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한편으론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잠시 어두워졌던 표정을 감추더니 점잖게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출판사 계약상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 그렇군요. 작가님께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그래도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제가 상상한 걸 그대로 아마 현실로 만들어 가며 살고 있을 거예요. 저는 제 의지대로 제 선택대로 살 거예요. 지켜봐 주세요.”
“네.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웃으며 말은 했지만, 입꼬리만 올라갈 뿐 눈 주위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가짜 웃음이었다. 한편으론 뼛속부터 부러움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자기가 상상한 것을 현실로 만들기가 쉽지 않으니까. 사이먼의 삶은 분명히 평범한 우리와는 달랐다. 만일 나도 마음이 시키는 대로만 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가슴이 답답하지 않았을 텐데. 아마도 여기 제주도에 ‘East of Eden’ 카페에 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오랜만에 노아 형도 만나고, 새롭게 이브도 만나고, 이렇게 유명한 작가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일이 좋은 것도 혹은 나쁜 것도 아니다. 때론 위기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내가 지금 여기에 온 것도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신을 믿기에 신이 이끄는 방향으로 나아갈 뿐이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된 것도 다 이유가 있다고 믿는 이유도 그래서다.
삶이 바뀌려면 3가지가 바뀌어야 한다고 한다. 내가 만나는 사람, 내가 다니는 직장, 내가 사는 집이다. 제주도에 오면서 이 세 가지가 일시적으로 바뀌었다. 평소에 만나지 않던 사람을 만나고 있고, 직장은 안 다니고 있고, 집이 아닌 다른 곳에 머물고 있으니까. 어쩌면 우리가 여행하는 이유는 잠시나마 삶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닐까?
물론 여행 후에 다시 현실로 돌아가면 내 삶은 바뀌지 않는다. 그대로일 뿐이다. 그렇지만 여행이 의미 있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잠시나마 쉼을 통해 충전할 수 있다. 몸과 마음이 충전되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신이 우리에게 내린 운명의 길이니까. 하지만 벗어날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다. 사이먼의 말처럼 우린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으니까.
조금만 용기를 내면 만나는 사람을 바꿀 수 있고, 다니는 직장을 옮길 수 있고, 집도 이사할 수 있다. 미안하고, 번거롭고, 귀찮고, 힘들어서 그렇지 그걸 견뎌내면 충분히 우린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어쩌면 그 마음을 먹게 하는 일도 신의 영역이라면 어쩔 수 없다.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기질을 쉽게 바꿀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변화를 바란다면, 컴포트존에서 벗어나야 한다. 애벌레가 탈피하면 나비가 되는 것처럼, 우리도 애벌레처럼 누에고치 안에서 지금 계속 숙성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때를 찾아 단단한 누에고치를 뚫고 나가보자. 우리도 사이먼처럼 충분히 나비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