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퍼거북 Oct 14. 2020

하와이 에필로그

엄마로 떠나 나로 돌아오다

     

처음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와이 3주 여행을 다녀와서 복직하기 전 6개월 동안 계속 여행일기를 썼다. 그냥 좋아서 썼다. 무용(無用)한 것에 시간을 쏟고 행복했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은밀한 취미였다.

하와이를 곱씹을 수 있는 6개월, 저녁노을 같은 시간이 주어졌음이 참 감사하다. 노트북 하와이 폴더에 고스란히 담겨있던 글을 올해 여름 브런치 작가가 되고 다시 꺼냈다. 코로나로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요즘, 시간이 돈보다 비싸고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는 것을 더 절절하게 느끼며 2년 동안 묵혀 두었던 글을 다듬어 발행했다. 다시 글로 하와이를 여행했다. 또다시 행복했다. 브런치 여행일기가 끝나가면서 여행이 끝나갈 때 느꼈던 아쉬움을 그대로 느꼈다.  

    

여행은 끝이 없다. 복직한 후 하와이 폴더는 그대로였지만 폰의 ‘하와이’ 메모장은 2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업데이트 중이다. 수영을 하고 오는 길에, 지나가던 사람의 선크림 냄새에, 라디오에서 우연히 만난 잭 존슨의 ‘better together’ 노래에, 설거지하다 보게 된 석양에, 나는 하와이로 소환되고 하와이 메모장을 펼친다. 나는 아직도 하와이 여행 중이다.   

   

하와이를 3주 동안 여행하며    

 

꿈을 꾸는데서 꿈을 이루는 삶으로

쉼이 없는 삶에서 놀이가 있는 삶으로

안 쓰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내가 바뀌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렇게 글로 공유하게 될 줄 알았으면 3주가 아니라 한 달을 꽉 채워 다녀오는 건데 하는 생각도 했다. 하와이 한 달 살기라는 멋진 제목을 붙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뒤늦게 3주, 21일의 상징적인 의미를 깨달았다. 맥스웰 몰츠는 <맥스웰 몰츠 성공의 법칙>에서 습관 형성을 하기 위해 새로운 시냅스의 연결을 만드는 데 21일이 걸린다고 했다. 나의 하와이 3주는 ‘행복해지는 습관’을 가지는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떠난 여행에서 나는 엄마이거나, 며느리이거나 딸이었다. 애들이 재미있어하면, 부모님들이 만족해하시면 그걸로 되었다. 안전하게 다녀온 것만으로 충분했다. 엄마 10년 차 하와이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되었다. 엄마로 떠났지만 내가 되어 돌아온 여행이었다.  

    

대학생 신분으로 떠났던 인도 배낭여행에서는 두려움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용감했는데 용감한 줄도 몰랐다. 하와이 여행 때는 가진 것이 많아 두려웠다. 남편과 두 아이들. 불안이 컸다. 하지만 불안하다고 말하면 초를 치는 것 같아서 혼자 불안을 오롯이 끌어안느라 더 불안했다. 넌 왜 설레지 않고 불안해하니. 하면서 불안한 나를 다그쳤다. 여행자에겐 두려움이 필수 불가결하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여행 전의 나에게 이제 말해줄 수 있다. 원래 그런 거야. 괜찮아. 용기 내어 떠나길 참 잘했어.     


남편은 이 여행의 기획자, 모험가, 가이드, 드라이버였다. 

남편이 차린 밥상에 나는 숟가락만 얹고 너무 맛있게 먹었다. 남편이 찍은 영화에 나는 자막처리만 했다. 이 여행 영화에 내 이름이 들어간다면 ‘자막: 슈퍼거북’일 것이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여행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브런치 작가가 된 것도, 하와이 여행 일기를 올리기 시작한 것도  남편에게 비밀로 했다. 마지막 글이 완성되면 짠하고 선물하고 싶었다. 그런데 남편이 이틀 만에 내 글을 ‘발견’했다. 알고리즘은 부부 사이도 알아보나 보다. 나의 두 번째 구독자로 남편 이름이 있는 걸 보고 나는 깜짝 놀랐고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남편은 나의 비밀 작업을 지켜주려고 뒤늦게 구독을 취소하고 라이킷도 취소했다고 하나 나에게는 다 보였다. 하하하. 하와이 전에도, 하와이에서도, 하와이 후에도 우리 남편은 든든한 나의 지원군이다.

남편 고마워. 자꾸만 웅크리려는 나를, 손을 잡고 나와 넓은 세상을 보여줘서.   

   

프롤로그에서 2018년은 우리 가족에게 ‘하와이’ 그 자체라고 썼다. 하와이를 준비하고 하와이를 다녀오고 하와이를 다녀와서 회복하고... 프롤로그를 쓸 때만 해도 회복한다는 뜻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잘 몰랐던 것 같다. 브런치 작업을 하면서 이제 알겠다. 회복은 하와이와 이곳을 ‘연결’하는 작업이었다. 하늘과 땅처럼 멀어져 있던 둘을 화해시키는 것이다. 하와이를 보던 눈으로 우리 집을, 이 땅을 보는 것이다. 하와이에서처럼 음미하고, 감탄하고,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것이다.  

    

2018년 가을에 나는 우리 동네에서 더 자주 멈춰 감탄하며 사진을 찍었다. 하와이에서 쓰는 법을 배운 눈으로...

우리 아이들은 엄마가 브런치 작가라고 유명 유튜버라도 된 것처럼 좋아했다. 구독자가 몇 명인지 확인하고, 자신의 사진을 검열하고, 내가 왠지 부끄러워 컴퓨터 화면을 가리면 언젠간 보고 말 거라며 짓궂게 소리 내어 내 글을 읽었다. ‘엄마 다 쓰고 나와.’ 하고 웃으며 방문을 닫아줬다. 엄마의 글쓰기 작업을 응원해주었다. 2년 전만 해도 엄마가 컴퓨터 앞에 앉는 것을 제일 싫어하던, 이거 끄고 나랑 놀아달라고 떼쓰던 아이들이 그새 부쩍 커버렸다. 아쉽고, 고맙다.  

        

엄마의 일기로 시작해서 나의 일기로 끝났다. 애들 놀리러 갔다가 엄마가 놀고 온 여행이었다. 오늘도 엄마랑 잘 놀아주고 있는 우리 남편, 똥꼬 1호, 똥꼬 2호에게 사랑과 감사를 전한다. 나는 지금도 여행 중이다.   


그동안 슈퍼거북이 세상에 내놓은 첫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

누군가 나의 글을 읽었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