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과 "죽는 것"의 차이

인생은 왜 이토록 허망히도 끝나는 것인가?

by 자연처럼

엄마의 뱃속을 헤엄치던 태아는 "응애"하며 요란한 울음으로 세상을 맞이한다.가족들은 엄마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을 받으며 백일을 맞은 아기에게 외줄 타기를 성공한 곡예사를 환영하듯 무사함과 생존에 감사한다.무럭무럭 자란 1년이면 가족들은 돌잔치를 베풀며 즐거운 날을 맞는다.


매년 지키는 생일 잔치에 더해서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환갑(60세), 진갑(61세) 미수(66세) 고희(70세) 희수(77세) 선수(80세) 88세(미수) 90세(졸 수) 99세(백수) 100세(상수)와 같이 오래 살아있음을 기념하기도 한다. 살아있는 이와 후손들은 함께 기뻐하며 이러한 행복한 날들이 지속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아기의 태어남은 새로운 인생의 축복된 시작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죽음을 향한 긴 여정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태어나는 것= 죽으로 가는 것으로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엄마와 아기의 영원히 함께해야 할 행복한 인연들은 숙명처럼 반드시 이별해야 한다. 가을이면 아름다운 단풍이 그 수명을 다하듯 떠나야만 한다. 영원토록 함께 할 것만 같았던 행복했던 날들을 그리워하며 슬픈 작별을 고해야만 한다.

이렇듯 지난 역사의 시간은 태어남과 죽음의 연속이었다.


그동안 이곳 지구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간 것일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사는 것과 죽는 것이 어찌 보면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참으로 긴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어려서는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고, 20~30대 한창때는 청춘이라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죽음이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고, 40~50대 철이 들어갈 무렵에는 바삐 사느라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60대에는 살아간 날들보다 남은 날이 적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면 배우는데 짧게는 20여 년 길게는 약 30년 정도의 시간을 보낸다. 이것도 모자라서 어찌 보면 죽기 전까지 배움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이렇듯 배움의 간절한 욕구로 학창 시절 밤을 지새우며 공부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60대~70대까지 배움의 기회를 놓친 나머지 늦깎이 배움의 열정을 불태운다. 그러나 이토록 어렵게 배운 지식을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한 채 우리의 인생은 시들어 버리고 만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일반인은 죽을 때까지 뇌의 사용량은 평생 3%의 뇌도 사용하지 못하며, 아인슈타인 박사 같은 사람도 10% 정도밖에 사용하지 못했다고 하니 우리의 두뇌 용량이 얼마나 대단한지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치로 생각해서 두뇌 용량에 맞춰 계산해 보면 최소한 2,000년 이상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현재의 우리 수명은 자동차로 치면 설계자가 최소한 100만 km 이상을 운행하도록 설계했음에도 불구하고, 10만 km도 제대로 타지 못하고 이내 망가지는 모순처럼 보이는 상황이 우리의 인생이다. 이처럼 우리의 정신 속엔 배움과 영원히 살고자 하는 욕망이 본능처럼 내재해 있다.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성경은 전도서 3:11 "그들의 마음속에 영원이라는 개념을 넣어 주셨다"그러므로 오래 살려고 애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이러한 의문을 갖게 한다. 우리에겐 영원한 삶에 대한 욕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인생은 왜 이토록 허망해도 쉽게 끝나버리는가? 70대, 80대 노인들의 오래 살려고 하는 노력은 어떠한가?


만보계를 허리에 차고, 매일 같이 만보 걷기에 도전하는가 하면 주말이면 가까운 산으로 무거운 배낭을 메고 지극정성으로 정기적인 산행을 나서기도 한다. 그리고 혈압이며, 당뇨, 고지혈증약들 무수히 많은 약봉지를 타기 위한 처절한 노력은 너무나도 안타깝다. 이러한 온갖 노력에도 언젠가는 사랑하는 이들과 기나긴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이렇듯 우리의 삶에 대한 강한 욕구는 계절이 순환하듯 우리의 생명 연장에 대한 바람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그러므로 성서는 호흡이 있을 때, 좀 더 인생의 활기가 넘칠 때 이렇게 당부한다.

오늘 하루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한 하루 지내시길 바랍니다.


전도서 12:13 "모든 것을 들려주었으니 결론은 이러하다. 참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