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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랜들리 Jul 31. 2023

한 치 앞의 일도 모를 날

02 면접

화상 면접은 2시.

지금부터 2시간 뒤다.


슬슬 집에 가서 노트북 세팅도 해보고 화장도 해야 했다. 근데 왜 이렇게 하기가 싫지.


고작 3개월짜리 인턴 면접인데 영어 프레젠테이션이라니까. 가성비가 좋지 않았다. 하기 싫을 만도 했다.


카페 소파에 축 처진 채로 눕다시피 기댔다. 천장에 달린 할로겐 등이 눈을 찌르는데 그대로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래도 해야지 뭐 어떡해.

나를 어르고 달래 집으로 돌아갔다.




말끔하게 머리도 묶고 옷도 갈아입었다. 카메라 위치를 봐야 하는데. 방안이 훤히 다 보이는 책장 뷰는 담고 싶진 않았다. 답답한 교수님 서재 느낌이 날 것 같았다.


고민을 하다 흰 벽을 배경 삼기로 하고, 책을 겹겹이 쌓아 노트북을 위에 얹었다. 카메라에는 짙은 와인색 카라 블라우스를 입은 내가 비쳤다. 준비는 끝났다.


2시 5분 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면접 전에는 이렇게 당장에라도 도망가고 싶은 기분을 참아내야 한다.


나를 자랑하는 일이지만, 너무 자랑처럼 보이면 안 된다. 자신감 넘치지만 겸손해 보이게. 이 말도 안 되는 모순을 어떻게 보여주란 말인가. 그리고 적나라하게 평가를 받는다. 합격, 불합격으로 너무나도 간단명료하게.


새카만 노트북 화면에 반사되는 얼굴은 상큼 발랄한 인턴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2시 정각.


검은 화면이 밝아지더니 젊은 여자 한 명이 화면에 비쳤다. 여자 직원은 빙긋 웃으며 잠깐 대기하라고 하더니 화면이 바뀌고 한 명이 더 보였다. 짧은 커트 머리에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 약간 깐깐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당신이구나. 오늘 내가 잘 보일 사람.


네, 시작하세요.


발표는 짧았던 준비 기간치고 수월하게 흘러갔다. 외운 대로 달달 말했지만 읽는 듯하지 않게 조심하며. 10분은 순식간이었다.


우리 회사 뭐 하는 회사인 줄 알아요?


약간 비꼬는 듯한 질문. 뭘 좀 알아보고 오긴 했니?라는 뉘앙스의.


이럴 줄 알고 저 질문도 준비했지. 정성껏 준비한 답변으로 앵무새처럼 대답했다. 영어 심문과 대답이 몇 번 더 오갔다. 이 정도면 더 없을 법한데 하다가도 깐깐한 물음들이 날아왔다.


그렇게 겨우 면접이 끝났다. 화면이 다시 깜깜해지자 그대로 누워 버렸다. 광대가 미세하게 떨렸다. 웃는 표정을 만들려고 너무 과하게 얼굴을 쓴 탓이었다.


면접관은 좀 냉랭했다. 물어보는 건 많았는데 탐탁지 않아 보였다. 이번 것도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생각보다 그런대로 덤덤한 기분이었다. 언제부턴가 귀하와 함께할 수 없게 되었다거나, 안타깝게도 불합격되었다거나 하는 문자들이 속상하지 않아졌다.


어제오늘 연달아 두 개의 면접을 봐서 피곤했다. 이대로 쉬다가 저녁쯤 자기소개서를 만져봐야겠다는 생각을 끝으로 잠들어버렸다.




집을 나오니 흰 아파트 위에 노을이 물들어 주황빛으로 반사되고 있었다. 슬리퍼를 칙칙 끌며 파스쿠찌로 갔다. 저녁 대신으로 달달한 핫초코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며.


노트북을 열어 자기소개서를 다시 뜯어보던 중, 오늘 면접을 본 외국계 회사에서 메일이 날아왔다.


벌써?


노을 지던 파스쿠찌에서,

그렇게 나는 외국계 회사에 채용되었다.



정말 바닷물은 마시기 싫었는데,

그래도 갈증은 해소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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