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家長)의 애상 "오빠 만나서 이 모양, 이꼴이야!

아내와의 말다툼에서 찾아온
마흔 가장(家長)의 슬프고, 아픈 마음



2016년 11월 13일 일요일 오후 5시!

아내와 크게 말다툼을 하고, 회사에 나왔다. 사무실 안은 11월 중순인데 벌써 싸늘했다. 평소엔 주말에도 일하는 동료들이 많았었는데, 오늘따라 아무도 없었다. 혼자 덩그러니 사무실에 앉아 아내와의 말다툼에서 아내가 나에게 던진 말 한마디로 다쳤던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오늘 오후 1시 30분.
가족과 점심 식사를 하고, 어린 아들과 함께 블록과 조그마한 미니 자동차 장난감 놀이, 플레이-도우(Play-Doh) 만들기 놀이, 색연필로 스케치북에 그림 놀이를 하면서 2시간 가까이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들이 소방차 레고를 들고 오더니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 블록 하자!”


아들의 말에 레고 조작들을 꺼내서 소방차를 만들고, 만들어진 자동차로 화재진압 놀이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30분 정도 놀았을까? 아들은 또 공항 레고를 들고 와서 나를 졸랐다.


“아빠, 공항도 만들어서 놀자!”


아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아빠가 있던가? 나도 여느 아빠와 마찬가지였다. 아들의 말에 또 레고 조작들을 상자에서 꺼내고, 조립했다. 조립된 비행기와 에어포트의 자동차들로 일본도 가고, 베트남도 가고, 세계 여행을 다녔다.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들은 다시 잠시 뒤로 미뤄 두었던 플레이-도우(Play-Doh)를 들고 왔다.


“아빠, 이젠 플레이-도우 하자!”


플레이-도우 상자에서 온갖 색깔을 찰흙들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나를 보고 보챘다.


“아빠, 자동차 만들어줘~”


노란색, 검은색, 하얀색, 분홍색, 초록색으로 사랑스러운 아들이 만들어 달라는 각종 차들을 만들어 주었다. 만들다 보니 어느 사이 8개나 되었다. 아들이 말하는 물차(Water Tank Truck), 청소차, 포클레인, 덤프트럭, 앰-블런스, 경찰차, 소방차, 유치원 버스. 아들은 플레이-도우로 만든 자동차를 한 줄로 세우더니 또 미니 자동차를 가슴 한가득 안고 왔다. 그리곤 이미 세워둔 플레이-도우로 만든 자동차 옆으로 그 미니 자동차들을 한 줄로 세웠다. 소방차, 경찰자, 허머, 지프차, 이층 버스, 유치원 버스 등 한 줄로 세워 놓으니 꽤 많았다. 총 22개의 조그마한 자동차가 두 줄로 세워졌다. 아들과 나는 22개의 자동차를 타고서 또 여기저기 여행을 다녔다. 시골도 가서 강물에 발을 담그면서 놀았던 지난 추석 때의 기억도 떠 올렸고, 철도박물관을 다녀왔던 기억도 떠올렸다. 조그마한 자동차로 여행을 다닌 지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들은 또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들고 와서 놀아 달라고 졸랐다. 끝이 나지 않는 어린아이의 놀이 욕구였다.


“아빠, 자동차 그려줘”


아들은 간절한 눈빛으로 나에게 부탁했다. 스케치북을 펼치고, 아들이 그려 달라고 하는 자동차를 그려 주었다. 스케치북 4장이 넘게 그려주었다. 한 장에 거의 8대에서 10대를 그려주었으니, 대략 40대를 그렸나 보다. 아들은 조금이라도 맘에 들지 않으면 다시 그려달라고 떼를 썼다. 아무튼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집을 피우는 게 꼭 어린 시절의 나를 닮은 것 같다. 속으로 ‘닮아도 좋은 것 좀 닮지’라고 투덜대면서도 흐뭇하기도 했다. 4장의 스케치북을 어린 아들이 이리저리 넘겨보더니 마음에 들었나 보았다. 사진을 찍어 달라고 졸랐다. 나는 아들의 요청도 있었지만, 내가 생각해도 좀 잘 그렸다고 생각해서 기꺼이 아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4장의 사진을 핸드폰으로 찍었다. 사진을 다 찍고서 어떻게 나왔는지 보는데 아들이 핸드폰을 보여 달라고 졸랐다. 핸드폰을 보여 달라고 조르는 아들, 그리고 핸드폰은 안 된다는 나와의 씨름이 이어졌다. 하지만 결국 아들이 이겼다. 그런데 스케치북의 자동차를 찍은 사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평소에 즐겨 보는 유튜브(YouTube) 애플리케이션을 열었다. 그리곤“캐리와 장난감 친구들”라는 콘텐츠를 열고 보았다.


아들과 내가 노는 동안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설거지를 위해 쏟아져야 할 물줄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아내의 설거지가 끝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잠시 후 아내의 화난 목소리가 집안에 울렸다.


아내 “집안 꼴이 이게 뭐야?”
나 “놀면 다 그렇지”

아내 “치우면서 놀아야지~”


사실 거실은 온통 장난감으로 가득했고,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블록들, 미니 자동차들, 플레이-도우로 자동차를 만들고 남은 잔해들, 스케치북, 색연필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무심코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나중에 할게~”


그런데 그 말이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을 부운 꼴이 되어 버렸다. 아내는 크게 화내면서 말했다.


“나중에? 나중에 언제? 물걸레질은 언제 했어? 화장실 청소는?, 내가 더러워서 못 살겠어”


아내의 말을 듣는 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아내에게 대꾸하고 말았다.


“내가 안 하고 싶어 안 했어? 회사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들어오다 보니, 할 시간이 없었지”


그렇게 아내와의 말다툼은 시작되었고, 그 시작은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산을 넘어가고 말았다. 서로의 부모님 이야기까지 이어진 것이다. 파출부 이야기부터 그동안 섭섭한 이야기까지 말이다. 난 시골에 계신 부모님의 이야기가 아내의 입에서 나오자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왔었다. 그리고 아내와의 말다툼 수위는 더욱 올라갔다. 아내의 화는 결국 극에 달했고, 자신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게 신세한탄에 가까운 말을 쏟아 냈다.


“내가 이렇게 살 줄 몰랐어, 이런 집에서, 설거지나 하고...”



나는 더 이상 아내와의 말다툼이 싫었다. 그래서 옷을 챙겨 입고, 자동차 키(Key)를 들고서 집을 나와 버렸다. 그런 나의 등 뒤로 아내의 화난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만나서 내가 이 모양, 이 꼴이야! 알아?”

나는 회사로 가는 차 안에서 화를 진정시켜보려 애썼다. 화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었다.


“내가 청소를 안 하고 싶어서 안했냐고?”

“누굴 위해 늦게까지 일하는 건데”

“우리 부모님은 또 왜 그러기 나와?”

“나 만나서 뭐? 이 모양, 이 꼴? 당신 꼴이 어때서?”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한 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후회되었다.


“내가 왜 처음에 ‘나중에’라고 말했을까?”

“그냥 ‘알았어, 치울게’라고 하면 되었을 텐데”

“내가 ‘안 하고 싶어서 안 했어?’라고 왜 말했을까?”


그리고 집을 나올 때 아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오빠 만나서 내가 이 모양, 이 꼴이야, 알아?”


사실 그랬다. 아내는 나와 다르게 아쉬움 없이 아버님과 어머님으로부터 넘치도록 사랑을 받았고, 부족함 없이 살았던 사람이었다. 미안함이 밀려왔다. 좁은 집,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하고,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노력하는 모습, 손에 물도 묻히고, 아들의 대소변을 직접 받아 치우는 아내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나를 만나 예전에는 겪지 않았을 생활의 많은 불편, 예전에는 하지 않아도 되었을 집안일, 그것들을 감내하려고 노력하는 아내의 모습 등이 말이다. 그러다가 지난 40여 년 살아온 내 삶이 떠올랐다.




2002년 1월.

나는 아무 연고지도 없이 군 복무기간 동안 아껴 모았던 천오백만 원을 들고서 서울로 올라왔었다.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어디 묶을 곳도 없었다. 결국 고속터미널 주변의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학생들을 대상으로는 큰돈을 받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에 학교 주위의 부동산들을 방문했다. 부동산 사장님이 학교 주변의 여러 집을 보여 주었다. 천오백으로 구할 수 있는 깨끗한 방이 하나도 없었다. 하루를 더 여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학교 주변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길을 따라 올라갔다. 전봇대에 붙어 있는 전단지들이 눈에 띄었고, 나는 전단지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봤었다. 전단지에 붙은 대부분의 집들은 역시나 언감생심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집은 많은데 내가 지낼 집은 한 군데도 없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나온 한숨이었다. 그러다가 전봇대 맨 위에 붙은 전단지가 눈에 띄었다.


“보증금 천에 월 25만 원!”


나는 전단지에 적힌 곳에 곧바로 전화를 했다. 찾아간 집은 언덕을 20분이나 걸어 올라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2층 집이었다. 2층이라고 하지만, 2층은 문하나 있는 작은 조립식 건물이었다. 집주인에게 인사하고, 방을 보러 갔다. 아니나 다를까? 집주인은 나를 2층 조립식 건물로 안내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집안이 싸늘했다. 온기라곤 하나도 느낄 수 없었다. 수도꼭지를 틀어보았다. 다행히 물은 잘 나왔다. 옥탑 방을 나와 서울을 내려다봤었다.


‘서울, 경치 좋네!’

옥탑방에서 바라 본 서울. 이미지(구글)

나는 옥탑 방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경치가 너무 맘에 들었다. 이곳에서 시작하면 왠지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비록 이곳에서 시작하지만, 저 편에 보이는 아파트에 들어가 살 수 있는 날이 올 거야’


나는 집주인에게 조금 싸게 해 달라고 졸랐다. 월 25만 원이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집주인은 3만 원을 깎아 주었다. 바로 집주인과 계약을 체결했고, 여관에서 짐을 바로 챙겨 왔다. 혹시 집주인의 마음이 변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집주인에게 열쇠를 받아 들고서 짐을 풀었다. 서울 내 집에서 보내는 첫날밤이었다. 비록 바닥은 차가워서 등이 시렸지만 나는 행복했다.




‘서울 생활을 그렇게 시작했었지’


그렇게 시작한 나의 서울 생활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8년 동안 서울에서 치열하게 살아왔던 순간순간들이 스크린처럼 스쳐 지나갔다. 옥탑과 반 지하를 연연하던 시간, 한 푼의 돈이라도 아끼겠다고 한 겨울엔 보일러를 켜지 않고 지냈던 나날들과 여름엔 선풍기도 틀어 놓지 않고 잠을 청 했던 나나들, 그리고 한겨울에도 찬물로 샤워했던 장면, 연애하는 시간도 아까워서 일에만 매달렸던 장면, 회사에서 저녁 끼니를 때웠던 장면 등 힘들고, 고달팠던 장면들이 말이다.


참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노력했는데, 아직도 한 여자를 편안하게, 행복하게 해 주지를 못하는 지금의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의 인생, 너의 인생. 글 청명(Jin Hyeon Jin)



keyword
이전 10화가장(家長)의 애상 "어린 아들의 응급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