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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퇴근이 없는 삶

3. 알고 보면 교사도 사람입니다

by 신영환

모든 것에는 양날의 검이 있는 것 같아요. 과학 통신 기술의 발달로 미디어 활용이 활발해지면서 우리 삶에 다양한 이점을 주는 동시에 감수해야 할 일도 있기 때문이죠. 혹시 제가 무슨 말을 할지 아시겠나요? 아직 제가 무슨 말을 할지 감이 안 잡히신다면 다행입니다. 저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지 않으실 테니까요.


과거에는 학교 전화만 있고, 휴대전화가 없어서 학교를 떠나고 나면 학생이랑 연락할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정말 급한 일이면 집으로 전화를 했겠지만요.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다르죠. 언제 어디서나 손가락만 튕기면 연락이 닿으니까요. 그게 전화든, 문자든, 카톡이든 상관없이 말이죠.


이 상황을 부정적으로 비유해보자면, 우리는 24시간 통신 기술의 감옥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이른 아침이든, 늦은 밤이든, 심지어 야심한 새벽이든 학생들에게 연락이 오기 때문이죠. 물론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시면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아실 수 있을 거예요. 일단은 어려운 상황 먼저 안내할까 합니다.


제가 처음으로 담임교사를 할 때였어요. 제가 맡고 있는 학생들에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함께 책임져야겠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그래서 학급 아이들에게 제 연락처를 알려주었고, 심지어 학부모 총회 때 부모님들께 명함을 돌리며 제 연락처를 공유했죠. 그런데 이게 제 학교 이후의 삶에 발목을 잡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는 당연히 긴급한 상황에서만 연락이 올 줄 알았기 때문이죠.


그때 저는 고3 담임교사였기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님과 입시 전쟁터에서 함께 1년을 보내습니다. 그렇다 보니 입시 관련하여 질문이 있거나, 아이가 공부에 소홀하거나, 집에서 부모와 아이가 싸우거나 등 다양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제게 문을 두드렸어요. 물론 처음에는 사명감을 가지고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했죠. 하지만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면 모를까 누군가와 매일 같은 주제로 연락하는 일이 생기니 저도 점점 힘들어지더라고요.


학급에는 사실 스스로 왕따를 자청하는 아이가 있었어요. 한국 교육 시스템과 입시 제도에 대한 불신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학기 초부터 자퇴를 하겠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학교에 다니겠다고 했어요. 처음부터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아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 심각성 정도가 그리 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교육 정책을 시행하는 교육부, 학생들을 관리하는 학교 시스템을 부정했기에 나아가 교사에게도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답니다.


처음에는 담임교사인 저에게도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매우 불손한 태도를 보였지요. 그러다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학생이 수업 시간에 한 선생님과 논쟁이 붙은 거였어요. 어쩔 수 없이 제가 불러서 상담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가 외국에 오래 살다가 온 것을 알고 있어서 저도 마음을 열고 대화하려고 노력했죠. 다행히도 제 노력이 통했는지 아니면 자신을 믿어주고 이해한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마지막에는 먼저 악수를 청하더라고요. 잘 부탁한다고 말하면서 말이죠. 역시나 범상치 않은 아이였으나 그래도 제게 마음을 여는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저와는 괜찮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계속 이런저런 일들도 사건이 생겼거든요. 학교에 오지 않겠다고 부모님과 싸우고 결석하거나, 수업 시간은 제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잠만 잤어요. 대학은커녕 고등학교나 잘 졸업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몸도 약했지만, 마음도 아픈 친구였기에 저는 더 노력해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어머니와 거의 매일 통화하거나 문자 하면서 아이가 집에서 일단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게 했어요. 생각해보면 그때는 제 아내보다 그 학생 어머니와 더 많이 연락했던 것 같네요. 매일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짰어요. 우선 목표는 아이가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게 하는 것이었요. 그러면 출결이 가장 중요하니까 어떻게든 학교에 나오게 해야 했죠. 생각해낸 방법은 바로 잠을 자더라도 학교에 와서 자도록 한 거예요. 위기가 자주 찾아오긴 했지만, 다행히도 졸업은 충분히 할 수 있는 기준은 채웠답니다.


두 번째 007 작전은 그래도 혹시나 국내 대학에서 진학할 방법이 없는가였어요. 다행히 그때는 어학 특기자 전형이 많이 있을 때였어요. 그리고 일부 대학은 학교 생활보다 아이의 순수 언어 능력만으로도 합격할 수 있는 곳이 있었어요. 어머니께서는 급하게 관련 사교육 정보를 찾아보셨고, 저와 긴밀하게 공조하여 아이가 진학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설득했어요. 다행히 언어를 많이 좋아하는 아이라서 순순히 입시 준비를 하게 되었죠. 하지만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어머니께 연락이 왔고, 문제 해결을 위해서 항상 함께 노력했어요.


사실 다른 선생님들께서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 하셨어요. 다들 제가 안타까워 보여서 위로이자 동시에 조언을 해주신 거죠. 하지만 저는 그 학생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세상엔 적어도 너를 믿고, 지지하고, 응원하는 어른이자 교사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을요. 정말 어머니와 매일 연락할 때마다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지만 참고 견뎠어요. 사건 발생은 24시간 언제 발생할지 몰랐기에 5분 대기조였죠.


그렇게 매일 같은 상황 속에서 1년을 보냈습니다. 드디어 입시 결과가 나오는 시기가 되었어요. 특기자 전형은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진행되기에 결과 발표 시기도 빠릅니다. 놀랍게도 그 아이는 자신이 지원한 학교 중에서 가장 좋은 학교에 합격했습니다. 당연히 그 아이의 역량이 뛰어났기에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백조가 물 위에 뜨기 위해 수천 번의 발차기를 해야 하는 것처럼, 누군가의 희생과 노력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학생, 부모님, 교사로서 각자 최선의 노력을 다했기에 삼박자가 잘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호되게 담임교사 신고식을 치르니 다음 해부터는 많은 부모님 혹은 학생에게 대중 없이 사소하게 연락이 많이 왔어도 그리 부담되지 않았답니다. 사람이 큰 일을 치르면 작은 일은 내성 덕분인지 버티는 힘이 있더라고요. 4년 연속 고3 담임을 하면서 물론 종종 스트레스는 받았지만, 예방주사를 제대로 맞고 아파서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후에 비담임을 맡으면서 24시간 통신의 감옥에서 탈출하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로 통신을 활용한 연락이 더 활발해졌고, 아이들의 성향도 많이 바뀌었네요. 동아리 전체를 담당하는 교사로서 단순히 학교 전화를 통해 연락하거나 알리미를 통해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신속성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확인하지 않으면 연락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학교에 나오지 않고 집에서 수업을 들으니 업무 하는데 답답해 미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해결책으로 제 연락처를 안내하고 전화나 카톡으로 빠르게 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50개가 넘는 동아리 회장들과 연락을 하면서 제 전화기에서는 불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낮에도 밤에도 언제라도 누군가에게 계속 연락이 오더군요. 평소라면 저녁이나 밤에는 연락 자제를 부탁했지만, 축제 관련 업무 등 긴급하게 연락하는 상황이 오면 새벽까지도 연락을 받으며 일을 처리했습니다.


그 기간에는 다시금 내가 교사인지 아닌지 정체성 혼란이 오고, 나의 워라밸은 어디 있나 찾게 되었죠. 그런데 이것도 신기하게 몇 번의 홍역을 치르고 나니까 적응이 되었네요. 이제는 각 학급 교과부장에게도 연락처를 공유했고, 심지어 오픈 채팅방을 열어서 수업 시간에 활발하게 활용합니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아이들의 필요에 따라 연락이 오지만 이제는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 같습니다.


제가 한 것처럼 꼭 하라는 말씀을 드리는 건 아닙니다. 현명하게 연락 체계를 갖추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죠. 주변에 현명한 분들의 방법을 공유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학교 내선 전화번호 외에는 개인 연락처를 절대 알려주지 않습니다. 연락이 안 되어 해결이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그냥 업무를 진행하더라고요. 둘째, 개인 연락처와 업무용 연락처 두 개를 가지고서 운영합니다. 쉽게 말해, 핸드폰이 두 개라는 말이에요. 업무용은 학교 일과 시간 외에는 일체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사실 저도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습니다. 다 선생님들 개인 성향에 따라 어느 선택을 했을 때 덜 스트레스를 받을지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저는 연락이 안 되는 데 더 스트레스를 받기에 이런 선택을 했고, 이제는 적응했지요. 언제나처럼 선택은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어려움이 있다면 부디 슬기롭게 잘 헤처 나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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