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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연처럼 Jun 17. 2024

고장 난 재봉틀

어머니는 손재주가 좋으시다. 물론 타고난 손재주가 좋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서당께 삼 년이면 풍을 읊는다"라고 했던가 아버지의 오랜 봉제 기술로 어깨너머로 배운 덕에 좋은 기술을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늘 재봉틀이 분신처럼 따라다녔다.


얼마 전 어머니 집의 이사 때도 다른 건 다 버리더라도 오래된 골동품 같은 재봉틀 역시 함께 싣고 서울로 이사를 왔다. 어머니께서는 이것을 통해 간단한 옷 수선은 물론 원피스나 정장 옷까지 손수 해 입으신다. 그러므로 재봉틀은 참 여러모로 꼭 필요한 물건이다.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얼마 전 여름옷을 만들기 위해 원단 시장으로 가서 천을 사 오셨다. 그런데 그동안 잘 작동되던 재봉틀이 갑자기 모터의 이상으로 고장이 나 아무런 동작도 하지 못하는 식물인간처럼 되었다. 이로써 여름옷을 만들려고 했던 어머니의 야심 찬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상황이 되었다.


재봉틀 모터를 하나 사 달라는 SOS 요청을 받은 나는 어려운 숙제를 하나 맡게 되었다. 평소 기계만 보면 두려움이 먼저 다가오는 기계치라 이 어려운 숙제를 해결해야 하니 무척 고민스러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다. 단순한 모터 이상이라 처음에는 모터만 구매할 생각을 해보았으나 기계를 잘 모르는 기계치가 모터를 샀음에도 만약 잘되지 않으면 돈이 이중으로 들고 시간만 지체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스쳐 갔다.


그래서 모터만 사는 것보다는 비용을 좀 더 쓰더라도 본체와 모터가 완비된 완제품을 사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이제 나는 수시로 당근 마켓을 들어가 보며 싸고 좋아 보이는 부라더 미싱을 찾게 되었다. 하지만 조건에 맞는 재봉틀은 금세 나가 버리고 조금 비싼 듯한 제품만 팔리지 않은 채 구매자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날씨가 계속 더워지는 요즘 더는 지체할 수가 없어 판매가 10만 원 정도를 예상하고 중고 부라더 미싱을 입양하기로 마음먹었다. 수시로 당근 마켓을 들어가 보기를 며칠째 꽤 괜찮아 보이는 재봉틀을 발견했다. 기종은 이것을 X200 모델이었다. 꽤 새것처럼 좋아 보이는 이 제품을 싣고 어머니 집에 도착했다.


이제 제일 첫 관문인 바늘에 실을 꿰는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원래 사용하던 구형의 재봉틀과는 구조가 달라 실을 끼기가 쉽지 않았다. 어머니와 난 난감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나는 구글 검색을 통해 모델의 사용 설명서를 찾고 유튜브 방송을 통해 실을 끼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를 썼다. 우선 재봉틀의 구조와 기능을 파악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다 시도해 보며 양동 작전을 폈다.


이러한 온갖 노력에도 실 끼우는 것은 난공불락의 바벨론 요새처럼 어려웠다. 설령 어렵게 실을 끼워도 바느질이 제대로 되지 않아 몇 시간째 땀만 뻘뻘 흘리며 우리를 지치게 했다. 어렵게 구한 재봉틀이 무용지물이 될까 노심초사한 불길한 예감이 공포처럼 다가왔다. 노모는 힘드시다고 휴식을 위해 침대 위로 가셨다.


하지만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속담을 기억하며 다시 한번 설명서와 동영상을 반복해서 보며 재도전하기를 여러 차례 이번에는 제대로 되기를 학수고대했지만, 이번에도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옛날 권투 선수 홍수환의 칠전팔기 도전 정신으로 재도전하기를 몇 차례 드디어 정상적으로 실이 끼워졌는지 구사일생으로 정상적인 바느질의 가능성이 실낱같은 희망으로 다가왔다.


모친은 본체의 미세 조정 다이얼을 어렵게 조정하고 난 후 바느질이 제대로 되기 시작했다. 히말라야 등반의 기쁨이 이런 것인가 생각될 정도로 나와 80대 중반의 노모와 난 어려운 관문을 뚫고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나는 아직 재봉틀 바늘구멍에 실을 잘 끼우지 못한다. 그러나 노모는 눈이 잘 보이지 않음에도 신기할 정도로 실을 곧잘 끼운다. 이제 남은 단계는 준비된 여름 천으로 여름옷을 만드는 일이 남았다. 어머니의 주변 교우들은 손수 해 입으신 옷을 보며 그 솜씨에 깜짝 놀란다. 80대 중반이라 몸 하나도 돌보기 어려운데 손수 옷까지 해 입으실 정도이니 입이 쩍 벌어질 정도다.


올 한 해도 손수 만드신 여름옷으로 무더운 날씨를 잘 넘기길 기원해 본다. 나이 드신 모친이 오래도록 바느질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모든 신체 기능이 젊을 때처럼 정상적으로 돌아올 아름다운 신세계의 행복한 때를 꿈꾸어 본다.



욥기 33:25 "그의 살을 어린 시절보다 더 고와지게 하고 그를 젊음의 활력이 넘치던 날로 돌아가게 하여라 "

고린도전서 15:26 "그리고 맨 마지막 적인 죽음이 없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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