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가 시작된 후 내가 정한 루틴은 눈을 뜨자마자 일단 집 밖을 나와 책상에 앉는 것이었다. 씻고, 먹는 기본적인 일이 어려울 때는 그 작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조차 부담감으로 다가와 집 밖을 나가기가 더 힘들어진다. 그래서 무조건 양치도 안 하고, 눈곱도 안 뗀 채로 옷을 갈아입고 현관문을 나섰다. 무조건 반사로 튀어나갔다. 생각할 시간을 주면 안 된다. 책상에 앉고 나서는 감사일기를 쓰든, 명상을 하든, 근거 없이 잘 될 거라는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든 간에 누워있지 않고 아무거나 하면 된다. 나는 책상에서 자지 못하기 때문에, 독서실로 향했다. (생각보다 섬세하기 때문이다.) 한 동안 내 아침 루틴은 '눈 뜨면 책상에 앉기'였다.
머리를 들 힘도 없는 날은 생수통 뚜껑 위 머리를 얹고 타로카드 유튜브 채널을 주구장창 들었다. 뭐 아무거나 잘 될 거다, 밑도 끝도 없이 횡재수가 있을 거다. 네가 집에서 우울증 앓든 말든 이번 하반기에는 귀인을 만날 거다. 아니면 인생을 뒤바꾸는 이상형이 고백을 해올 거다. 그래서 사귀면 부와 명예를 거머쥘 거다. 그런 얘기를 그냥 틀어놓고 들었다. 믿고 안 믿고 판단 같은 건 없다. 그저 뇌는 멈췄어도 무조건 긍정적 피드백을 돌리는 것에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듣다가도 내게 나쁜 말을 한마디라도 하면 그 채널은 무조건 차단이었다.
우울증이 오기 전, '원래의 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평소와 다른 감정을 늘 메모하는 편이었다. 그건 상황을 객관화하기에도 좋고, 무엇보다 나중에 글감이 되기 때문이다. 흘러가는 하나의 표현이나 문장을 붙잡아 두었다가 점차 하나의 글로 완성되는 과정이 주는 짜릿함을 즐기는 나는 변태다. 그런데 우울증 이후에는 쾌락적 글쓰기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메모만 쌓여갔다. 완성은 안된 조각 글들은 책상 위의 텅 빈 약봉지마냥 부질없어 보였다. 그래도 돌아보면 그게 자산이 됐던 경험을 믿으며 뭐든 끄적였다. 의사 선생님이 요즘은 뭘 하고 있냐는 질문에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논다'고 답했다. 일주일마다 감정의 성적표를 평가받는 기분이었다.
스무 살의 나는 아예 언어가 없었다. 그래서 글을 쓸 수 없다는 증상에 대해 우울감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저 끝이 보이지 않는 우울의 바다에 잠겨 숨 막혔던 감정만 기억난다. 그때 나는 오늘 무엇 때문에 가라앉는지 혹은 무심코 들어온 공격의 말을 어떻게 방어할 것인지도 언어화할 수 없었다. 10년 전과 동일한 언어의 상실을 겪고 있지만 느껴지는 바는 분명히 달랐다. 좀 더 나의 정체성을 위협받는 느낌에 가까웠고, 이대로 영원히 글을 쓸 수 없는 인간이 되면 어떡하나라는 생각은 사실 공포에 가까웠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더 생각하게 되니까, 아예 말 그대로 글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10년 전과는 다를 거다. 나에게는 정신과 선생님이 주신 무적의 알약 2개가 있으니까.
우울증이 시작되면 하루하루를 견디기 바쁜 탓에 괜찮아 진후 그 시기를 돌아보면 아예 기억이 삭제돼버렸다. 마치 그 시간이 증발된 것처럼. 두 번째 발병임에도 지금에 와서 참고할 경험이 없다는 게 좀 허무하기도 했다. 그때 그렇게 힘들었으면서 뭐라도 좀 남겨놓지. 나는 그동안 한 번도 우울증을 겪은 적이 없었던 사람처럼 살아왔다. 오늘의 메모는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를 세 번째 우울증을 앓고 있을 나에게 조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