차를 컵에 따른 뒤 다시 내 방으로 와서 차를 후후 불며 한 모금, 두 모금씩 천천히 차를 마신다. 그렇게 한 모금, 두 모금을 마실 때마다 밤 새 굳어 있던 근육이
점점 풀림을 느낀다. 또 추위로 움츠려진 온몸에 점점 따뜻한 온기가 돈다.
보리차를 마시고 디지털 플래너에 오늘의 할 일을 적는 것이 바로 나의 아침 일상이다. 아침이라 피곤하긴
하지만 이러한 행동들 너머엔 오늘 하루도 잘 보내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아직 해도 완전히 뜨지 않는 아침,
내 방 안에서 들리는 아침을 지저귀는 새소리, 매일 같이 보리차를 마시고 플래너를 쓰는 게 나에게 있어
바로 아침의 고요한 희망이다.
그림에서도 이런 비슷한 고요한 희망을 느낀다. 사실 내가 처한 시대, 상황, 개인의 경험을 기준으로 그 당시
그림 속 여인을 판단하는 것이 경솔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그림 속 여인 또한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정성을 붓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그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피부로 전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코로나로 모든 일상이 힘들고 지쳐도, 내 아침의 일상에서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따뜻한 보리차와
함께 고요한 희망을 쭉 실천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