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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Sep 07. 2022

불안한 존재의 여행

리베카 솔닛 '마음의 발걸음' 을 읽고 


 

리베카 솔닛의 아일랜드 여행기 <마음의 발걸음>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길을 떠난다는 것은 한곳에 머물러 있었다면 만날 수 없었을 온갖 위험과 온갖 기회를 만난다는 것, 낯익은 운명을 뒤로 하고 낯선 운명들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다" 


 회사 안에서도 여행은 떠나게 된다. 인사이동 시즌이 되면 사람들은 저마다 떠나고 싶은 여행지를 가슴 속에 품는다. 그 소망을 누군가는 속으로만 삼키고 누군가는 입 밖으로 알린다. 더 간절한 누군가는 결정권자에게까지도 닿게 한다. 어떤 사람은 어떤 여행지든 기꺼이 즐길 준비를 하고 있다. 단, 험지만을 피하길 바라면서. 


 이런 싱숭생숭한 마음들은 발표 직전까지 팽창할 대로 팽창해버려 회사 구석구석을 파고든다. 


 내가 꿈꿔 온 여행지는 남들과 늘 달랐다. 앵커를 하고 있을 때 찾아 온 이동의 기회 땐 사회부를 희망했고 내 이름을 건 코너를 하고 있을 때는 정치부나 한 번도 해보지 경험하지 않았던 산업부서를 원했다. 대개는 방송이 1순위인데(그게 쉬운 일이든 고생스러운 일이든 상관 없이) 나는 그 반대였다. 방송에서 하차한다는 건 늘 내가 선택한 일이었다. 


 이번 인사이동 땐 그래서 국제부에 오게 됐다. 사회부 2년, 경제부 2년 반, 정치부 1년 반, 그리고 팩트체크 출연 코너 1년을 거친 어느덧 8년 차 기자. 다양한 부서를 도는 건 내게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달콤함을 내려놓는 것도 꽤 용기가 필요하다. 주어진 대로 지냈으면 마주하지 않았을 온갖 위험과 온갖 기회를 스스로 불러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침뉴스 앵커 때는 어린 연차 때 못 배우면 안 됐을, 취재에 온 몸을 던지는 경험이 필요했다. 이번엔 방송의 달콤함을 좀더 맛보겠다고 내 몸과 마음을 더 이상 망가뜨릴 이유가 없었다. 모두 다른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여행을 떠나야만 하는 이유'들이었다. 


 "나의 세계, 나의 것이라고 칭해지는 세계는 많은 경우 내가 내 손으로 정성들여 세우는 세계이니만큼, 나의 세계가 끊임없이 불러내는 나라는 존재는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일, 내가 보는 풍경, 내가 먹는 음식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 나의 세계, 그렇게 세워놓았던 세계를 토대만 남기고 없애는 것이 여행이다"


 그런데 방송이라는 건 꽤 후유증이 심해서 당시 내가 세워놓았던 세계를 무한정 소환할 때가 있다. 그게 내 전부였고, 내 모든 걸 쏟아내서 더 그렇다. 여행을 떠났지만 난 여전히 불안하다. 여행은 사실,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는다는, 불안하고 미완인 상태로 떠도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불안이 해소되길 바라는 걸 그만두었다. 여전히 미완인 상태더라도 나의 다른 가능성들을 채우길 기대한다. 여행은 나의 낯선 가능성들을 마주할 용기로 떠나는 것이라고 되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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