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을 꿨다. 친구의 이름 모를 썸남에 대한 이야기로 까르르 웃고, 박막례 할머니의 유튜브를 보며 낄낄대다 스르륵 잠든 밤이었다. 걱정이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불안함과 초조함을 겪어본 적 없는 사람처럼 행복과 긍정 바이러스를 뿜어대다가 잠들었다. 엄마한테도 시답지 않은 농담을 던지다가 등짝을 후려 맞고 잠들었으니 가족들도 내가 악몽을 꿨으리라 감히 예측할 수 없었다. 악몽에서 깬 내 얼굴을 만져보니 눈물과 콧물 범벅이었다. 물 한잔 마시고, 세수하러 화장실로 가다가 엄마를 마주쳤다. 엄마는 내 얼굴을 보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냐, 그냥 개꿈 꿨어."
그 꿈에 대해 당장이라도 아무나 붙잡고 털어놓고 싶었으나, 그 얘기를 절대 할 수 없는 당사자가 가장 먼저 나에게 꿈에 대해 물었다. 꿈속의 나는 무슨 이유에선가 가족을 위험에 처하게 했고, 대신 내가 반드시 죽어야 만했다. 그래야 가족들이 살 수 있었다. 엄마가 어쩔 수 없이 칼로 내 심장을 찌르기로 했다. 꿈속의 나는 그런 엄마 앞에 무릎을 꿇고 싹싹 빌면서 살려달라고 말하지 않고, 칭찬을 해달라며 목 놓아 울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생생한 개꿈을 콧물까지 흘리면서 꿨고, 끝내 그 꿈에 대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또 어떤 날은 버스정류장에서 얼굴 없는 무수한 사람들과 서 있었다. 버스가 정차하자 사람들이 우르르 올라탔다. 나는 내가 타려는 버스가 맞는지 사람들에게 버스 번호를 물었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나만 그 버스에 올라타지 않았고, 버스가 출발하자 나는 그때부터 그 버스 뒤꽁무니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울면서 버스를 뒤따라 달리기만 하다가 꿈에서 깼다. 하지만 깨고 보니 나는 울고 있지 않았다. 그 후에도 여러 번 그런 식의 개꿈을 꿨다. 꿈속에서는 다급했고 울고 있었지만, 눈을 뜨면 나는 멀쩡했다. 개꿈도 자꾸 꾸다 보니 무뎌져 갔다.
꿈을 꾸고 잠에서 깨면 늘 물을 한 잔 마셨고, 다시 방에 들어오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책을 읽고, 일기나 끄적이다가 아침이 밝곤 했다. 3시간을 자도 잠이 오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들처럼 잠에 들지 못했으면 피곤하지라도 않던가. 피곤함은 똑같이 밀려왔다. 기억도 나지 않는 스토리의 개꿈들에서 여러 번 깨다 보니 일상에서는 점점 꿈에 대한 걱정과 불안도 느끼지 않게 됐다. 그러니 더더욱 누군가에게 말할 필요도 없었다. 첫 번째나 두 번째 꿈은 몰라도 이제는 괜찮으니까. 괜찮은데 예전에 괜찮지 않았다고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그것도 모두가 괜찮지 않을 이 시기에 굳이. 그냥 아침이 오면 다시 현관문을 나섰고, 일상적이고 평범한 척 매일매일을 보냈다. 늘 울던 사람이 울지 않는 상태가 가장 위험하다는 걸 슬픔이 익숙해져 버린 탓에 깜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