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서 숫자 4는 죽음을 의미한다. 건물에 4라는 숫자를 쓰지 않기 위해서 생략하기도 한다. 엘리베이터에는 숫자 ‘4’ 대신에 영어 four를 의미하는 F가 적힌 곳도 있다. 새벽 4시에 잠을 깨는 건 꺼림칙하다. 디지털시계에 444라고 찍혀있으면 최악이다. 시곗바늘이 4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었기에 기분이 별로였다.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악몽을 실컷 꾼 것도 모자라 새벽 4시에 깨다니...”
사실 너무 오랜만에 악몽이었다. 결혼한 이후로 특히 아이가 생긴 이후로 가위에 눌리거나 악몽을 꾼 적이 거의 없었다. 귀신보다 아이 기가 세서 근처에 오지 못한다고 했다. 오늘은 달랐다. 평온하게 새근새근 잠든 아이들이 바로 옆에서 있었다. 가위눌림이 아니었으니 귀신은 아니었을까. 생생한 꿈이 계속 눈앞에 아른거렸다. 문득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노아 형은 괜찮을까?’
목이 말랐다.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몸이 굳어 있었다. 고개를 360도 돌려가며 풀었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근육을 풀었다. ‘으이차-’ 추임새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을 나와 물 마시러 부엌으로 향했다. 정수기에 가까워지자 브랜드 로고가 보였다. 종달새 모양의 은색 로고가 밝게 빛났다.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꿈속 참새가 떠올랐다. 날개가 꺾인 채로 죽음을 맞이한 불운한 운명. 왜 갑자기 도로 위로 날아들었을까? 본인의 의지였을까? 새는 의지가 있을까? 다른 선택은 없었을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태어나는 순서는 있지만, 죽는 순서는 없다.’
확률상 나이가 들수록 죽음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돌연사가 많은 나이는 40대다. 건강 위험 신호가 발생하는 나이.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 한창 주가를 올릴 나이. 전성기를 보내는 나이. 경험도 능력도 모두 최고 레벨이 되는 나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불혹의 나이. 40대는 공교롭게도 숫자 ‘4’로 시작한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노아 형이 괜찮은지 궁금했다. 새벽이라 전화는 할 수 없는 노릇. 메시지를 남기기로 했다.
형 잘 지내?
너무 이른 새벽 연락해서 미안.
그런데 꿈이 뒤숭숭해서 안부 차 연락했어.
메시지 보면 꼭 답장 부탁해!
다시 잠자리에 들려고 방으로 들어왔다. 시계는 4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4시 44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눈으로 그 숫자를 보기 싫었다. 바로 눈을 감았다. 둘째를 껴안았다. 우리 집에서 가장 기가 센 어린 생명체니까. ‘나를 지켜주지 않을까?’ 그렇게 믿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