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家長)의 애상 "아프다 말하지 못하는 나!"

몸살로 찾아온
마흔 가장(家長)의 슬프고, 아픈 마음



아침 7시 출근시간에 맞춰 일어났다. 목이 간질간질하고, 몸이 조금 으스스하다. 열이 나는 것 같다.


‘감기가 온 걸까?’



어제 A고객사에서 의뢰한 서비스 수준 및 현상 진단을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A사의 남부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대전 서구에 위치한 본부를 찾아갔었다. 남부의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경영지원팀과 경영기획팀 부장과의 인터뷰가 오후 2시부터 예정되어 있었지만, 사전에 현장의 분위기를 살펴보기 위해 일찍 출발하기 위해서였다.


서울역에서 8시경에 출발하는 KTX 열차를 예약했었다. 집에서 서울역까지는 공항철도를 이용하면 되었다. 집에서 김포공항역까지는 걸어서 15분이 걸리고, 김포공항역에서 서울역까지 공항철도로 탑승시간만 약 25분, 서울역에서 KTX를 탑승하는 승차장까지는 대략 5분 정도 걸리니 집에서 KTX 승차장까지 대략 45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08시에 출발하는 KTX에 오르기 위해선 6시 30분까지만 일어나면 전혀 문제가 없으니, 평상시 출근하던 것처럼 일어나면 되었다. 그런데 맘이 조금 조급했던 모양이다. 전날 조금 늦게 잠자리에 들긴 했지만,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잠을 설쳤다. 내일 인터뷰 전에 몇 가지 상황을 점검하고, 고민했었다.


1. 인터뷰 대상자의 R&R(Role and Responsibility)은 무엇인가?

2. 서비스 현장을 지원하기 위해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는가?

3. 어떤 내용으로 수행 활동에 대해 평가를 받고 있는가?

4. 인터뷰 대상자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원하는 정보들을 잘 이끌어 낼 수 있을까?


5시 30분 예정보다 1시간 일찍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직 아내와 어린 아들은 곤히 자고 있다. 집안이 싸늘했다.


‘보일러가 꺼졌나?’


보일러 계기판을 살펴보았다. 보일러 조절기의 모니터에 26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늘 맞춰 놓은 온도였다. 몸이 싸늘한 것은 기분 탓이었다. 하지만 혹시 어린 아들도 추위를 느낄지 몰라서 보일러 온도 조절기의 버튼을 눌러 2도를 더 올려놓고 출장 준비를 위해 화장실로 갔다.


6시 30분에 집에서 나왔다. 집을 나와 김포공항역으로 걸어가는데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세게 때렸다. 집에서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 바람을 막아 줄 건물이나, 조형물이 전혀 없다. 비행기의 안전한 이착륙을 위해 주변 건축물의 고도를 제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발 제한으로 인해 주변에 있는 것이라고는 나무 정도밖에 없었다. 차가운 바람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입고 있는 코트의 버턴을 잠그고, 코트 깃을 올리는 것 밖에 없었다. 추웠다. 차가운 바람은 한 겨울의 칼날과 같은 싸늘함에 느끼게 했다. 실제 온도보다 체감온도가 훨씬 낮게 느껴졌다. 겨우 공항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철역은 밖에 비해 상당히 따뜻했다. 역사 밖과 안의 온도차가 크게 느껴졌다. 공항철도를 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땀이 나는 것 같았다. 공항철도에 몸을 맡기고, 서울역에 도착할 때까지 오늘 해야 될 서비스 수준 및 현상 진단 기획서와 인터뷰 가이드를 다시 한번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혹시 원하는 정보를 얻는데 부족한 점은 없는지. 사실 며칠에 걸쳐 팀원들과 충분한 회의를 거쳐 준비를 했기에 부족한 점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 기획서와 가이드를 보는 내내 얼굴에서 땀이 났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흘리지 않는데, 나만 유독 얼굴이 땀으로 벅벅이 되고 있었다.


서울역에 도착했다. 손목에 찬 시계를 보았다. 7시 13분이었다. 기차 탑승 시간까지는 아직 40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2층 탑승 대기 좌석에 앉았다. 엉덩이가 차가웠다. 따뜻한 커피 한잔 할까도 생각했지만, 일어나는 것이 귀찮았다. 그렇게 차가운 좌석에 앉아 기차 탑승시간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전광판에 내가 타야 할 KTX 탑승정보가 떴다. 차가운 자리에서 일어나 8번 플랫폼으로 내려가 기차에 올라탔다. 따뜻했다. 승차장 대기 좌석에서 40분을 떨다가 따뜻한 기차에 올라선 지 추위에 긴장했던 몸이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었다. 눈이 감겼다. 제때에 기차가 출발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잠이 들어 버렸다. 대전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와 눈을 떴다. 기차에 탑승해서 앉자마자 잠이 들었다가 겨우 깬 것이니, 1시간 정도를 꼬박 잠이 들어 버린 것이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서구에 위치한 지역본부로 가기 위해 택시 승강장으로 이동했다. 대전이 서울에 비해 따뜻하긴 했지만, 그래도 추웠다. 검은색 개인택시에 몸을 실었다. 택시 안이 덥게 느껴졌다. 덥다고 인식하는 순간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손으로 흐르는 땀을 몇 번이고 닦아냈다. A고객사의 남부지역본부에 도착했다. A고객사의 남부지역본부가 위치한 인재개발원은 생각보다 넓었다. 그렇게 넓은 줄도 모르고 입구에서 택시를 보내 버렸으니 한참을 걸어야 했다. 인터뷰할 부서가 있는 건물까지 꽤 길었다. 20분 이상 걸어 도착했다. 몸은 추운데 머리 밑은 고인 땀으로 가득했다.


지사를 찾았다. 먼저 현장 기사들을 하나하나 관찰해야 했다.


1. 현장기사들의 용모 상태

2. 현장기사들의 복장 디자인과 청결 정도

3. 장비 관리

4. 창고의 구조 및 저장 물품

5. 창고 물품 보관 위치 및 분류 기준

6. 장비 불출 프로세스

7. 1회 장비 불출 규모

8. 현장출동 차량의 종류 및 관리상태

9. 장비와 공구 정리 정돈 상태

10. 사무실 부착물 종류와 내용

11. 사무실 근무 분위기

12. 사무실 구조 및 책상 배열 상태

13. 서류 내용 및 정리정돈 상태 등


사전에 준비한 체크리스트에 근거해서 확인하고, 메모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자료를 수집했다. 지사에 도착한 지 2시간이 훌쩍 넘어 있었다. 체크리스트에 맞춰 관찰만 꼬박 2시간을 한 것이다. 인터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점심을 거를 수밖에 없었다.


오후 1시 50분.

인터뷰 장소에 도착했다. 경영지원팀과 경영기획팀의 부장들과 준비한 인터뷰 가이드대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는 사전에 준비한 내용에 덧붙여서 오전에 서비스 현장을 관찰했던 내용을 추가하다 보니 예상한 시간보다 한 시간 이상 더 진행하게 되었다. 부장님들과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 인터뷰 내용을 팀원들과 간단히 공유했다. 시간이 어느 사이 오후 4시 30분이었다.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커피 한잔을 마실 여유도 없이 서둘러 대전역을 향해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출발시간을 겨우 5분 남기고 대전역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전력 질주했다. 겨우 KTX에 올라탈 수 있었다. 날씨는 추운데 몸에선 땀이 흘러내렸다. 오늘 한 끼도 먹지 못했다. 배도 고팠다. 그런데 눈이 감겼다. 서울역에 도착하니 6시가 조금 넘었다.


회사에서 기다리고 있는 팀원 때문에 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오늘 팀원들이 각자 진행한 관찰내용과 인터뷰 내용을 공유해야지만 내일 또 다른 팀원이 북부를 찾아가 서비스 현장을 진단하고, 담당자를 인터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팀원들과 20개 가까이 되는 체크리스트 내용에 맞춰 하나하나 리뷰했다. 체크리스트 내용별로 수집한 자료를 띄워서 설명했다. 건별로 평균 10분이 소요되었다. 20개 내용이니 거의 200분. 시간으로 따지면 3 시간 하고도 20분 동안 오늘 실시한 내용에 대해 리뷰 한 것이다. 늦은 시간까지 공유하고, 노트북을 정리했다. 손목시계를 봤다. 시침이 11시를 가리켰고, 분침이 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게 힘든 하루를 보내고 오늘 아침을 맞이했다. 몸이 으스스했다. 이마에 손을 가져가 보니 뜨거웠다. 뜨거움에 더해 엄청난 두통이 느껴졌다. 어린 아들 때문에 구입해 두었던 체온계를 찾아 귀에 가져다가 온도를 재보았다. 체온계의 숫자가 40.1을 기록했다.


‘이런 제길’
‘감기 몸살이 제대로 왔군!’


그때 아내가 일어났고, 아내와 나는 짧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아내 “일어났어?”

나 “응”
아내 “얼굴에 웬 땀이야?”
나 “그래? 괜찮은데”
아내 “얼굴 땀 좀 닦아”


나는 아내의 말이 끝나자마자 손으로 흐르는 땀을 훔쳤다. 그리고 화장실로 가서 변함없이 늘 하던 것처럼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하고, 머리를 만졌다. 그리곤 옷 방으로 가서 와이셔츠를 입고, 정장과 코트를 걸치고 출근 준비를 했다.


눈에선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머리는 지끈지끈 아팠다. 하지만, 현관문을 열고서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머릿속에 갑자기 이런 글귀가 떠올랐다.


아이였을 땐 유치원 가기 싫다!

청소년이었을 땐 학교 가기 싫다!

어른이 된 나는 회사 가기 싫다!


그런데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건 나이가 들수록 어렵다.

특히, 가장(家長)이라는 지위를 얻었을 땐 더더욱 어렵다.

오늘도 일을 해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아내, 내가 사랑하는 아들과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오늘도 출근해야 한다. 비록 내 몸이 아프고, 고달플지라도.



아파도 출근해야 하는 가장.PNG 아픈몸을 이끌고 출근하는 나는 家長


‘아픈 몸을 이끌고, 오늘도 집을 나서는 건 지켜야 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

‘나는 가장(家長)이니까!’


가장, 주춧돌.PNG 가장(家長) = 주춧돌. 글 청명(Jin Hyeon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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