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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처럼 Jun 05. 2022

긴 이별

장인 어른의 죽음을 다녀와서

뜻밖 장인어른의 죽음을 듣게 되었다. 언제까지나 함께 할 것만 같았지만, 우리 곁을 떠나셨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듯 자연의 이치를 거스를 수는 없는가 보다. 그동안 얼마나 모진 세월을 보내셨을까? 처음 낯선 시골 영천을 들렀을 때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버스가 달릴 때 하마터면 머리가 천정에 부딪힐 뻔하기도 했다. 버스가 구불구불 비포장도로로 자양 댐을 지날 때면 햇빛에 비친 그 수면의 광경이 얼마나 멋있고 아름다웠던지 모른다.


몇 년 뒤 허름한 봉고차를 끌고 무면허를 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겁 많은 난 처가 식구들을 몽땅 태우고 산꼭대기 급경사의 보현산 천문대에 도전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목숨을 건 히말라야 등반대장과 같았다. 또 다른 기억은 약 30년 전 한겨울, 먼 길을 찾아온 사위를 맞아 식구들이 다 잠든 때, 해가 뜨기 전 이른 새벽, 홀로 일어나 아랫방에 잠든 사위 혹시 추위에 떨지 않을까 염려하셨던지 아궁이에 군불을 때어 방바닥을 뜨겁게 데워주시던 때가 몹시 그리워진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희미한 불빛 아래 마주할 때면 장인어른은 좀처럼 알아듣기 힘든 사투리로 혼잣말로 똑같은 말을 반복하시면 나는 무슨 이야기일지 귀를 세우고 중간마다 끊어진 이야기 필름을 이어 붙이고 추리해서 질문한다. 그러면 장인어른은 더욱 신이 나셔서 재미나게 이야기하시던 때가 엊그제인 것 같은데 인생 새옹지마라 했던가 다리가 불편해지고, 장기간의 요양원 생활로 힘든 가운데도 어쩌다 한 번씩 들르는 우리를 반기셨든 게 엊그제인데 몹쓸 코로나바이러스는 언제나 불사조 같았던 장인어른도 쓰러뜨렸다. 그동안 용돈이며 맛있는 음식도 제대로 한번 대접하지 못해 너무 죄스럽고 아쉽다.


하지만 이제 기나긴 잠으로 들어가셨다. 더는 고통과 긴 한숨이 없는 깊은 잠을 청하셨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우리네 조상이 늘 그러했던 것처럼 똑같은 길로 들어서셨다. 이 모든 애잔한 모습을 보고 계실 하늘의 아버지는 얼마나 마음이 안타까우실까? 지난 사흘 죽음과 함께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내가 보던 성경 잠언에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던가


여러 날 동안 평소에 해보지 못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보았다. 누구나 할 것 없이 결국 한 줌의 재로 변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그동안 너무 과한 욕심을 부린 건 아닌지 돌이켜본다. 좀 더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도록 해야겠지. 사실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살아생전보다 죽고 난 후가 아닐까? 초상집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가 제대로 된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


일요일 오후 3시경 영천 국립호국원에 도착했다.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자식이었을 이름 모를 수많은 망자의 모습과 함께 장인어른이 잠들 자리를 살펴보았다. 그곳엔 조용함과 숙연함이 함께 했고 바깥 주변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더는 세상의 온갖 미움과 안타까움이 없는 더없이 포근한 안식처였다. 조물주의 뜻이라면 먼 훗날 예수 곁 강도가 희망했던 부활을 기대할 수 있을까?. 더는 우리의 얼굴에서 눈물과 고통이 사라질 때를 그려본다. 죽음이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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