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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on Oct 18. 2022

오늘의 나를 일으키는 건 어제의 나

 내 룸메이트가 물었다. "언니, 매일 밤마다 뭘 쓰는 거예요?" 매일 밤 똑같은 공책이 깜지가 되도록 무언가를 적고 있으니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이루고 싶은 꿈의 문장을 알려주고, 그를 백번 쓰기 한다고 말하니 다시 물었다. "그걸 왜 쓰는 거예요?" 그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했다. 이 행동을 하게 된 근원적 이유를 생각해보지 않아서다. "글쎄, 그러게." 그렇게 얼버무렸고 나는 그 이유를 계속 생각했다.


 글을 쓰는 학과에서 합평은 일상이다. 내가 밤새도록 열심히 써간다 한들 합평이 시작되면 멘탈이 가루가 될 때까지 까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마침표를 찍는다고 글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게 합평을 통해 무한 수정을 반복하다 보면 글이 발전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글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생겨난다. 처음에 내가 뭘 쓰려고 했는지, 무엇 때문에 내 글이 좋다고 느껴졌는지 그 감정이 기억나지 않는다. 밤새 신나 모든 열과 성을 다해 써 내려간 내 글이 무력한 종이 쪼가리로 느껴진다. 기죽은 마음에 억지로 완성한 글은 독자가 제일 먼저 알아본다. 쓰는 사람도 재미가 없는데 읽는 사람이 재미있을 리 없다. 개성도 재미도 없어진 글은 투박하지만 빛나는 원석의 힘마저 잃어버린다.


 우선 잘 읽었고요, 로 시작되는 많은 합평들이 그렇게 대본의 완성을 막는다. 내 장단이 흥겹지 않을 수 있다. 미숙하고 전문적이지 않아 아직 세상에 내보일 단계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모든 것이 낯설어, 배우고 익히는 것을 반복하는 인생의 초보자가 아니던가. 세상은 어설픈 것을 기다려줄 줄 모른다. 첫술에 배부를 줄 모르면 영원히 밥을 먹으면 안 될 것 마냥. 이 현상이 글에만 국한되면 차라리 다행이지만 문제는 인생에서도 이 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살면서 타인의 말에 갇히는 경험을 자주 한다. 그 타인이 확실한 악인이면 내 인생에서 빼버리면 그만이지만 그 불분명한 경계선에 서 있는 말들이 더 많다. 그럴 때면 가장 쉬운 것은 자기 의심이다. 내가 놓친 것은 없나. 그의 말대로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계속 나를 의심하고 자책한다. 이 악순환을 반복케 하는 타인이 내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엄마라면? 우리 엄마가 말끝마다 붙이는 마법의 문장이 있다.


"나는 없는 말은 안 해."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

 엄마는 스스로를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엄마나 타인은 절대 모른다. 내가 그 별 거 아닌 평가를 듣기 위해 얼마나 인생에서 고군분투하며 노력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말을 얼마나 곱씹으며 괴로워하는지를. 그리고 말에 갇혀 무력함을 느낄 때면 내가 하는 것이 100번 쓰기, 30분 달리기, 방 치우기 같은 것들이다. 내 인생의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다 느껴질 때 달성하기 쉬운 작은 성취들부터 해치운다. 무기력이나 화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그 일들을 실행한 후 잠을 잔다. 그리고 다음날 이면 내가 해놓은 작은 성취를 기반으로 새롭게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다.


 말에는 자성이 있다. 자성을 띤 쇠붙이는 자기 무게의 약 12배나 되는 물건을 들어 올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자성을 잃은 쇠붙이는 깃털 하나도 들어 올리지 못한다. 나는 내 말로 나의 꿈을 끌어당기는 인간 자석이 되기 위해 매일 밤 나를 칭찬 감옥에 가둔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되뇌면 그것에 가까워진다. 내가 무의식에 박아둔 생각은 기회가 나타났을 때 반사적으로 몸에서 반응해 그 기회를 낚아챈다. 경기를 잘 해내기 위해 운동선수들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라 믿는다. 나는 내 꿈이 어떤 방식의 기회로 찾아올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을 빠르게 낚아채고 본능적으로 반응하기 위해 쓰고 달린다.


 내 확신이 부족했던 시절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다. 언제나 좋은 말만 해주는 친구도 있었지만,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상처받는 내 예민함이 견딜 수 없이 미웠다. 오독과 오해로 친구와 멀어지는 게 싫어 관계에 거리를 두었다. 가족들과의 식사자리도 피했다. 다 같이 모여 밥 한 술 뜨며 툭툭 던지는 질문에 무너질까 봐 혼자 밥을 먹었다. 무너진 후 괴로워하며 일어나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인데,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화를 내면 나만 예민하고 이상한 사람이 됐다. 나는 그때와 같이 여전히 예민한 사람이다. 아직도 나는 에너지가 떨어질 때면 반드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하지만 이제 나는 예민한 내가 좋다. 모든 장단점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걸 알아서 나의 모든 성과들은 내 예민함에서 비롯됐음을 안다. 내 소중한 사람들은 이런 나를 믿고 존중한다.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죽는 청개구리 시절 나는 '말의 감옥'에 갇혀 설친 무수한 밤들을 기억한다. 던진 사람은 기억도 나지 않는 그 말 한마디 때문에 끊임없이 나를 다그치며 그동안 내가 해온 일들 의심했다. 그럴 때면 나는 칭찬이 고팠다. 유튜브의 타로카드 채널들을 찾아 들어가 구체적으로 내 미래가 막연히 잘 될 거라는 말들을 계속 반복해 들으면 잠들 수 있었다. 그냥 그 카드를 골랐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오래도록 위로해준 덕분에 나는 잠들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백번 쓰기로 매일 밤 나를 격려해 준다.


 지금 내가 쓰는 꿈의 문장은 누군가 들으면 비웃을 만한 것이다. 우리 엄마도 비웃었다. 하지만, 엄마는 늘 내 꿈에 대해 가장 냉소적인 사람이었기에 이젠 그 타격이 적다. 그냥 그날부터 백번씩 썼다. 자신의 작은 모래성을 번번이 무너트리는 부모 밑에서 자라나 내 꿈을 꾸는 법을 잊어버렸다면, 이 방법을 추천한다. 1년이면 3개의 소원을 간절히 지킬 수 있다. 비전보드처럼 내 생각을 종이에 적으면 바로 물질화되어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 나도 믿지 못하는 나를 조금씩 믿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응원해주고 싶어 진다. 나에게 최고의 것을 주고 싶고, 내가 가장 큰 꿈을 꾸도록 지켜주고 싶다. 종이가 부풀어 닫히지 않는 일기장을 보면 나의 내면도 그렇게 단단해지고 있다고 믿게 된다.


 '객관적으로 보기에', '현실적으로 보기에'. 그건 그 사람이 사는 세상의 필터로 본 관점에 불과하다. 그들은 당신이 살아온 인생을 모른다. 당신이 얼마나 힘든 상황 속에서 지금만큼이라도 일궈오기 위해 어떤 마음으로 임했는지 그 사람들은 알 리가 없다. 아니, 관심도 없다. 그래서 그렇게 함부로, 섣불리, 경솔히 말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간절히 염원하며 노력하는 용기 있는 이들은 타인의 도전과 모험에 박수를 보내지 돌을 던지지 않는다. 나는 예민한 당신이 좋다. 당신은 예민한 만큼 다정할 것이다. 예민한 만큼 자주 누군가의 말에 넘어졌을 테고 힘들게 일어났을 것이다. 그 덕에 당신의 말 그릇은 더 넓고 깊고 따뜻해졌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만의 전투를 치르고 있을 타인을 이해하며 다정함을 건네는 그 근간에는 당신의 예민함이 있다.


 얼마 전, 자우림 콘서트에서 '팬이야'라는 곡을 듣고 비 오듯 눈물을 흘렸다. 예민함으로 잘 먹지도 못한다는 언니의 고백이 무색하게, 그녀의 작고 마른 몸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커다란 공연장 안 모든 관객의 가슴을 울리며 꿈과 자기애에 대해 목청껏 외치고 있었다.


당신이 꿈꾸는 완벽함은 잊으라. 모든 것에는 갈라진 틈이 있고 바로 그 틈이 빛이 들어오는 곳이다.    
- 레너드 코헨

 

 구원은 어제 내가 치워놓은 , 어제 내가 달린 30분의 달리기, 어제 내가  100 쓰기로 부풀어 오른 일기장, 따뜻하게 우려낸  잔의 보이차 안에 있다. 나는 이제 안다. 나를 일으키는 것도, 나를 키우는 것도 모두  안에 있다는 것을.



Q. 오늘 당신을 일으킨 어제의 당신이 한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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