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알고 보면 교사도 사람입니다
혹시 대한민국에는 직업이 몇 개인지 아시나요? 2018년 통계에 따르면 1만 2,145개라고 해요. 갑자기 왜 직업 이야기냐고요? 교사로서 능력적인 측면에서 좌절하는 순간을 경험했기 때문이에요. 보통 담임교사라고 하면 학급 운영을 생각하실 거예요. 그런데 특수한 담임도 있답니다. 바로 고3 담임이죠. 학급 운영보다 대학 입시가 더 중요한 특수성을 가졌지요. 그런데 저는 첫 담임으로 고3을 맡았답니다. 그것도 입시에 민감한 특목고에서 말이죠. 진로 진학지도를 해야 하는데 교사로서 모든 직업을 알 수 없으니 난감하더라고요.
비담임을 6년 동안 계속하면서 교사로서 정체성이 흔들릴 때쯤 다행히 담임교사가 되었지만 제가 바라던 시나리오가 펼쳐지지 않더군요. 저는 아이들과 알콩달콩 학급을 같이 운영하면서 즐거운 추억을 많이 쌓고 싶었지요. 하지만 고3 담임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어요. 공부로 이미 찌든 아이들과, 입시 준비로 숨 막힐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학급 분위기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어요.
게다가 대학 입시 결과를 중요시하는 특목고에서 고3이란 또 다른 직업을 갖는 일과 같다고 생각해요. 공개적으로 누가 더 잘했는지 결과를 공유하는 건 아니지만, 입시 결과를 놓고 어느 반이 더 잘 갔는지 아닌지도 서로 이야기 나누기 때문이죠.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게 아이들의 역량이라도 마지막 방점은 교사가 전략을 잘 제시해줬을 때 빛을 발할 수 있답니다.
고3 담임교사로 다음 해를 보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정말 희비가 교차했어요. 드디어 내 학급 아이들이 생긴다는 기쁨과 동시에 대학 입시를 잘 모르는 데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한가득이었답니다. 또한 그 시절에는 생활기록부 글자 수가 줄지 않았던 터라 작성해야 할 생기부 평가 분량도 어마 무시했죠. 진학지도와 생기부 작성에 대한 부담감이 크게 밀려왔습니다.
정말 아주 다행히도 제 옆 자리에 친절하고 상냥한 선생님이 계셔서 첫 해를 무사히 보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그 선생님께서 조언해주신 대로 실천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해요. 제가 걱정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고 봄 방학 동안 해야 할 과제를 주셨어요. 일단 대학 입학 전형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자신이 연구하는 유튜브 영상 링크를 보내주셨어요. 그리고 서울대학교에서 개발한 200페이지가 넘는 생활기록부 관련 연구 자료 파일도 주셨고요.
보내주신 링크 영상을 보며 대학 입시 제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어요. 개념이 이해가 되니까 학교에서 진행했던 전문 학습공동체 시간에 각 학교 정보를 분석하고 토의할 때 충분히 내용을 흡수할 수 있었죠. 그리고 학생들의 입시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생활기록부 기록 부분에서도 핵심을 파악하여 학생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잠깐 생활기록부 작성할 때 입시에 도움이 되는 핵심 정보를 공유해드릴까 해요. 서울대학교에서 개발한 200페이지 자료를 모두 읽고 나니까 저는 이렇게 정리가 되더라고요. 생기부 평가는 3단계로 점점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선. 1단계는 교사가 평소 수업시간이나 일상생활에서 관찰한 모습에 대한 사실을 평가하는 것이었어요. 2단계는 학생의 우수함을 드러내도록 평가하는 것이고요.. 3단계는 그 평가에 대한 예시나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었요.
관찰(사실), 우수성 평가, 우수 평가에 대한 근거 이렇게 3단계로 올라갈수록 대학에서는 생기부 내용을 더 좋게 평가한다는 말이었어요. 실제 나중에 입학사정관님들의 생활기록부 연수를 들을 때도 직접적으로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은근슬쩍 평가 방법을 알려주더라고요. 그런데 딱 제가 인지했던 방식으로 학생들을 점수화해서 평가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많은 선생님들께서 생기부를 작성할 때 단순히 관찰한 사실만 평가하는 경우 혹은 우수하다고만 말하고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학생이 대학에서 차별화된 우수한 평가를 받기를 바란다면, 제가 말씀드린 방법을 꼭 활용해 보세요. 그리고 모든 학생들을 그렇게 써주면 변별이 되지 않으니 적절하게 결과 수준에 맞게 1,2,3단계를 섞어서 평가해주시면 됩니다. 매뉴얼에 있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하면 대학에서도 교사가 어떤 의도로 학생을 평가했는지 알아챈답니다.
저는 특목고 특수성이 있어서 더욱 이런 부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연구하는 시간이 더욱 필요했던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교사의 정보를 믿고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대학 입시를 치르기 때문에 전문성을 기를 필요가 있다고 봐요. 하지만 우리가 교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는 이런 역할까지 해야 하는지 생각지 못했죠.
게다가 대학 입시는 매년 계속 바뀌기 때문에 촌각을 세우지 않으면 흐름을 놓치기 쉽고, 정보 분석을 엉뚱하게 할 수도 있답니다. 교사가 아니라 입시 전문가로서 마인드를 갖추지 않으면 원성을 살 수도 있다는 말이죠. 중학교까지는 몰라도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라면 대학 입시 제도에 관심을 가지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1학년, 2학년 담임교사도 진로진학 상담을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정보가 없으면 공유할 이야기가 없게 되니 아이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할 수도 있어요. 실제 그런 모습을 보기도 했답니다.
제가 굳이 만능 엔터테이너라고 한 이유는 사실 이 뿐만은 아니에요. 교사로 근무해보면 알겠지만, 정말 1부터 10까지 사소한 일부터 거대한 일까지 별 일을 다 겪게 된답니다. 수업 전문가, 학급 운영자, 전문 상담가, 입시 전문가, 고급 행정 인력, 방송 운영 및 진행, 행사 기획 및 진행, 학교폭력 면담 및 업무 처리, 체험학습 운영 및 인솔, 회계 처리 등 각양각색의 역할을 맡게 되기 때문이죠.
한번 학교 홈페이지에 가서 학교 소개에 있는 모든 부서의 업무를 확인해보세요. 언젠가는 교사로서 거기에 있는 업무를 맡게 될 테니까요. 물론 사람마다 주어지는 일이 달라서 평생 자신 없는 일을 피해 다닐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 앞 일은 아무도 모르는 법! 내가 언제 무슨 일을 맡을지 모르니 항상 열린 마음으로 배우고 성장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사실 저도 6년 간 부서 업무만 하면서 이게 왜 교사 생활하는 데 도움이 될까 회의감이 들곤 했어요. 그런데 막상 담임교사가 되어 학급을 운영하고 아이들을 관리하다 보니 다양한 부서에서의 경험이 연결되어 조금 수월하게 일을 처리하게 되더라고요. 아이들이 학교 프로그램에 대해서 물어보면, 저는 업무를 해봐서 자세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었어요. 프로그램의 취지, 진행 방법, 어떤 효과가 있는지 등 안내해주니 아이들이 귀 기울여 듣고 실천하더라고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부서 업무를 많이 알 수록 담임교사로서도 더 자신 있게 아이들을 살필 수 있더라고요. 마찬가지로 첫해에 그렇게 힘들게 입시 공부하고, 생기부 연구하고 했던 시간이 다음 해에는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두 번째 해에는 25명 중 2명을 제외하고 모두 대학에 진학해서 뿌듯한 결과를 얻기도 했답니다. 물론 아이들의 역량이 뛰어났고, 제가 제시한 대로 잘 따라와 준 결과였죠. 그래도 역시 한 번과 두 번은 달랐던 것 같아요.
4년간 고3 담임교사를 하면서 아이들의 내신과 생기부 평가 내용만 봐도 어느 정도 결과가 예측되더라고요. 물론 매년 입시가 바뀌니까 당연히 더 세세하게 연구하면서 했기 때문이죠. 결론은 아무리 교사로서 새로운 일을 맡게 되더라도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나중에 편해진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힘든 일을 맡았다고 슬퍼하지 말고, 내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분명 자양분이 되어 선생님의 미래에 줄기가 되고, 꽃을 피울 단단한 씨앗이 될 거라 믿기 때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