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들을 목욕시키다 찾아온
마흔 가장(家長)의 슬프고, 아픈 마음
3월 25일 토요일 저녁 9시 30분!
아들을 일주일 만에 목욕시키고 있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진주에 사시는 큰누나에게 어린 아들을 보냈었다. 아들이 없는 일주일의 시간은 나도, 아내도 참 힘든 시간이었다. 큰누나 집에 간 아들과의 화상통화도 아들에 대한 나와 아내의 그리움을 대신할 순 없었다. 오히려 그리움만 더 커져갈 뿐이었다. 아들의 머리를 감기려고 머리에 쓰는 샤워 캡을 씌우는데 머리 뒤쪽 부분에 두피가 드러나 있었다. 탈모였다. 그것도 작은 것이 아니라 오백 원 동전만 한 크기의 탈모였다.
지난주 어머님(장모님)의 암 진단과 갑작스러운 병원 입원은 어린 아들의 육아문제로 번졌다. 그동안 어머님(장모님)과 아버님(장인어른)께서 낮 동안의 육아를 맡아 주셨지만, 그것이 어렵게 된 상황이었다. 낮 동안의 아들 육아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나와 아내는 지난 토요일, 일요일에 백방으로 아들을 돌봐 줄 사람을 구했었다. 아들의 육아에 가장 적합한 사람으로 제일 처음 떠오른 사람은 아내의 출산 이후 아내의 산후를 도와주셨던 이모님 이였다. 당시 이모님께서는 어린 아들을 아주 좋아했었고, 너무나 잘 보살펴 주셨기 때문이었다. 이모님의 전화번호를 전화기에서 검색하고 아내가 전화를 드렸다. 신호가 갔다. 잠시 후 이모님께서 전화를 받으셨다.
“이모님, 잘 지내시죠?”
아내가 이모님께 인사말을 건넸다. 아내의 핸드폰 너머로 이모님의 그 따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 후 어머니~”
2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났음에도 다행히 이모님이 어린 아들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계셨다. 전화번호에 그렇게 저장되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나는 아내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이모님과의 전화통화를 하는 아내의 간절함은 나보다 더 했을 테지만 말이다. 아내의 목소리에 ‘제발’이라는 감정이 가득 묻어 있었다.
아내 “이모님, 혹시 다음 주부터 ‘후’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이모님 “후 어머님, 어떡하죠? 제가 지금 다른 가정의 일을 도와주고 있어서요. 안 될 것 같은데...”
아내 “이모님, 그럼 혹시 아시는 분들 좀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어린 아들이라 아무한테나 맡기기가 그래서요.”
이모님은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회사에 연락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주셨다. 아내는 이모님께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나와 아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산후 도우미, 가사 도우미, 육아 도우미 등 업체라는 업체를 핸드폰과 노트북으로 검색했다. 그리고 전화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을 구할 수 없었다. 당장 월요일부터 사람이 필요한 것도 문제였지만, 업체들마다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을 구하는 것이 어려울 줄 몰랐다.
나와 아내에게 침묵의 시간이 찾아왔다. 침묵의 시간 동안 나와 아내는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당신이 좀 안될까?’
나는 아내에게, 아내는 나에게 서로 그렇게 눈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큰누나가 생각났다. 큰누나라면 어린 아들을 돌봐 줄 최적의 사람이라 생각했다. 형의 아들과 딸, 누나들의 딸들을 잘 키워주고, 돌봐 준 큰누나였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상황을 이야기해 주면 큰누나가 봐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어졌다. 그리고 아내에게 말했다.
나“큰누나에게 부탁해 보는 것은 어때?”
아내 “시골이잖아, 엄마, 아빠 없이 후가 잠은?, 아토피가 있어서 신경 쓸 것도 많은데...”
이런저런 어린 아들을 걱정하는 아내의 말이 이어졌다.
나 “그래도 지금 우리가 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어머니잖아!, 그리고, 어린 후를 아무한테나 맡길 수 도 없잖아.”
나는 단호히 현실을 아내에게 우리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아내도 특별한 대안이 없음을 깨달았는지 내 생각에 겨우 동의했다. 나는 아내의 맘이 변화기 전에 나는 큰누나에게 곧바로 전화했다.
“누나, 후 좀 봐줄 수 없을까? 사실은...”
큰누나에게 어머니(장모님)의 암 진단, 갑작스러운 입원 등 조금은 장황하게 느껴질 정도로 우리의 상황을 큰누나에게 자세히 이야기했다. 다행히 큰누나가 아들을 보내라고 했다. 나와 아내는 다행이라고 느끼면서도 이제 겨우 4살 된 어린 아들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 사실에 힘들었다. 나는 곧바로 큰 여행 가방을 꺼내왔다. 아내는 아들의 물품들을 하나하나 꺼내 왔다. 속옷, 양말, 내복, 곁 옷, 타월, 아토피 로션과 크림, 베개, 이불 등.
아들의 물품들을 가방에 넣은데, 아내가 흐느꼈다. 그 모습에 나도 눈에 눈물이 고였지만, 아내를 위로해 줘야 했기에 떨리는 목소리로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강하게 키우자, 그리고 겨우 일주일 정도인데 뭐”
아내가 마음을 다 잡았는지 잠시 크게 호흡을 가다듬고 나에게 말했다.
“엄마, 아빠한테서 좀 떨어져 봐야지”
어느 사이 그 큰 여행 가방이 아들의 물품들로 가득 찼다. 짐을 싸는 내내 어린 아들은 신나 했다. 그리고 연신 나와 아내를 향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어디가? 엄마, 아빠?”
어린 아들과 저녁을 먹고, 내 손으로 시키는 이별 전 마지막 목욕을 시키고, 저녁 9시쯤 나와, 아내 그리고 상황을 전혀 모르고 여행을 가는 줄 아는 어린 아들과 함께 큰누나에게 어린 아들을 맡기기 위해서 집을 나섰다.
서울에서 진주까지 거리가 350km 정도의 먼 거리다. 9시에 집을 나와서 다음날 새벽 1시 정도가 되어서야 겨우 큰누나 집에 도착했다. 집에서 출발한 지 1시간 정도 되어서 잠이 든 아들은 도착할 때까지 잠을 자고 있었다. 아내는 잠든 아들을 품에 안고, 나는 큰 여행 가방을 들고서 큰누나 집의 초인종을 눌렸다. 큰누나가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초인종을 누른 지 3초도 지나지 않아서 큰누나가 현관문을 열어 주었다. 조심스럽게 큰누나 집에 들어갔는데, 그 분위기가 이상했었는지 잠자던 아들이 눈을 떴다. 잠에서 깨어난 것이었다. 잠시 큰누나에게 당부 아닌 당부 몇 가지를 전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데 어린 아들이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아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빠와 엄마가 저만 두고 가려는 것을 알기라도 했는지 점점 더 강하게 보채기 시작했다. 눈물이 가득 고인 아들의 두 눈은 나와 아내를 향했다. 아들의 눈빛에는 간절함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흐르는 눈물도 닦지 않고서 나와 아내를 향해 아들이 호소하듯 말했다.
“아빠, 엄마!”
“집에 가자~”
“같이 가자~”
나와 아내는 눈물범벅이 된 채로 간절히 호소하는 어린 아들에게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아들, 외할머니 아픈 것 알지? 할머니가 아프셔서 한동안 후를 돌봐주지 못하셔, 그래서 큰고모 집에서 일주일, 딱 일곱 밤만 지내야 돼, 일곱 밤만 자고 나면 아빠하고 같이 후 데리러 올게, 그동안 고모, 고모부, 지혜 누나하고 재미있게 지내, 알았지?”
겨우 아들을 달래서 큰누나에게 아들을 맡기고, 집을 나왔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아들의 눈빛이 아련 거렸다. 떨어져야만 하는 현실이 힘들었지만, 나와 아내는 차에 올랐다. 그리고 집을 향해 달렸다. 돌아오는 내내 아내와 나는 서로를 위로했다.
“괜찮을 거야”,
“강하게 키워야지”,
“일주일인데 뭐”,
“이젠 떨어져 봐야지”
:
매일 누나와 통화하는데, 그때마다 후가 하루에 수백 번도 넘게 고모한테 이야기한다는 것이었다.
‘큰고모, 후 집에 가자’,
‘큰고모, 후 엄마, 아빠 회사에서 오늘 올 거야’,
‘큰고모, 후 엄마, 아빠 보고 싶어’
후의 사촌 누나들과도, 고모부와도 거리를 두고서 오직 큰 고모한테 하루 종일 붙어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고모한테서 잠시라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고.
며칠 동안 큰 누나가 아들과 화상통화도 시켜주지 않았다. 보면 더 힘들어하고, 적응하지 못한다면서, 그러다 지난 목요일부터 아들과 화상통화를 누나가 시켜 주었다. 아들은 그때마다 울면서 나에게 호소했었다.
“아빠, 언제 와?”
아들과의 화상통화는 나의 회사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루 종일 프로젝트로 고민해도 모자랄 판에 아들의 눈빛과 말은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지금 아들은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울고 있지는 않을까?’,
‘엄마, 아빠 찾아간다고 누나를 힘들게 하지는 않을까?’
어린 아들이 안타깝기도 했고, 아들이 보고 싶기도 했다. 도저히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어도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저녁엔 엄마, 아빠 없이 긴 밤을 보내야 하는 아들이 걱정되었다. 그렇게 아들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으로 일주일 보냈었다. 그리고 간절히 아빠, 엄마를 찾는 아들을 데리려 어제 시골로 갔었다.
어머님(장모님)의 건강도 걱정되었고, 아들을 돌봐 줄 사람을 구하지도 못했지만 아들에게 너무 큰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저녁 마지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에서 머문 1시간이 너무나 길었다. 아들의 모습이 어떻지 걱정스럽기도 했고, 아들을 본 다는 설렘으로 가득했다. 사천 비행장을 나와 공항에 서 있는 택시에 올랐 타고서 30분을 내달렸다. 누나 집에 도착해 초인종을 서둘러 눌렸다. 대학생 조카가 문을 열어 주었다. 그 뒤로 어린 아들이 보였다. 아들과 눈이 마주쳤다. 아들은 나를 보곤 뛰어 달려와 나의 가슴에 안겼다. 그리고 일 때문에 함께 오지 못한 엄마를 아들은 연신 찾았다. 하룻밤을 큰누나 집에서 더 보냈다. 아들은 내 품에서 꼬~옥 안겨 잠이 들었다.
오늘 아침 일찍부터 아들은 집에 가자고 보채며, 비행기를 타는 내내 집에 간다고 좋아했다.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부쩍 어리광이 늘어 있었다. 아빠와 엄마에게서 잠시라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안기고, 뽀뽀하고, 노래하고, 놀고 평상시 낮잠 자는 시간이 되었는데도 잠을 자려고 하지 않았다. 졸리는 눈을 껌벅 껌벅이면서도 잠이 들면 또 엄마, 아빠와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내 눈에도 보였다. 가슴에 꼭 안고 겨우 낮음을 재웠다. 두 시간 정도 아들은 낮잠을 자다 일어났다. 그런데 일어나자마자 옆에 엄마, 아빠가 없음을 깨닫곤 엄마, 아빠를 간절히 찾으면서 울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나와 아내는 놀라서 아들이 자고 있던 안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리곤 아들을 품에 꼭 안고 겨우 진정시켰다. 낮잠을 자고 나서도 엄마와 아빠 곁에서 잠시라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엄마 아빠와 떨어진 일이 아들에겐 심적으로 힘든 일이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하루였다.
저녁 늦게 재울 준비를 위해 목욕을 시키다가 발견한 아들의 원형탈모에 당황했다.
‘아들의 탈모가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탈모는 없었던 같았다. 나는 아내를 소리쳐 불렀다. 아내가 욕실로 오면서 말했다.
“왜? 무슨 일인데?”
나는 아들의 뒤통수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후, 머리 빠졌었어?”
아내는 아들의 오백 원 동전만 한 크기의 탈모를 보고는 크게 놀랬다.
“뭐야~, 이게?”
나는 어린 아들의 목욕을 시키고, 로션을 바르고,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혔다. 그리고 품에 꼬~옥 안고, 거실로 나갔다. 그 사이 아내는 유아 탈모를 검색하고 있었다. 유아 탈모의 원인은 유전적 요인, 면역적 요인, 환경적 요인이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환경적 요인의 내용을 보고 우리 충격에 빠졌다.
‘흔히 스트레스가 원형 탈모와 관련되어 있다. 큰 정신적 충격이나 스트레스가 원형 탈모 발생에 관련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원형 탈모 발생 전 6개월 이내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의미 있다고 보고되어 다. 원형 탈모 환자의 약 20% 내외에서 스트레스와 관련되어 있다.’
엄마와 아빠에게서 떨어져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큰 충격이었으면, 머리카락이 빠졌을까?
이 어린것에 그 큰 고통을 안겨준 사람은 누구도 아닌 바로 나와 아내였다. 어린 아들의 그 힘들었던 일주일을 생각하니 고통과 아픔이 밀려왔다.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내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눈물이 잔뜩 고여 있었다. 나의 눈에도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나와 아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들을 꼬~옥 안았다. 그리고 우리는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