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들의 수술 자국으로 찾아온
마흔 가장(家長)의 슬프고, 아픈 마음
2016년 7월 12일 화요일 저녁 11시 40분!
곤히 잠들어 있는 아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들의 왼쪽 눈은 실로 꿰매어져 있었고, 퉁퉁 부어 있었다.
오늘 오후 6시 평소와 다르게 일찍 퇴근했다.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회의에서 리더와 의견 충돌이 있었다. 그동안 수행한 결과에 대한 공유와 지난주 금요일에 있었던 고객과의 회의에서 제기되었던 고객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진행해 갈 것인지 방향을 잡는 회의였는데, 아직도 고객의 요구와 상품에 대한 리더의 이해가 조금 떨어져 보였기 때문이다. 조금 크게 다퉜다.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냉전기류가 사무실에 형성되어 있었다. 퇴근시간이 되었을 때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짐을 챙겨서 사무실을 나와 버렸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6시 50분경에 집에 도착했다. 장인께서 어린 아들을 보고 계셨고, 장모님께서는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계셨다. 두 분께 인사를 드리고 난 후, 옷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에서 손과 발을 씻었다. 그리고 장인 어르신과 놀고 있는 21개월 된 아들을 안았다. 아들의 따스한 체온이 느껴졌다. 프로젝트 리더와의 다툼으로 불편했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아들을 안고, 비행기를 태워주고, 씨름을 했다. 항상 아들이 이기는 씨름이었다. 아들은 연신 유쾌하고, 즐거운 웃음소리를 내었고,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아들의 웃음소리와 미소는 항상 나를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한다.
큰일이 벌어졌다. 내 품에 안겨있던 아들이 갑자기 뛰쳐나갔다. 어린 아들의 안전을 위해 깔아 놓았던 매트리스에 아들의 발이 걸려 넘어졌다. 순간 ‘쿵’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넘어지면서 TV장에 얼굴이 부딪힌 것이었다. 아들이 크게 소리 높여 울었다. 놀란 나는 급히 넘어진 아들을 안아 들었다. 그런데 어린 아들의 눈에서 피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큰일이 났다는 것을 나는 직감했다. 어머님(장모님)과 아버님(장인어른)께서 어린 아들의 울음소리에 달려오셨다. 두 분도 어린 아들의 눈에서 쏟아지는 피를 보고 놀라셨는지 움직이실 생각을 하지 못하셨다. 손수건을 찾아 급히 냉장고에서 얼음에 꺼내 들고, 손수건을 얼음에 적셔 지혈을 시도했다. 어린 아들의 피는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쏟아져 내리는 피 때문에 상처부위를 확인할 수 없었다. 작은 상처가 아님을 나는 직감했다. 병원으로 서둘러 가야 하는 위중한 상황임을 깨달았다. 차가운 손수건을 든 한 손은 아들의 눈을 지혈하고, 나머지 한 손으로 소리 높여 울고 있는 어린 아들을 안아 들었다. 나는 안방에 있던 자동차 키(Key)를 집어 들고 현관으로 뛰쳐나갔다. 그런 내 모습에 아버님과 어머님도 같이 뛰어나오셨다. 자동차가 있는 지하 주차장으로 갔다. 어머님께 울고 있는 아들을 안겨 드리고, 운전대를 잡았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지하 주차장을 나와 차를 급히 몰았다. 운전대를 잡은 손이 떨렸다. 큰 도로로 진입하는데 달려오는 차를 보지도 못했다. 사고가 날 뻔했다. 아버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서방, 정신 차려!, 이럴수록 침착해야 돼!”
아버님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운전대를 잡은 손은 여전히 떨렸다. 아들이 걱정스러웠다.
“어머님, 후 어때요?, 아직 피 많이 나요?”
“후, 눈 잘못되면 어떡해요”
어머님이 그런 나를 조금이라도 안심시켜 주시려고 하셨는지 침착히 말씀하셨다.
“괜찮아, 피는 좀 멈췄고, 후 좀 진정되었어”
김포공항을 지나, 원효대교, 자유로를 지났고, 고속도로 진입했다가 고양 IC로 빠져나와 동국대 병원까지 내달렸다. 병원까지 20분이 조금 더 걸렸을 뿐인데, 마치 한 시간 넘게 걸린 것 같았다. 차를 급히 주차하고, 아들을 안고 응급실로 뛰어갔다. 어린 아들의 옷과 나의 옷은 아들의 피로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그 모습에 응급실 의사들도 응급상황인 것을 깨닫고, 바로 조치에 들어가기 위해 서둘렀다. 의사가 나와 아버님, 어머님에게 한마디 했다.
“보호자는 먼저 접수처에 접수하세요. 아기는 할머니가 안고, 이리 오세요.”
어린 아들을 어머님께 넘겨주고, 나는 접수처로 향했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접수 지를 작성해야 하는데 떨리는 손 때문에 도저히 글자를 제대로 쓸 수 없었다. 겨우 겨우 떨리는 손으로 접수를 완료했다. 그리고 한 달음에 아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의사의 진료를 받던 아들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아빠~”
어린 아들의 목소리가 응급실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마주친 아들의 눈빛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빠, 도와줘~’
나는 아들의 그 눈빛을 외면하고, 진료를 보던 의사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나“어때요?, 눈은 괜찮아요?”
의사“시력엔 문제는 없을 것 같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 CT촬영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간단한 응급조치가 끝나고, CT를 찍기 위해 어린 아들을 안고 CT실 앞에서 기다렸다. 기다리는 내내 아들이 집에 가자고 졸랐다. 겨우 겨우 달래서 CT를 찍고, 결과를 기다렸다. 한 시간 정도 기다렸더니 의사가 다가와 결과를 이야기해 주었다.
“시력엔 이상이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눈 주위가 많이 찢어졌어요. 꿰매야 할 것 같은데 아이가 너무 어려서 전신 마취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신 마취 동의서에 작성해 주셔야 해요”
‘전신 마취?’
이제 겨우 3살 아니 21개월밖에 안 된 아기한테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고 하니 얼마 전에 읽은 좋지 않았던 기사가 기억났다. 전신마취를 해서 깨어나지 않은 불길한 기사였다. 내 아들에게 전신마취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응급실의 사무직원이 전신마취 동의서를 들고 왔다. 내용을 꼼꼼히 읽었다. 걱정스러운 문구가 있었다. 동의서를 작성하는데 머뭇거렸다. 아버님과 어머님을 봤다. 나는 두 분께 눈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괜찮겠죠?
아버님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말을 하진 않았지만, 아버님이 내 시선의 의미를 알아채신 것이다. 어렵게 전시 마취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의 이름을 간호사가 불렀다. 어린 아들을 안고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마취의가 신경이 많은 부위니 몹시 아플 것이다. 그러니 꼭 붙잡아야 한다고 나에게 신신당부했다. 어른들도 아파서 주사를 잘 못 맞는 곳이라고 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안 되니 아주 세게 붙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얼마나 세게? 겨우 21개월 아기인데...’
나의 오산이었다. 어린 아들이 요동쳤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람을 그렇게 세게 붙잡은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세게 붙잡아야 했다. 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몸으로 아들의 몸을 눌려야 했다. 아니 짓눌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개월 된 어린 아들에게 마취주사를 원활하게 맞힐 수가 없었다. 마치의가 어린 아들의 찢어진 눈에 주사기를 가져다 놓기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야 겨우 마취제를 다 놓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어린 아들은 마취주사의 고통에서 소리치고, 몸부림쳤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 하는 나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들!’
‘겨우 21개월 된 내 아기!’
나는 아들을 조금이라도 진정시키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 괜찮아!, 아빠 있어, 조금만 참아!”
이 말을 얼마나 반복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마취제를 맞은 아들이 도통 마취에 걸리지 않았다. 의사가 몇 번을 왔다가 갔기를 반복했다. 마취제를 맞고 1시간이 흘렀을 때쯤 의사가 와서 아들의 상태를 보더니 우리에게 말했다.
“이제 거의 마취가 다 된 것 같습니다. 수술하겠습니다.”
나는 아무리 봐도 아직 마취가 다 되지 않아 보였다. 어린 아들의 눈은 완전히 감겨있지 않았고,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빠, 집에 가자.”
나는 의사에게 항의하듯 말했다.
“이게 마취가 된 거라고요?”
의사는 그렇다고 했다. 나는 의사의 말을 의심했지만, 내가 의사가 아닌 이상 그 말을 믿어야 했다. 간호사가 보자기 같은 것을 들고 왔다. 그리곤 그것으로 어린 아들을 칭칭 감았다.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면서, 전심 마취가 되었는데 보자기로 칭칭 감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보자기에 칭칭 감기는 아들의 모습에서 또 울컥했다.
‘얼마나 고통스럽기에 마취가 되었다는데, 그렇게 해야 하나?’
의사가 수술을 시작하려고 했다. 나보고 아들의 머리를 꼬~옥 붙잡으란다. 마취제를 놓을 때보다 더 세게.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젠장 할 놈들, 아들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나의 생각과는 달리 손은 어린 아들의 머리를 향해 움직였다. 어린 아들은 고통스러워했다. 두 바늘을 꿰매었을 때, 나는 그 수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도저히 어린 아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버님이 나를 대신해서 들어가셨다. 나는 응급실을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3분 동안 미친 듯이 눈물을 쏟았다. 소리쳐 울고 싶었지만, 손은 입을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린 아들이 다치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후회되었다.
‘평상시처럼 늦게 나 집에 갈 걸, 괜히 일찍 집에 들어가서는...’
어린 아들이 마취제를 맞을 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수술바늘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진정으로 아들이 겪는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수술시간을 줄여 주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수술실로 향했다. 아버님이 21개월 된 어린 아들의 몸부림을 감당하지 못하고 계셨다. 아버님과 교대했다. 미칠 듯 마음이 아팠지만, 어린 아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 주고 싶었기에, 이전보다 훨씬 손과 몸에 힘을 주었다. 의사의 손놀림이 조금 빨라졌다. 세 바늘, 네 바늘, 다섯 바늘, 그리고 마지막 열 바늘 비로소 어린 아들의 수술이 끝났다. 아들을 데리고 얼른 집으로 가고 싶어 의사에게 물어보았다.
“이제 집으로 가도 되나요?”
의사가 단호히 안 된다고 했다. 마취가 다 깨어야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나와 아버님, 어머님은 어린 아들의 마취가 다 풀릴 때까지 기다렸다. 수술을 마친 지 한 시간이 지났다. 어느 정도 마취에서 어린 아들이 깨어난 것 같아 간호사를 찾아 의사를 불러 달라고 했다. 간호사의 호출에 의사가 오더니 어린 아들 보고, 혼자 걸어보라고 했다. 아들은 부축 없이는 걷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의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한마디 하고서 자리를 떴다.
“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혼자 5미터 이상 걸으면 불러 주세요”
몇 번을 간호사를 불러 확인받았지만, 돌아오는 말은 한결같았다. 아직 퇴원하면 안 된다는 것. 다시 한 시간이 지나서야 우리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행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어린 아들은 밝게 웃고 있었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밝게 빛나는 가로등을 보고 연신 외쳐대고 있었다.
“이쁘다!”
“멋있다!”
나는 그 모습에 속으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집에 도착하니 아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걱정했던지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아내는 어린 아들을 보더니 눈물을 쏟아냈다. 나와 어린 아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둘 다 옷은 피로 물들었고,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다. 어린 아들은 엄마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 말했다.
“엄마! 왔어?”
엄마를 봐서 좋고, 집에 다시 와서 좋았던 것이다.
전쟁 같았던 4시간이 지나 11시 40분!
아내가 어린 아들을 꼭 안고 자고 있다. 아내의 잠든 얼굴이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해 보였다. 엄마 품에 안긴 어린 아들은 평화롭다. 하지만 어린 아들의 눈엔 수술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런 어린 아들을 보는 내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고, 흘러내렸다. 주변은 온통 어둠으로 짙게 내려앉았다. 집안도 어둠으로 짙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내 맘도 어둠으로 짙게 내려앉았다.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아버지’란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와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고, 기뻐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아들에게 아픔과 고통을 준 아버지,
아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해야 했던 아버지,
오늘,
난 21개월밖에 안 된 어린 아들에게 그런 아버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