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탄생
도망치고 싶을 때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에게서 도망치고 싶을 때에도
모든 것들에서 도망치고 싶어 지리만치
나약해지는 순간에는 늘
가장 먼저 엄마를 떠올렸다
모든 이유를 그녀에게 귀결시키고
합당한 변명은 그녀에게서 찾으며
그녀는 내 도피의 근거가 되며 늙어갔다
흉터 같은 손주름
잦아들던 숨소리
희끗한 새치
빠져버린 어금니
늘 가장 강해야만 했던 이의
가장 나약한 순간을 떠올리며
작은 내 손을 꽉쥔 여린 손아귀의 힘
더는 도망칠 수 없었다
내가 도망치면 더 이상 그녀는
편히 잠들 수 없다
그녀가 영원히 잠든 그 날
나는 그녀의 흔적을 찾기 위해
식어버린 밑반찬을 냉장고에서 꺼내
먹으며 그녀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마,
엄마는 무엇을 먹고 그리 강해졌어?
엄마에게는 따뜻한 장국은커녕
마른반찬을 건넨 엄마조차도 없었는데
엄마는 무얼 먹고 엄마로 자랐어?
나는 텅 빈 맞은편 의자를 바라보며
대답 없을 질문을 던졌다
그녀의 반찬이 말했다
너의 웃음, 너의 어리광,
너의 성장 때론 울음
그리고 어쩌지 못할 원망을 먹고
그렇게 엄마는 엄마로 클 수 있었어
엄마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거야
혼자서도 잘 도망칠 수 있는 어른이 될 거야.
엄마는 알아. 엄마는 믿고 있어.
나는 뒤늦은 구원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