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최근 TV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니 최근 유럽에서는 가톨릭교회와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예전보다 대중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어서 신자들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이러한 교회들이 부동산 매물로 나온 곳이 많다고 한다. 거래된 교회들은 미술관이나 서커스 연습장으로 바뀌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곳은 나이트클럽이나 술집으로 바뀌는 현실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기존 교회들은 설교해 줄 목사를 구하지 못해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어렵게 목사를 구해 와야 할 정도라고 하니 유럽의 교회들의 현실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우리가 사는 한국도 앞으로 점점 그러한 사태를 맞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면 이처럼 사람들이 종교를 멀리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중 몇 가지 이유는 이러하다.
*경제적인 여유로 즐기는 게 좋아서
*먹고사는 게 바빠서
*아직은 젊어서 종교가 필요치 않아서
*종교를 믿어서 나의 삶이 달라질 게 없어서
*기성 종교의 과도한 헌금과 성직자들의 성 추문에 실망해서
*기타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들은 예전의 종교에 대한 열정은 식어버리고 이제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멀찌감치 종교와 떨어져 살려고 한다. 어쩌면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과연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세월이 가다 보면 장밋빛 같은 우리네 인생의 꿈은 일장춘몽처럼 깨어지기도 하고 이는 사업 실패의 어려움과 병마의 고통으로 죽음의 문턱을 겨우 살아남는가 하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을 경험하고 때론 가정 내에서 가족 간의 불화를 겪기도 하면서 생각의 변화를 하게 된다.
이처럼 다양한 이유로 스스로 헤어 나오기 힘든 상황에 부닥치게 되면 우리는 본능에 따라 신을 찾게 되고 종교에 대한 관심을 끌게 된다. 설사 이런저런 큰 어려움 없이 평탄하게 살아온 삶이라 하더라도 결국 우리의 인생은 한 줌의 흙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만만했던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제 다시 예전처럼 신앙생활을 해보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리의 영적 필요는 교회에 나가거나 일부 종교의식에 참석함으로 간단하게 만족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의식에 치중하는 종교가 감정적으로 호소력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인생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종교의 진정한 의미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한 끼의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한다. 메뉴를 고르고 뷔페식당을 선택했다고 하자. 여기에서 또 고민하게 된다. 좋아하는 음식을 접시에 신중하게 고른다. 아무거나 대충 접시에 채웠다가는 나중에 알게 된 맛있는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배를 채워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종교를 선택할 때 주변에 존재하는 아무런 종교나 그냥 쉽게 결정하게 된다면 예전의 똑같은 우를 범하게 될지 모르므로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의 식사를 위해 음식점을 선택하고 고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신중한 선택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일은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들과 친구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철저한 사전 조사를 통해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점과 관련해서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중요한 말씀을 하셨다. 마태복음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십시오.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널찍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14 반면에,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그 길이 비좁아서 그것을 찾아내는 사람이 적습니다."
진리의 길은 단순히 교회 건물이 크거나 신자가 많아서 결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한 외적으로 좋아 보이는 것은 진정한 내면의 모습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많은 종교 가운데 참 종교를 발견할 수 있을까?
디모데 후서 3:1-5 "마지막 날에 대처하기 어려운 위급한 때가 올 것입니다. 사람들은 돈을 사랑하고~하느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을 사랑하고"
고린도 후서 2:17 "우리는 많은 사람과는 달리 하느님의 말씀 장사꾼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