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행복과 삶의 의미를 찾아서
세계 곳곳을 여행한다는 것은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과 경제적인 제약으로 일요일 저녁이면 가끔 EBS의 여행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세계테마기행을 본다.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그 나라 원주민들의 고유한 생활과 문화를 다양하게 소개하는 재미있는 프로이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이유는 안방에서 세계 곳곳의 멋진 경관을 구경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그곳 원주민들이 가진 독특한 문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아프리카나 동남아,중국의 오지를 가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종교 관습을 소개하는 것을 흥미 있게 보곤 한다. 보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문명이 우리보다 덜 발달한 곳이라 하더라도 자신들의 신을 찾는 행위를 보면 종교심만큼은 우리와 별다른 바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들은 가족 중에서 누군가 태어나거나 죽었을 때 아니면 가족 중에 누군가가 병이 들었을 때 하늘에서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을 때와같이 자신들의 힘으로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때 본능에 따라 신을 찾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나라와 지역에 따라 그 형태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그 나름의 신을 찾는 행위를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그러면 왜 우리 인간은 왜 이렇게 신을 찾게 되는 걸까?
그 이유 중 하나는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만이 특별히 영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있기 때문이다. 이 영성은 내가 원하든 원치 않던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본능이다. 개들이 자기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고, 철새들이 제철이 되면 먹이를 찾아서 먼 거리를 이동하듯 자연스러운 일이다. 식물 역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 적절한 물과 햇빛을 꼭 필요로 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이만 아니다. 젖먹이 어린 아기가 엄마의 품에 안겨서 행복을 느끼고 조금 커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아장아장 걸을 때도 엄마의 따뜻한 체온을 통해서 안도감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영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매일매일 먹고 마시는 것과 같은 물질적인 것만으로는 내면의 공허감을 채울 수가 없다. 우리가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그 이상이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4:4 "사람은 빵으로만 살 수 없다" (신 영어 성서) 또 다른 이유는 인간은 제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짧은 인생 경험과 배운 지식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가끔은 세월이 지나고 나서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터라고 후회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현재와 같이 과학과 의학이 고도로 발달한 세상이지만 우리는 내일의 일기 예보를 정확히 맞출 수가 없고, 코로나19와 같은 돌발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온 세계가 우왕좌왕하며 성공적으로 대처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문제는 많고 해결책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 중 아무도 우리 자신에게 내일 무슨 일이 닥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러한 외부적인 요인 외에도 자기가 자기를 잘 믿지 못하는 때도 있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극히 나약한 한 인간일 뿐이고 우리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솔로몬은 그 점을 잘 깨달았다. 권력과 부와 탁월한 지혜 등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져본 사람이었지만 인생의 행복과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자기 경험을 이렇게 말하였다. 전도서 12:13 "모든 것을 들려주었으니 이러하다. 참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다."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므로 결론은 이러하다.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선진국이든 그렇지 않든 우리가 어떤 사회에 속해 있던지 상관없이 우리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 때문에 자연스럽게 신을 찾게 되어있고 경험과 한계를 절감하게 되므로 이러한 하느님을 찾는 행위를 통해서만 참다운 행복과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