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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훈 Dec 14. 2023

최악의 부자관계를 만드는 테이블 매너

“예절 교육의 시작은 밥상머리 교육”부터라는 말도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땅의 많은 부모들이 그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가족이 다같이 얼굴 보는 몇 안 되는 시간 중 하나인 식사 시간을 ‘애 잡는’ 시간으로 적극 활용하는 부모들도 많은 것 같은데, 참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런 집의 부모들은 과연 식사 시간에 자녀들에게 어떻게 대하는가? 익명의 제보자들이 보내온 정보들로 그 식사 시간을 재구성해 보자.

그 부모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취식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자녀들이 등교나 출근 등에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을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되는 경향이 있으며, 당신의 자녀에게 시전했을 때 생기는 결과에 대해서 필자는 절대 책임 못 진다.



- 요리는 영국 요리, 서빙 자세는 프랑스 요리

음식은 최대한 맛없고 대충 만들어서 내놓되 서빙 태도는 마치 프랑스식 풀코스 정식을 마련해 내놓은 요리사의 태도를 유지하라.

자녀가 아무리 시간이 없다고 아우성을 쳐도 상관없다. 음식을 계속 내오고, 다 먹기 전까지는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것이다.

팁을 몇 가지 알려드리자면 반찬은 절대 개인용 식판이나 앞접시, 또는 공용 반찬그릇 등에 ‘먹을 만큼만’ 담아 내놓지 말라. 냉장고에 반찬 보관할 때 쓰는 반찬통 째로 식탁에 올려야 한다.

반찬통도 유리로 된 조그마한 거 말고, 금속으로 되어 있고 사방에 잠금장치까지 달려 있는 큰 것으로 올려라. 그래야 더 위압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식사 도중에 계속적으로 당신과 음식에 대한 암묵적·명시적 찬사를 요구하라. “이거 맛있지?” 또는 좀 덜 줄어들었다 싶은 음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거 먹어.” 하고 계속 요구하라.



- 계속적인 잔소리와 추궁을 잊지 마라

식사 도중에 아이에게 있는 대로 ‘생트집’을 잡아라.

트집의 대상은 최대한 사소한 것일수록 좋다. 학업 성적이나 생활태도 등에 문제가 없다면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잡는 방법, 식사 중 마시는 물의 양, 식사 중 특별히 호불호가 갈리는 반찬, 숟가락과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 등에 대해 있는 대로 트집을 잡아 개선을 요구하라.

그 중에서도 식사 중에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는 것은 가장 기가 막힌 트집거리다. 밥 먹는 중에 그런 불경한 곳에 가야 한다는 데에 잔소리를 퍼부어라. 자녀에게는 큰 딜레마다. 화장실에 가면서 잔소리를 들을 것인가. 화장실에 가지 않고 먹는 자리에 앉아서 쌀 것인가. 

당신의 자녀가 아무것도 트집 잡을 게 없는 ‘A급 자녀’이면 어떡하냐고?

그러면 자녀의 생활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하라.

질문 태도는 마치 “해외여행 다녀온 연예인을 공항서 기다리고 있다가 벼라별 시덥잖은 질문을 다 퍼붓는 스포츠 찌라시 기자”와도 같이 해야 한다. 한 마디로 오만가지 다 ‘꼬치꼬치’!

정 물어볼 게 없으면 오늘 착용한 빤스의 색깔과 재질이라던가, 요즘 즐겨쓰는 볼펜의 기종이라던가, 오늘 시험보는 과목의 수와 과목명이라던가, 아무튼 최대한 시시하고 졸렬한 질문을 잔뜩 퍼부어라. 그런 질문을 고안해 내는 것도 꽤 중요한 능력이다.



- 반드시 복명복창을 요구하라

자녀가 묵비권을 써서 이런 잔소리와 추궁에 잘 대답을 안 할 경우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대답을 요구하라.

당신이 원하는 타이밍에 대답이 안 나올 경우, 살기를 잔뜩 담은 부릅뜬 눈과 뱃속에서 끓어오르는 목소리로 다음 대사를 시전하라.

“대답 안 해!?”

그래도 대답 안 하면 할 때까지 계속 몰아붙여라.

공자께서도 父命召 唯而不諾 食在口則吐之(“부모님이 부르면 즉시 대답하고, 음식이 입에 있으면 이를 뱉고 대답하라.”)라고 하시지 않으셨던가?

대답하는 자녀의 얼굴에 짜증과 원망이 가득하고, 입 안에 씹던 음식물이 그득히 쌓여 있는 게 보일 때면 이 스킬은 완성된 것이다.



- 먹는 동작이 시원찮으면 떠 먹여라

앞서도 말했듯이 당신의 자녀들은 취식시간이 원체 부족한데다, 당신이 이제까지 실시한 스킬들로 인해 그 부족한 시간마저 상당부분 깎여먹혔을 것이다. 게다가 자녀의 두뇌가 저녁형이거나 수면 부족에 시달릴 경우 아침에는 상당히 행동이 둔할 수 있다.

그래서 정해진 시간 내에 정해진 양의 음식물을 먹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데, 이럴 때는 당신이 직접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들고 떠 먹여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녀가 잘 받아먹지 못해 음식물을 의복이나 바닥에 흘릴 경우 따스하고 정겨운 표정과 말투로 “이 X끼야, 것도 제대로 못 받아먹어?!” 같은 격려의 말도 잊어서는 안 된다.



- 효과

이런 스킬을 쓰면 어떤 효과가 있냐고?

우선 가장 단기적으로는 자녀의 하루를 완전히 망치는 효과가 있다.

아이가 이런 식으로 밥을 먹으면 자신이 밥을 먹은 게 아니라, ‘음식물을 우겨 넣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쏟아지는 잔소리와 질문들 사이로 피해서 밥도 씹는 둥 마는 둥 하고 먹었으니 소화가 될 리는 만무하고, 소화불량 상태에서 하루를 보내는 게 즐거울 리 없다.

이런 방법을 오래 쓰면 자녀에게 장염이나 위염 등의 소화기 계통 질환이라는 멋진 선물도 선사할 수 있는데, 특히 자녀가 입시나 고시 등의 외부요인으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는 상태일 경우 그 효과는 거의 100%라고 봐야 한다.

게다가 자녀는 정신적 트라우마 상태에 빠져 가급적 당신과의 식사를 기피하게 될 것이고, 잘 하면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혐오감을 느낄 수도 있다. 너무 아쉽게 생각 마라. 어차피 “전생의 원수가 현생에서 부모자식 지간으로 만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아무리 귀여운 자식이라도 어차피 언젠가는 둥지에서 떠나보내야 할 운명. 당신에게 정이 떨어진 자식은 그만큼 더 높은 독립심을 키우게 될 것이다. 자녀가 남자라면 또 피할 수 없는 것이 군대. 이런 터프한 방식으로 식사를 하는 데 길들여진 당신의 아들은 군대의 식사시간도 ‘그나마 사람취급 받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잘 이겨내리라 믿는다.

자! 이제 당신의 자녀를 식사시간 때마다 마음껏 괴롭혀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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