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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을산다 Mar 10. 2022

전쟁과 기업

맥도날드의 모스크바 지점 폐쇄 소식을 보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3주차. 

맥도날드가 러시아 전역 레스토랑 문을 한시적으로 닫기로 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전세계적 규탄에 동참하는 움직임이다.


맥도날드 CEO가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 (출처: 맥도날드) 


춥고 배고팠던 21살의 어학연수생에게 맥도날드는 이방인의 서러움을 잊게 해주던 위안제였다. 구소련이 무너지고 개혁개방의 물결이 10년째 일렁이던 때였지만 어쩐지 나머지 세상과 단절된 듯한 그 곳에서 맥도날드는 내가 기대하는 자본주의의 맛을 흐트림 없이 전해주었다.

서울의 광화문에 견줄만한 모스크바 뜨베르스까야 거리 위에 있던 맥도날드. 나를 가르치던 모스크바 국립대 교수의 월급이 우리 돈으로 20만 원이 좀 넘던 시절인데 빅맥세트 가격이 1만 원에 육박했다. 가난한 연수생은 일주일에 한 번씩 성지순례하듯 맥도날드를 찾아 정갈한 마음으로 빅맥을 베어물었더랬다.


그 곳이 한시적으로 문을 닫는다 하니, 자본주의의 맛을 마지막으로 즐기고자 하는 행렬이 30마일 넘게 늘어섰단다. 몇 배로 가격을 뻥튀기해서 되팔이에 나서는 모습도 트위터에 속속 올라온다. 러시아는 이렇게 다시 30년 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1990년 맥도날드 모스크바점 첫 오픈 (위, 출처: AP) / 2022년 맥도날드 드라이브스루에 늘어선 차들(아래) 

유엔은 전쟁을 예방하지도 관리하지도 못한 채 전쟁이 터지자 성명을 내고 국가들에게 돈 내라 촉구를 하고 있고, 

미국과 서유럽은 우크라이나가 NATO의 일원이 아니라는 이유, 그리고 보다 더 현실적으로는 에너지 수급 등을 우려하며 강도 높은 제재를 일사분란하게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 루마니아 같은 동유럽 국가들이 쏟아지는 우크라이나 탈출민들 - 난민 - 을 받아들이고 있다. 인류애는 동유럽에만 강요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침공한 자, 침공을 규탄하는 자 모두가 '대의'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 

필부필부들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빼앗긴 채 피난길에 오른 우크라이나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각종 경제 제재 조치로 삶의 기반이 흔들리게 될 러시아인들도 마찬가지다. 


고향을 떠나는 우크라이나인들 (출처: 뉴욕타임즈) 


국가 폭력과 이로 인한 안보의 공백 속에 아이러니하게도 '제 역할'을 하는 게 비즈니스 영역이다.

비자, 마스터 카드가 러시아 금융기관을 결제망에서 차단하고,

볼보, 르노, 폭스바겐 등이 모스크바 공장을 폐쇄하거나 판매를 중단키로 했으며,

맥도날드, 스타벅스가 매장문을 한시적으로 닫기로 했다.

맥도날드는 특히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동유럽 국가들 내 로널드맥도날드하우스를 인도적 지원을 위한 거점으로 활용케 하는 등 시스템 차원의 다각적 지원안을 내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내 매장을 닫으면서도 6만2천여 명의 러시아 내 노동자들에게 임금은 그대로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제재의 구체적 실행도 비즈니스가, 국가보호의 공백을 메우는 것도 비즈니스가 한다. 

이건 지금까지 여타의 큰 전쟁에서 보지 못했던 장면이 아닌가 싶다.

전쟁에 동원되는 기업들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전쟁을 일으킨 독재자와 해당 국가에 실체 있는 제재를 가하는 게 기업이라니! 

한 때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기도 했던 러시아이지만, 이후 에너지가격 상승에 힘입어 높은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그만큼 글로벌 자본주의와의 접점도 넓어졌다. 러시아의 물가는 빠르게 치솟아 경제 양극화또한 극심해졌으며, 양극화된 경제체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러시아인들은 더욱 더 치열하게 자본주의에 적응해왔다. 러시아의 국가 권력은 21세기에 비정상적으로 비대하지만, 꿈틀거리는 시장을 밟을 재간은 더 이상 없어 보인다. 


요즘 기업들에게 ESG는 필수템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며 21세기 국가와 기업의 역할, 사회적책임에 대해 생각해 본다. 

개도국 가서 우물 파면서 CSR 하던 시대가 아니다. 생각보다 진심으로 Social을 하는 기업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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