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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랜들리 Jul 30. 2023

미적지근한 취업준비생의 아침이었다

01 바닷물

어느 여름의 끝자락,

제법 선선해진 평범한 아침이었다.


어김없이 모자를 눌러쓴 채로 슬리퍼를 끌고 파스쿠찌를 갔다. 무거운 유리문을 열고 카페에 들어서니 에어컨 바람에 등 뒤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멍한 기분이었다. 괜히 머리가 시큰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재킷 주머니 속 USB의 차가운 금속 표면을 만지작거리며. USB에는 어젯밤에 적어둔 발표 스크립트와 며칠간 준비한 PPT 파일이 담겨있었다. 오후에 있을 화상 프레젠테이션 면접용이었다.


자리로 돌아와 잡 포털 사이트를 열었다. 오늘은 또 어디에 이력서를 뿌려야 하나.




진짜 가고 싶은 회사에 지원해야지.


그런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 패기만 넘치던 때. 무한 긍정이 날 좋은 회사로 인도해 줄 거라고 믿었다. 그때의 나는 꼼꼼하게 고르고 따진 회사에만 지원서를 보냈다.


서류탈락, 면접 불합격,

그리고 또다시 서류탈락.


부정만 당할 뿐 무한 긍정은 나를 어디로도 인도해주지 않았다. 처음엔 그저 답답했다. 수도권 대학에 꼼꼼히 채워 넣은 대외 활동들까지.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문과라서? 자기소개서가 별로라서?


나중에는 그 답을 찾는 것이 의미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다고 해도 내 이력은 달라질 게 없다. 학점의 소수점 뒤 숫자 하나, 경험 한 줄조차 수정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제 와서 고칠 수 있는 항목은 고작 자기소개서였다. 문장의 앞 뒤를 바꾸거나 있어 보이는 단어를 고르는 것. 그래서 내 이력서를 1초라도 더 오래 읽을 수 있도록.


그때의 나는 없고, 여기 열심히 묻지 마 지원을 하는 카페인 중독자가 있다. 면접으로 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은 취업준비생이. 누구보다 더 격렬하게 싼값에 나를 파는 중이다.


전단지에는 최대 50% 세일이라고 큼지막하게 박혀있지만, 눈길조차 안 가는 전단지 아르바이트생처럼. 이쪽저쪽을 기웃거리며. 제출.


그렇게 내 폴더에는 비슷한 듯 다른 워드파일만 쌓이고 있다.




잡 포털 사이트를 닫고 다시 스크립트를 확인했다. 오후에 있을 면접은 괜찮은 외국계 기업이다. 3개월짜리 인턴 자리라는 것만 제외하곤.


하지만 바닷물이라도 마셔야 했다.

어제 본 화상 면접은 당일 바로 불합격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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