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매일 아침마다 동네를 걷다.
회사를 나온 후 가장 꾸준히 실천했던 것은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를 걷는 것이었다.
전공했던 길로 쭉 갈 줄 알았지만 그 길이 정답이 아님을 알았을 때, 고민만 하다 아무런 계획도 준비를
하지 않았었다. 아니 제대로 준비를 못했었다. 결국 회사와의 계약은 그렇게 끝이 났고 나는 막연한 기분으로
백수가 되었다.
늘 하라는 대로 공부를 열심히 했던 착하고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입시 실패에 큰 좌절을 겪고 긴
시간 동안 무기력함과 우울증을 집에서 한동안 겪었었다. 그러다 24살 때 또래 애들보다 뒤늦은 대학에 입학을 했다. 늦게 입학을 했지만 내 또래 애들만큼 빨리 발을 맞추고 싶었고 이 우울증과 무기력함이 사라지기를
원했지만 한 번 좌절을 겪었던 마음은 그렇게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를 나온 후 사실 두려웠다. 또 지난날처럼 그렇게 된 것 같아서 말이다. 20대 후반인데도 어떻게
내 삶을 스스로 꾸려가야 할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전처럼 일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것이었다. 다행히 회사를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났던 그 감각은 유효했기에 어렵지 않게 일찍 일어날 수 있었다.
일어나서 대충 이를 닦고, 옷을 입고서 집 밖을 나섰다. 아침 7시에 나와서 회사를 나와 이렇게 한가롭게 걷고 있고, 출근하기 위해 혹은 학교를 가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직장인들, 학생들을 보면 기분이 참 묘했다.
나도 며칠 전만 해도 회사에 늦지 않기 위해 저들과 함께 바쁘게 움직였는데 말이다. 한 편으론 뭔가 씁쓸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 부지런함과 긴장감을 잃고 싶지 않아 그 풍경을 더 눈에 담고자 했다.
난 우리 마을이 참 좋다. 봄이 되면 길에 줄지어선 나무들에 벚꽃이 피고 그 거리를 걷는 걸 무척 좋아한다.
내가 회사를 나올 그 시기는 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침에 그 거리를 걷는 게 좋았다.
작은 상점들이 줄지어선 거리. 떡볶이집, 빵집, 떡집, 사진관, 어떤 디자인 사무소, 편의점 등등.
특히 나는 빵집을 지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여러 식빵을 전문적으로 파는 곳인데 빵집을 지나치기 전부터
벌써부터 식빵의 고소하고 쫄깃쫄깃한 달콤한 냄새가 풍겨왔다. 유리창 너머로 빵집 안을 보면 빵집 사장님은 부지런히 빵을 만들고 있는 풍경이 보였다. 얼마나 일찍 나오셔서 빵을 만들고 계신 걸까?라는 생각을 늘 지나칠 때마다 했었다. 일찍 일어나셔서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빵을 준비하는 모습은 희한하게도, 앞으로 뭘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고 게을러질 것 같은 나에게 항상 좋은 자극을 줬다.
문득 이 식빵의 냄새를 맡으며 가로로 길게 뻗어있는 나의 작은 동네를 걷다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난 지금 가로의 시간을 걷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회사를 다녔을 때 항상 아침마다 하는 나의 아침
의식이 있었다. 그건 하늘을 향해 높게 솟은 회사 고층 건물의 높이를 쳐다보는 일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하늘을 쳐다봤다. 수직으로 높이 치솟은 회사 건물, 수직적인 관계 속에 늘 긴장된 내 모습, 그리고 열심히 진심을 다해 일을 잘 해내려고 해도 실수투성이였던 나.
하지만 이제는 늘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과 아래층을 오 가는 대신 수평선 같이 넓게 뻗친 동네를 걷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가로의 시간을 걷고 있는 것 같다.
하루는 보기만 했던 식빵 가게에서 통밀 식빵을 구입해 집에 와서 토스트를 해 먹었다. 빵이 무척 쫄깃쫄깃했다. 아침마다 늘 내게 자극을 주던 이 식빵 냄새가 먹을 때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어 새삼 놀라워하며 먹었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그때와 다르다고. 이제는 내가 날 스스로 챙기는 걸 배웠다. 그래, 난 남들보다 걸음이 느리다.
아마 세상 사람들은 나의 발걸음을 틀린 답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건 그냥 너의 합리화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나의 발걸음을 존중하며, 이 가로의 시간을 쭉 걸으며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내 마음에 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