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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환 Sep 19. 2023

3화. 심장마비

소설 같은 이야기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전역 후에도 예비군 훈련을 받는다. 예비군 훈련장에 가서 받는 교육 중 ‘CPR(심폐소생술)’은 필수다. 심지어 직장에서도 1년 최소 1회 이상 관련 교육을 받는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골든 타임 안에 CPR을 하면 누군가 살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 누군가는 나의 소중한 가족일 수도 있다.                          



[부고] 

故OOO님께서 별세하셨기에 아래와 같이 부고를 전해 드립니다


의정부을지대학교병원장례식장 특1호

경기 의정부시 동일로 712


■유가족 및 장례식장 위치 확인

https://funein.com/bugo/funeral/


황망한 마음에 일일이 연락드리지 못함을 널리 혜량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버지 : OOO

어머니 : OOO

형 : OOO 배상



늦은 밤이었다.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첫 줄에 적힌 이름을 보며 내 눈을 의심했다. 나와 동갑인 83년생 친구이자 직장동료의 이름이었다. 다른 직장으로 옮기면서 그를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1년에 몇 번이고 자주 만나려 노력했다. 코로나 시기가 좀 지나고 마지막으로 한번 보고, 그 후로는 서로 바빠서 얼굴을 보지 못했다. 주로 연말에 만났기에 이번에도 만날 생각을 했는데, 부고 소식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교통사고면 몰라도 절대 자살하거나 할 사람은 아니었다. 게다가 모르는 사람한테 온 문자라서 혹시 사기는 아닐까 싶었다. 차라리 그러길 바랐다. 하지만 확인할 때까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날따라 가을인데도 후덥지근한 날씨 때문인지 몰라도 이상한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주말이라 아이들과 멀리 나들이 간다고 운전할 때였다. 얌전하게 운전해서 길을 가고 있었다. 참새 한 마리가 도로 옆 벽에서 갑자기 날아오르더니 이내 도로 쪽으로 급하강했다. 내 차 바로 앞이었다. 손쓸 새가 없었다. ‘퍽’하는 소리가 났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끔찍해서 흐느끼며 소리를 냈다. 온몸이 바르르 떨렸다. 하필이면 눈이 좋아서 거울로 힐끗 지나온 도로를 살폈다. 날개가 꺾인 채로 쓰러져 있는 참새의 형상을 확인했다. 다시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인상은 있는대로 찌푸렸다. 싫어서가 아니라 너무 불쌍하고, 마음이 아파서였다. 내가 생명을 죽이다니...     


며칠 전 아이들과 신나게 잠자리를 잡았다. 집에 잠자리채가 없어서 물고기를 뜨는 뜰로 고군분투했다. 어린 시절 여름 방학 때면 시골 친척 집에서 잠자리 잡던 실력이 되살아났다. 강원도 태백에 살고 이모 댁에 놀러 가면 집 바로 앞에 나무가 많았다. 산에 있는 나무라 그런지 잔가지도 많았다. 덕분에 잠자리가 앉아서 쉴 곳이 많았다. 다시 말해, 너무나 쉽게 잠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잠자리채를 휘두르기만 해도 한 번에 10마리 이상 잡을 수 있었다. 잠자리가 천지삐까리였다.      


하지만 지금 사는 동네에는 잠자리가 별로 없다. 게다가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잡아야 했다. 그런데도 잽싸게 나를 피해 다니는 잠자리를 10여 분 만에 6마리나 잡았다. 아이들이 좋아했다. 곤충 채집 통도 쪼그만 해서 잠자리 6마리가 함께 있기에 비좁았다. 막상 잡고 보니 안 그래도 짧은 인생인 잠자리가 불쌍했다. 아이들을 설득해서 조금 관찰하고 놀다가 살려주기로 했다.      


한 번에 풀어주는 것보다 한 마리씩 날리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곤충 채집 통에서 뜰채로 옮겨 한 마리씩 꺼내어 아이들 손으로 옮겼다. 그게 큰 실수였다. 아이들은 손에 땀이 범벅이라 잠자리 날개가 순식간에 찢어졌다. 찢어진 날개로는 더 이상 날 수 없었다. 내 가슴도 찢어질 듯 아팠다. 가슴 한쪽이 뻐근했다. 괜히 아이들을 혼내고선 나머지 잠자리는 한꺼번에 풀어줬다. 진작에 그럴 걸... 후회가 막심이다.      


곤충 한 마리가 죽어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참새의 죽음은 더 크게 느껴졌다. 일명 로드킬이라고 볼 수 있다. 참새가 와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으니 자살인 건가? 아마도 도로에 놓인 먹이를 먹으려 한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계속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참새의 흔적을 지우고 싶었다. 싫어서가 아니라 빨리 잊고 싶어서...          





집에 오는 길에는 비가 내렸다. 굳이 기름을 넣지 않아도, 세차하지 않아도 되는데 주유소로 향했다. 아이들은 세차하고 간다니 좋다고 한다. 뭐가 그리 좋은지... 어릴 때는 별것 아닌 사소한 것에도 감동한다. 나는 세차하는 동안 눈을 감고 기도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길 바란다고. 다음 생에는 더 오래 사는 동물로 태어나길 바란다고.     


밖에서 육아로 씨름을 하고 집에 와서 그런지 몰라도 너무 피곤했다. 나도 모르게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정신없이 낮잠을 잤다. 주말이니 아이들이 몇 번이고 와서 놀자고 나를 깨웠다. 소리는 들리는데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가위에 눌린 것도 아닌 것이 이상했다. 비도 내리고 하니까 저기압이라 몸이 무거운 듯 했다. 아니면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참새 때문인 것 같았다. 낮잠을 오래 잤는데도 몸이 좋지 않다고 느껴졌다.  

   

아내가 저녁 식사하러 나오라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벌써 저녁이라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났다. 주말인데 육아에 전념하지 못한 것 같아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다.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평일에는 내가 일 때문에 육아에 참여를 못 하니까 주말에는 최대한 더 하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외벌이라고 해도 80년대에 태어난 남편들은 가만히 소파에 누워서 쉬면 안 된다. 하지만, 이날은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괜히 미안한 마음에 혹은 찔리는 마음에 몸이 거짓말처럼 잘도 움직였다. 다행히 남은 저녁 시간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끝으로 잠도 잘 재웠다.           





애들은 나랑 자는 걸 좋아한다. 아빠가 덩치가 커서 같이 자야 무서운 꿈은 잘 안 꾼단다. 덩치 때문인지 몰라도 든든한가 보다. 다 결혼하고 찐 살 덕분이다. 결혼 전과 비교했을 때 무려 20kg이나 쪘다. 최근에는 더 나갔는데 건강상에 위협을 느껴 그나마 5kg 뺀 게 그렇다.      


그래도 다행히 100kg을 한 번도 넘기지 않았다. 90 초반을 잘 유지하고 있다. 80년대생이라 그런지 몰라도 80kg일 때가 그나마 몸이 가장 날렵하고 가벼운 느낌이다. 건강을 위해 더 빼야하는 데 쉽지 않다. 20~30대 때 중년 아저씨들 배 나왔다고 놀려서 벌 받은 건 아닌가 싶다. 우리 집에서 내가 젤 덩치가 크고 뚱뚱하니까 애들은 만날 놀린다. 도대체 ‘뚱뚱보 돼지 볶음밥’은 무슨 의미인지. 그게 내 별명이다.      


사실 나도 불과 1년 전만 해도 뚱뚱하지는 않았다. 순식간에 몸이 10kg 넘게 불었다. 직장에서 과도한 업무로 매일 야근하고, 주말에도 출장 가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여 풀 수 없었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는 먹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커피 카페인에 민감해서 못 마시니 버티기 위해 6개월 동안 마셨던 밀크티 ‘데자와’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데자와는 고3 때도 커피 대신에 마셨던 기억이 있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강한 음료지만, 커피를 못 마시는 나에게는 딱이었다. 우유가 들어간 제품인데다 단맛을 내기 위해 설탕 성분이 많다. 다이어트 할 때 사람들이 시럽을 뺀 커피, 그다음으로는 우유가 안 들어간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결국 아메리카노가 정답이라고... 

    

실제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둘째가 태어나고 1년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자면서 커피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연히 처음에는 시럽이 잔뜩 들어간 카라멜마끼야또 아니면 바닐라라떼로 시작했다. 심장은 두근두근 거렸지만, 시럽이 있어서 맛은 괜찮았다. 덕분에 살이 쪘다. 그때도 87kg까지 살이 쪄서 위기를 느꼈다.     


갖은 노력 끝에 1주일에 1kg씩 빼서 10kg 넘게 뺐다. 커피도 점차 아메리카노까지 마시게 되었다. 간식은 손도 안 대고, 기분이라도 내려고 0칼로리 자일리톨만 사탕처럼 먹곤 했다. 물론 탄산도 줄였다. 술도 못 먹기 때문에 술 중독 대신 콜라 중독이었다. 하지만 옷이 하나도 안 맞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모든 걸 다 끊고, 밥 먹는 양도 2/3로 줄였다. 매일 밤에는 1~2시간 걷기 운동을 했다. 무릎이 아파서 뛸 수는 없었다. 근데 오히려 빨리 걷는 것이 살 빼는 데는 도움이 된다고 했다. 우연이었지만, 행운이었다.     


다이어트는 성공적이었다. 70kg 중반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얼굴 살이 빠지니까 오히려 보기가 흉했다. 인덕이 부족해 보였다. 날카로워 보였다. 인상을 좋게 만들자는 취지에서 다시 조금씩 입에 즐거운 걸 손대기 시작한 덕분에 10주간 10kg을 뺀 걸 1주일 만에 3kg이나 되돌렸다. 빼는 건 참 어려운데, 찌는 건 참 쉽다. 돼지띠라 그런가? 아마도 쉽게 찌는 체질 탓일 거다.     





사람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몸에 이상이 생긴다. 생물학적으로는 항상성 유지가 잘 안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비만, 당뇨, 고혈압, 심경근색 등 현대판 성인병이 판을 친다. 특히 40대에는 과로사가 많다고 한다. 아는 직장동료의 형도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 역시나 이유는 과로사였다. 과로사의 경우 대부분 스트레스로 인한 심장마비가 같이 온다. 나와 같은 40대는 위아래 사이에 낀 세대다. 어느 정도 능력과 경험이 있어서 가장 실력 발휘를 할 시기에 살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 직장에서 많은 일을 맡는다. 그러니 과로사가 있을 수밖에...     


부고 문자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 과로사였을까?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답장을 적었다.     


“이 문자가 사실인가요? 그리고 혹시 누구신가요?”     


 잠시 후에 답장이 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OO에서 근무하는 상조회 담당자 OOO입니다. 작고하신 OOO님과 함께 근무하셨던 분들께도 보내라는 지시가 있어서 제가 담당자로서 부득이하게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미처 누군지 신분을 밝히지 않은 점 죄송합니다. 참고로 심장마비로 오늘 돌아가셨다는 소식 전합니다.”    

 

“아닙니다. 하마터면 소식을 알 수 없었을 텐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메시지는 거짓이 아니라 모두 진실이었다. 여전히 믿을 수 없었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부고 메시지에 적힌 링크를 눌러보니 바로 이틀 뒤 아침에 발인이었다. 보통 사망한 날 기준으로 3일째 되는 날이 발인이니 오늘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마음이 너무 아픈데 눈물은 나지 않았다. 아마도 실감이 나지 않아서가 아닐까?     


늦은 밤이었지만, 그 직장에 같이 입사하여 근무한 친한 동기들에게 연락해야겠다 싶었다. 나는 몇 년 있었지만, 다른 동기들은 1년 이내로만 근무해서 혹시 연락이 안 갔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원래는 모두 들어 있는 단톡방이 있었다. 하지만 답할 수 없는 사람이 들어와 있는 단톡방에 소식을 남길 수는 없었다. 새로 단톡방을 만들어 친했던 동기들에게 연락했다. 밤 11시가 넘었지만, 내가 보낸 [부고] 메시지에 단톡방은 눈물 바다가 되었다. 다들 믿기지 않는다는 말뿐이었다.     


작년에 진급했다는 소식을 들어서 올해 일이 많을 줄은 알았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심했고, 심장마비로 인해 과로사구나 싶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여전히 그 직장에 근무 중인 후배를 통해 진실을 알 수 있었다.     


“추석을 일주일 앞두고 금요일에 야근하고, 토요일 아침 일찍 아버지와 형이랑 벌초하러 갔데요. 일하다가 중간에 힘들다고 차에 가서 쉰다고 갔데요. 그런데 시간이 흘러서 괜찮으니 확인차 연락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더래요. 형이 이상함을 느끼고 바로 뛰어 내려갔는데... 손쓸 겨를도 없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하네요. 심장마비로...”     


금요일 늦은 시간까지 야근했다는 말에 충분히 피로가 쌓였고, 스트레스가 심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또 힘든 일을 했으니 몸이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막 40대에 들어선 내 친구는 그렇게 삶을 마감했다. 그나마 부양할 가족이 없었다는 점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2시간을 운전해서 의정부에 도착했다. 운전하는 동안 다양한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함께 했던 시간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차에 심장마비로 쓰러진 모습도 상상이 되었다. 아니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는 상상도 했다. 지금 모든 게 거짓말이라 믿어보려고도 노력했다. 하지만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이름과 얼굴을 확인하니 거짓된 상상은 모두 깨져버렸다.      


국화꽃을 한 송이 꺼내어 올려두고 사진을 보다가 눈을 감고 기도했다.      


“부디 그곳에서는 편히 쉴 수 있기를... 언젠가 꿈에서라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참 좋은 사람이었으니 분명히 천국에 갈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형도 울고, 아버지도 울고 조문객이었던 나도 울었다. 진정이 된 후에 친했던 옛 직장동료였다고 말하니 아버지께서는 손을 꼭 잡아주시며 정말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가는 길 외롭지 않게 인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가족들에게도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것 같아 천만다행이었다.    

 

이직 후 한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예전 직장동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모든 건 친구 덕분이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반가운데, 차마 웃으며 인사를 나눌 수는 없었다. 다들 슬픔에 찬 눈을 하고 있거나 이미 펑펑 울고 난 후라 눈이 빨갛게 부어 있었다.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으로 준다고 하는데, 허무한 죽음 앞에 우리 모두는 슬픔이 제곱배는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2023년 4월 강릉 경포 일대에 산불이 크게 났다. 수십 명의 사람이 집을 잃었다. 하와이 마우이섬에서도 8월에 산불로 인해 100여 명이 사망했다. 9월에는 모로코 대지진으로 그리고 슬픔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곧이어 리비아에서는 대홍수로 각각 수천 명의 사람이 사망했다. 대자연에 비하면 인간은 참으로 나약한 존재다.

     

아무리 아등바등 살려고 노력해도 죽음은 한순간이다. 내가 마치 건강해지려고 아등바등 살을 빼려고 노력하는 것과 순식간에 건강에 해로운 음식을 먹고 살이 찌는 것과 같았다. 왜 우리 삶은 그런 것일까? 좋은 것을 얻으려면 어렵고, 나쁜 것을 마주하기는 쉽다. 현대인들은 질병이 또 하나의 재앙이자 재해가 아닐까 싶다.

     

심장마비는 사실 주변에 누군가 있다면 괜찮아질 수 있다. 주변 사람에게 CPR을 바로 받는다면 살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나는 우연히 한 사람을 살린 경험이 있다. 예비군에서 직장에서 굳이 왜 CPR을 교육하는지 필요성을 못 느끼다가 감사함을 느낀 경험이었다.      


어느 날 직장에서 누군가 옥상에 쓰러진 사람이 있다고 급히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때 가장 가까운 곳에 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으로 6층 꼭대기까지 뛰어 올라갔다.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눈도 풀려서 초점이 없고, 혀도 길게 밖으로 나와 있었다. 의식 없는 사람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쓰잘데기 없다고 생각했던 CPR 교육에서 배운 매뉴얼이 떠올랐다. 주변 사람에게 바로 119에 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어깨를 툭툭치며 의식 없는 사람을 깨워봤다. 하지만 대답도 없고 숨조차 쉬지 않았다. 마침 연결된 119에서도 바로 CPR을 하라고 했다. 나는 배운 그대로 명치에서 손가락 두 마디 지점에 깍지 낀 손을 올려두었다. 팔꿈치는 구부리지 않은 채 체중을 실어 온몸으로 가슴을 누르며 심페소생술을 시작했다.     


무아지경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주변은 흐리게 처리되고 오직 누워있는 사람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쉬지 않고 속도를 유지하며 심폐소생술을 진행했다. 119 대원들이 도착할 때까지 하려니 점점 지쳐갔다. 하지만 이 사람을 꼭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참고 계속 이어갔다.      


마침내 119 대원이 도착했다. 여러 장비로 체크하더니 다행히 심장이 뛰고, 호흡도 있단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들것에 싣고 나를 포함하여 4명이 각자 하나씩 자리를 맡아 들었다. 꽤 무게가 나가는 장신의 남성이었기에 무거워서 균형잡기가 어려웠다. 그 와중에 나는 진심을 다해 마음으로 기도했다.    

  

‘제발 의식이 돌아오게 해주세요.’     


거의 1층에 도착할 무렵 갑자기 숨을 거칠게 내쉬며 소리를 내더니 눈을 떴다. 의식이 돌아왔다. 갑자기 방언처럼 아무 말이나 막 내뱉었다. 잠시 후 안정을 찾았다. 나도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만일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나는 어땠을까? 지금 또 생각만 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 사람도 평소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한다. 병명은 과호흡증이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자 현대인들의 심장을 멈추게 하는 주범이다.


           


(엔딩곡)     


“아프다고 말하면 정말 아플 것 같아서. 슬프다고 말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그냥 웃지 그냥 웃지 그냥 웃지. 그런데 사람들이 왜 우냐고 물어.”     



*심장이 없어

- 2009년 3월에 발매된 에이트(8Eight)의 3집 앨범 <The Golden Age>의 4번 트랙에 위치한 타이틀 곡   

  


끝.          



p.s.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나의 친구여 부디 그곳에서는 편히 쉴 수 있기를...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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