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기에 묻힌
마흔 가장(家長)의 슬프고, 아픈 마음
2017년 11월 두 번째 주말 일요일 저녁 7시!
하루 종일 회의와 문서작업을 하고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기운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누가 툭하고 건드리면 쓰러질 고목나무와 다를 바가 없는 그런 상태였다.
오늘 회사에서 오전 10시부터 회의를 진행하였다. 회의의 목적은 우리에게 프로젝트를 의뢰한 고객사의 서비스 현장을 팀원들이 역할을 분담해서 지난주에 다녀왔었는데, 그 결과에 대한 공유와 자료를 정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먼저 각 팀원들이 다녀온 결과에 대해 공유하였다. 현장진단 내용과, 현장진단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문제점이라 생각하는 것들을 공유했을 뿐인데 2시간 30분을 훌쩍 넘겼었다. 회의란 짧게 하는 것이 좋다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도 할뿐더러 하고 있는 일(경영컨설팅)의 특성상 서로 의견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배가 고팠다. 아침밥을 먹지 않는 습관 때문에 11시 30분 정도가 되면 항상 허기가 찾아오는 편이다. 오늘도 변함없이 11시 30분부터 배속에서 밥을 달라고 난리가 났었다.
‘꼬르록, 꼬르록...’
팀원이 내 배꼽시계를 들었는지, 나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위원님 밥 먹고 하시죠.”
나는 그 팀원의 제안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사실 너무 배가 고파서 팀원들이 하는 이야기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었다.
“그럼, 그럴까?”
나는 서둘러 팀원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회의를 중단하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팀원들과의 점심은 회사 근처의 비빔밥집에서 비빔밥을 먹고 난 후, 회사 1층의 별다방에서 커피 한잔씩 들고 다시 회의실로 돌아와 오전에 중단한 회의를 바로 진행했다. (개인적인 용무도 볼 시간도 주지 않고, 바로 회의를 진행한 것이 너무 미안하다)
공유한 내용과 문제점들을 화이트 보드판에 하나씩 정리해 갔다. 그리고 팀원 각자가 파악한 문제점들을 서비스가 전달되는 프로세스 상에 내용을 기술하고, 확인하고, 의견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1. 문제점을 일으키게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2.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3. 다른 이유는 없는가?
4. 지금까지 이야기 한 이유들을 살펴볼 때,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5.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위의 5가지 질문을 던졌고, 팀원들은 자신의 생각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팀원들의 논리에 나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1. 지금 말한 부분에서 논리적 오류는 없는가?
2. 현재의 논리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가?
3. 논리가 타당하다면 논리를 뒷받침할 증거(Evidence) 확보는 어떻게 수집하고, 확보할 것인가?
4. 증거(Evidence) 수집을 위한 방법은 있는가? 있다면 얼마의 시간을 사용할 것인가?
회의 중간중간 중요한 내용들은 화이트 보드판에 작성했다가, 지우기를 반복해 가면서 핵심 정보들로 채워갔다. 그렇게 또 얼마나 회의를 진행했을까? 어느 사이 저녁 5시가 되어 있었다. 무려 4시간의 긴 회의를 진행했었던 것이다. 물론 중간중간 급한 사람들은 조용히 화장실에 다녀오긴 했지만 말이다. 10분간의 공식적인 휴식시간을 가지고 난 후, 약 1시간 동안 우리는 그동안 논의하면서 확정한 문제점 하나하나를 화이트 보드판에 자세히 기술하고, 정리했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두었다. 그렇게 12장의 사진을 찍어 노트북으로 옮겨 빔-프로젝트로 띄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빠진 것은 없는지, 빼야 할 것은 없는지, 더할 것은 없는지, 논리를 더욱 탄탄하게 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내용과 포인트는 무엇인지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12개의 문제에 대해 정리 방향과 내용들을 확정해 갔었다. 그렇게 무려 7시간의 회의를 진행한 일요일 하루였었다. 피곤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니, 아들 후가 늘 하던 말을 건넨다.
“아빠, 왜 늦게 와?”
이젠 아들의 목소리에 특별한 감정이 묻어나지 않았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하는 말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그런 아들의 목소리가 조금 섭섭했다. 그리고 미안하기도 했다. 아들의 질문에 나도 늘 하던 것처럼 말했다.
“회사에서 삼촌이랑, 이모랑 일한다고 늦었어. 미안해”
아들은 “그래?”그 한마디를 던지고서는 등을 돌려서 아내에게로 뛰어갔다. 사실 늘 아들에게 하던 말이라 어린 아들도 그냥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옷 방에서 입었던 청바지와 후드티를 벗고, 집에서 입는 체육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화장실 문을 열어 간단히 샤워를 하고,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TV에서는 SBS 저녁 뉴스가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세월호 7시간’에 대한 내용이었다. 세월호의 이야기만 나오면 참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벌써 3년 하고도 거의 6개월이 더 지났음에도 말이다. 게다가 7시간의 공백이라니 참으로 웃기고, 한심스러운 나라가 아닐 수 없다. 뉴스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때 안방 화장실 쪽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왔어?”
그리고 보니 집에 와서 아내에게 인사도 하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 “응”
아내 “밥은 먹었어?”
나 “먹었어”
아내가 나를 보고 밥은 챙겨 먹고 왔는지 물었다. 나는 아내가 번거롭게 밥을 차리게 하는 것이 싫어서 먹었다고 말했다. 사실 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정말 나도 귀찮았다. 잠시 후 아내가 나를 보고 화제를 돌렸다.
“유치원 엄마들하고 카카오 톡 대화방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아들의 유치원 엄마들이 함께 이야기하는 채팅 방이다. 그 채팅 방에서 한 이야기를 하려나 보다 생각했다. 사실 내가 아내에게 아들 친구 엄마들하고 소통도 하면서 이런저런 정보도 좀 얻고, 친하게 지내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했었다. 그런데 요즘엔 사실 아내에게 권유했던 내가 조금 후회되었다. 생각했던 것만큼 주요한 정보들을 얻긴 했으나, 오히려 부작용이 조금 더 많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첫 모임 이후로 카카오 톡에 단체 대화방을 만들더니, 대화방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슨 대화를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와, 아들과 눈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부쩍 줄어들었다. 아내와의 대화를 유치원 엄마들에게 빼앗겨 버린 것이다.
이것만큼 큰 부작용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OO엄마가 그러는데, 건조기가 그렇게 좋다네, 먼지도 거의 없고, 아들 옷에 가끔 냄새가 났었잖아, 그런데 하나도 냄새가 안 나고 좋데, 뽀송뽀송해서 느낌도 너무 좋고...”
아내는 건조기의 장점들에 대해 장시간 할애해서 나에게 설명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아내는 건조기를 사고 싶다는 의사를 나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시선을 돌리면서 말했다.
“건조기?, 그렇게 좋데? 얼마나 한데?”
“백이십만 원 정도 좋은 건 이백만 원도 넘고”
아내가 나의 질문에 사전에 조사한 건조기 가격을 알려 주었다. 나는 아내의 말에 통장의 잔고가 얼마나 있는지 생각했다. 이어서 이번 달 나가야 하는 카드 값 등 총 고정 지출내역과 나가야 될 금액들을 떠올려 보았다. 경제적인 여력이 없었다. 나는 아무 의미 없듯 무심하게 아내에게 말했다.
“그래?”
그리고 시선을 아내에게서 TV로 재빨리 옮겨 버렸다. TV를 보는 나의 눈엔 어떤 화면인지 보이지도 않았다. TV에서 어떤 뉴스를 이야기하는지도 들리지 않았다. 나의 머릿속에선 통장 속 잔고, 지출해야 될 내역들, 그리고 건조기 가격이 맴돌았다.
‘겨우 이백도 안 되는 돈인데’
한편 나의 마음속에선 한탄 아닌 한탄의 울림이 가득했다.
‘그 돈이 지금 없어 그걸 사주지 못하는구나’
그렇게 한참을
머릿속에선,
숫자들이 떠나지 않았고,
마음속에선,
얼마나 된다고 그걸 하나 못 사주는 나의 현실에 슬픔 파도가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