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나는 도저히 졸음을 참을 수 없어서 양해를 구하고 잠시 밖으로 나왔다. 짧은 해안 도로를 건너 현무암이 펼쳐진 바다로 향했다. 사실 어두워서 돌인지 어둠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잔잔한 파도 소리만 가까운 곳에서 들려올 뿐이었다. 밤하늘에 뜬 초승달이 비추는 길을 따라 천천히 파도 소리를 향해 걸었다. 끝내 닿은 곳은 바닷가 쪽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놓은 나무 울타리였다. 비록 바닷가로 내려갈 수는 없었지만, 차도에서는 좀 떨어진 곳이라 온 세상에 오직 나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시원한 바닷가 바람에 감겼던 눈도 슬슬 떠졌다. 역시나 졸릴 땐 신선한 공기가 필요했다.
순간 내가 제주도에 이렇게 홀로 여행 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그동안은 상상 못 할 일이었을 뿐. 우리 삶은 정해진 길을 가는 게 아니라 얼마든지 멈추고 다른 길로 갈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보게 되었다. 휴직이 끝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면, 과연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Carpe Diem!’ 속으로 이 말을 외치며, 이 소중한 시간이 너무나도 아까워 괜한 고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인간이 하는 걱정과 고민은 80% 이상이 쓸데없는 것이라고 하니까. 현재에 충실하기로 했다. 꿈이 깨면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니 지금은 꿈같은 시간을 그대로 즐기기로 했다.
그렇게 제주도의 밤을 즐기고 있을 때, 콧속이 갑자기 간지러웠다. 콧물이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오래 나와 있었다. 바닷바람은 차다더니 금세 추워졌다. 잠도 어느 정도 깬듯했다. 아쉬운 마음에 황금색 부메랑 모양이 보이는 넘실거리는 파도를 향해 가볍게 두세 번 손짓하곤 뒤돌아섰다.
다시 해안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다행히도 곧 돌아갈 장소는 제주도에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었다. 내 마음처럼 발걸음이 가벼웠다. 숙소에 거의 다다르니 건물 입구 쪽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거리가 멀어서 시커먼 실루엣만 보일 뿐이었다. 그러다 어둠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태양이 잠시 빨갛게 얼굴을 드러냈다. 그리곤 뿌연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그 작은 태양은 위아래로 여러 번 왔다 갔다 했다. 구름의 양은 점점 늘었다.
입구에 가까워지자 태양을 움직이고, 구름을 만드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사이먼이었다. 마지막으로 태양을 손으로 털어내는 사이먼의 표정은 뭔가 미묘했다. 눈썹이 찌푸려지고 입술이 굳게 다물려 있었다. 시선은 저 멀리 밤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내가 걸어오는 데도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작가님~!”
사이먼은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 듯했다. 다만 인상을 찌푸리자 이마 주름이 점점 더 깊게 파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