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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on Feb 05. 2021

당신을 이해하려던 그 새벽

20.04.20


 엄마 지금은 새벽 4시고 여기는 독서실이야. 아까 엄마에게 들은 말이 계속 맴돌아 잠이 오지 않아서 새벽에 돌아다니는 걸 엄마가 좋아하지 않지만 독서실 책상에 앉게 됐어. 글이 아닌 말로 엄마에게 내 이야기를 할 수 도 있지만, 이건 엄마가 나에게 준 혜택이자 선물이니까. 엄마가 내게 준 4년의 대학교육이 내게 정제된 말을 사용하는 법을 알려줬으니, 나는 이제 단어를 가려 골라 전달하는 것이 엄마가 내게 준 선물을 돌려주고 감사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이렇게 글로 편지를 적어봐. 엄마가 바라는 공부도 그도 아니면 엄마가 바라는 안정된 삶 대신 쓰겠다는 시나리오도 아닌 편지를 적고 있다는 사실이 엄마를 또 화나게 할지도 모르겠다.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서 아무도 읽지 않는 카톡방에 그중에서도 간편한 언니들 방에서 나는 자괴감에 무너졌다가 다시 할 수 있다는 붕 뜬 말을 남겼다가 결국 비난의 말을 보냈어. 잠이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간이 지나니 읽지 못하게 삭제할 수도 없었어. 한번 뱉은 말은 그렇게 지울 수 없게 되는데 그걸 자꾸만 나도 잊더라. 엄마가 마시지 말라는 커피를 마셔서 일 수도 엄마가 먹지 말라는 저녁의 야식을 먹어서 잠이 오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 결국 엄마가 하지 말라는 그 모든 행동들을 계속하면서 잠에 들지 못하는 게, 나라는 사람이란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나는 참 어려웠던 것 같아. 그래서 결국은 이런 쓸데없는 글을 적게 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 30년이 걸린 것 같아.


 나는 자주 내가 엄마의 딸이 아니라 엄마의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랬다면 물론 엄마만큼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내가 엄마의 엄마였다면, 할머니들이 엄마에게 줬던 상처나 할아버지가 엄마에게 줬던 기억들을 증조할머니처럼 조금은 보듬어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엄마가 바랬던, 지금의 엄마가 아닌, OOO이라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내가 지켜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어. 그러면 좀 더 엄마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늘 엄마를 이해하는 게 어려웠던 것 같아. 엄마는 어떤 새벽을 견디며 어른이 됐어? 나는 이 새벽처럼 엄마를 이해하는 새벽을 견디는 순간들이 잦았어. 그게 원망이든 안타까움이든 엄마에 대한 글을 쓰면 엄마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거든. 나는 그렇게 조금씩 어른이 돼갔던 것 같아. 아직도 완전히 어른이 되지도 엄마를 다 이해하지도 못하지만 내가 10년 동안 그 새벽들을 보내면서 엄마를 이해하려고 했던 노력만큼 엄마도 10년 전보다 더 많이 나를 이해해주고 성장하고 달라졌다는 것을 나는 자주 깨닫고 있어. 그게 정말 대단해. 고이지 않는 어른으로 우리 엄마로 계속 자라나 줘서 고마워.


 나는 내 낮은 자존감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벽의 몰락에서 벗어나기 위해 글을 쓰게 됐어. 늘 글을 잘 썼다는 어린 시절 칭찬들이 나를 계속 쓰게 했지만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다는 시작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새벽을 견뎌내고 아침을 맞이하려고. 글은 나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낼 수 있게 만들어주니까. 이기심이지만 살아남고자 했던 희망이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향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나를 좀 더 좋은 어른이 되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했어. 내가 글을 쓰고 싶었던 것처럼 엄마도 분명히 하고 싶었던 일들이 있었겠지. 나를 낳기 전 30살의 엄마, 언니를 낳기 전 25살의 엄마, 아빠를 만나기 전 20살의 엄마를 나는 떠올려.


엄마가 엄마여야 하기 이전에, 나도 언니도 아빠도 없이, OOO으로 OOO이 하고 싶었던 선택을 마음껏 할 수 있었을 젊은 날의 OOO이 지금 엄마가 된 OOO보다 더 행복했으면 어떡하지. 내가 바라는 게 있다면 적어도 더 행복하지는 못해도 후회하지는 않도록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거기에 나는 책임감을 느껴. 내가 엄마의 딸로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엄마의 무한한 가능성과 건강을 잡아먹으며 태어난 딸로 적어도 후회는 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 그건 내가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해. 그건 아마 언니도 아빠도 마찬가지일 거야.


내가 그 책임을 잘 이행하기 위해서 나는 더 많은 노력을 통한 능력들을 가져야 할 거야. 아직도 그 길은 꽤 멀지만, 그리고 그 능력들이 엄마 성에 차지 않을 때가 더 많았지만 그래도 나는 어영부영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서 산 것 같아. 이 감정과 비슷한 것을 느꼈던 순간이 기억나. 오늘은 내 30번째 생일이야. 20살 내 마지막 남은 대학교 합격 발표날도 이와 같은 감정을 느꼈던 것 같아.  


지원한 대학교에서 모두 불합격 소식을 듣고 마지막 남은 그 학교에서도 불합격할 거라는 확신을 갖고 나는 독서실 책상에서 공부하는 시늉을 하며 앉아있었어. 그때 나는 엄마한테 태어나서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냈었는데 기억나? 태어나서 미안한 그 날 다행히도 나는 OO대에 합격했고, 그 학교에서 적성에 맞는 진로도 찾게 됐어. 그리고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들을 경험하게 됐어. 그 모든 건 엄마의 희생과 노력 덕분이었어. 나는 살아있을 때면 늘 그 모든 혜택들을 엄마의 헌신 위에 밟고 올라서야만 누릴 수 있었어. 매일 숨 쉬듯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에 감사하고 있어.


감사하다는 말로는 당연히 엄마의 지난 젊음을 보상해줄 수 없겠지.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해. 내가 무엇을 해야 엄마의 세월을 보상받게 해 줄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한 일일 거야. 내가 억만장자가 돼도 엄마는 20살의 OOO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그냥 감사만 하기로 했던 것 같아. 엄마를 완전히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 그래서 엄마가 알아서 행복해지길 바랬던 것 같아. 감사하지만 내가 해낼 수 없는 일이니까. 엄마 혼자 알아서 잘 행복하길 바란 것 같아. 나는 엄마의 행복을 찾아 줄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내 행복이 뭔지도 모르니까. 그냥 엄마의 행복을 엄마가 알아서 찾아주기를. 그렇게 이기적인 생각을 했어.


이기심 덕분에 누린 5년의 시간 동안 내가 얻은 깨달음은 그래도 나는 실패한 인생은 아니다는 사실이었어. 20살이 될 때까지 나는 엄마가 바라던 만큼 똑똑하지도, 올바르지도 못해서 늘 엄마를 실망시켰으니까. 어느 순간 내 인생은 실패했다고 생각한 것 같아. 그래서 그냥 될 대로 돼라. 내 인생이 그렇게 흘러가도록 뒀어. 엄마에 대한 원망만 가득한 순간에는 나를 망치는 게 엄마에게 복수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분노도 다 증발하고 무기력만 남게 되니 그냥 내 인생도 나도 포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 그냥 지구가 사라졌으면, 아니 나만 증발해버렸으면. 그렇게 자해를 했던 것 같아.


불빛이 깜빡이면 엄마가 나에 대한 트라우마를 떠올리듯 나는 팔목을 보면 그 순간에 잠식됐어.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 영원한 무기력의 순간들에서 그걸 자꾸 잊으려고 해도 그게 잘 안되더라고 나는. 불 꺼진 집에서 나 혼자 잠들지 못할 때 온 가족이 잠들고 나만 무기력에 빠져서 아침이 와도 아무것도 못해내는 내가 너무 미워서 3년의 휴학 동안 나를 미워하지 않도록 노력했어. 대학에 들어가면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쉽지 않았어. 그래서 엄마를 다시 또 힘들게 한 것 같아. 그건 나한테 뗄 수 없는 기억들이니까 잘 다스리는 수밖에 없는데 성취를 해도 인정을 받아도 무기력은 계속 찾아오는 거니까.


대학교라는 기관에서 내 글을 인정받고, 좋은 평가를 받고 교수님들이나 학생들에게 칭찬을 받으면서 남에게 자랑할만한 명문대도, 평생직장을 얻게 된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성취감을 배웠어. 내가 원하는 꿈을 나도 실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실낱같은 가능성에 나 자신을 온전히 던질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삶의 이유를 찾은 것 같았어. 살기는 싫어도 죽지 않아야 될 이유는 생긴 거니까. 그건 되게 고무적인 일이잖아. 죽기는 쉬워도 살아내기는 어려운 거니까. 내가 죽고 싶었다는 순간을 기억하면서 살아내는 그 어려운 일을 하고 있으니까, 나는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어차피 죽어도 상관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누구보다 목숨 걸고 어떤 일에 덤벼들 수 있으니까 남들보다 더 잘 해낼 것 같았어. 그리고 나는 엄마가 그걸 믿어준 거라고 생각해. 순간적인 내 성과보다 지속될 수 있는 내 노력을.


그런 마음을 가지니까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감히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말도 당당하게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감히 내가 글을 잘 쓰고 싶고, 감히 내가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고, 감히 내가 대작가가 되겠다고 말하는 일 같은 게 좀 더 쉬워졌어. 예전에는 감히 상상도 못 할 일들이었는데. 대단한 성취는 아니지만 나한테는 굉장한 변화였어. 그 변화 덕에 나를 쉽게 비난하는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게 됐거든. 내가 실패한 인생이라고 감히 당신들이 떠들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거야. 나는 목숨을 걸고 노력해봤고, 앞으로도 그럴 자신이 생겼으니까. 살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당신들보다 시작점이 늦을지 몰라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노력을 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나에 대한 믿음이 생긴 거야.  


어제 엄마는 나한테 미안하다고 했지. 10년 전의 엄마는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어서 나한테 물리적으로 언어적으로 더 가혹하게 굴었다고. 그래서 내가 지금 잘되어 있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이제 나는 스스로를 지키는 사람이 된 줄 알았는데 그 말을 하는 엄마 앞에서는 나는 다시 15살 중학생의 추민경으로 돌아갔어. 정말 오래도록 엄마의 진심 어린 사과를 기다렸거든. 예전에는 정말 간절히 그 순간을 기다렸던 것 같아. 근데 그 말을 하면서 우는 엄마를 보면서 마음이 차가워지더라. 너무 생각보다 빨리 그 말을 엄마가 해줘서였을까. 언젠가 엄마와 나를 담은 멋진 작품으로 상을 받게 되면 엄마에게 인정과 동시에 그 말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굉장히 멀리 상정해서였나. 엄마가 예상치 못한 말과 함께 사과를 건네 버려서 허무해졌던 것 같기도 해. 그 별거 아닌 말 때문에 아직까지 잠들지 못하고 그 순간에 조차 나를 지키지 했던 걸 보면 나는 아직도 엄마의 어린 둘째 딸인가 봐.

  

그래도 엄마 오늘을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엄마는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아서. 나와의 순간들을. 엄마는 자식이 둘이나 있고, 정신없는 일들이 너무 많으니까. 근데 나한테 엄마는 엄마 한 명이니까. 나는 엄마가 생각하는 인생이 아니야. 그렇게 되지 않을 거야. 나는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어. 엄마는 나를 어떻게 판단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를 남들이 보기에 떳떳하지 않아서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내 인생을 그렇게 보지 않고 그렇게 되지 않기로 결정했어. 그렇게 살기로. 그러니까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나를 잘못된 인생이 아니라고. 엄마가 나에게 흘려했던 많은 말들처럼 어제의 말도 오늘의 내 말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나는 이렇게 글로 적고 있어. 글은 오래 남으니까. 그리고 오래 남는 것은 힘이 세니까.


나는 글로 증명할 거고, 그러려면 먼저 삶으로 증명해야 하니까. 나는 그런 삶을 살 테니 엄마도 나를 그런 사람으로 기억하고 대해줬으면 좋겠어. 오늘의 나를 엄마가 아직 인정할만한 성취를 얻지 못한 나로 생각하지 말고, 10년 전에 그렇게 대하지 말걸 이라고 후회할만한 40살이 될 시작점의 나로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나도 엄마를 10년 후에 성장한 엄마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테니까. 사람은 생각보다 빨리 성장하니까 엄마랑 나처럼.


좀 더 따뜻하게 오래 남을 말들로 엄마랑 나를 채워가자. 나도 엄마를 그렇게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더 노력할게. 엄마도 그래 줄 거라 믿어. 그래서 40살의 내 생일에는 우리 서로에게 덜 후회를 남기도록 하자. 내 30년의 시간이 엄마의 60년의 삶을 더 값지게 만들었기를 바라며, 우리 엄마가 되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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