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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미의 colorful life Sep 16. 2021

해먹이 있는 드림하우스에 혼자 살 용기

가능한 최고를 선택하자

나쁘지 않은 지금의 집


30년 된 17평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거실 겸 안방 1개, 작은방 1개, 화장실 1개로 구성된 작은 아파트였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주로 사시는 터라 아파트는 좀 낡았지만 조용했다. 물론 남동향이라 해는 좀 잘 안 들긴 했다. 복도형 아파트로 복도 쪽 작은 방은 너무 어두웠다. 회사에서 차로 20분 남짓 거리로 출퇴근 시간조금 걸렸으나 혼자 살기에 눈에 띄는 부족함은 없었다.



우연히 만난 드림하우스


전세가 만료되어 연장을 고민하던 찰나 우연히 곧 입주예정인 신축 아파트를 구경하기로 했다. 회사와 3km 거리로 가까웠다. 부동산 아저씨에 이끌려 집을 보는 순간 탄성을 질렀다. 따뜻하게 해가 들어오는 남향, 엘리베이터를 집에서 잡을 수 있는 기능, 모든 짐을 넣고도 남을 붙박이장, 주방에는 블루투스 스피커가 내장되어 있었다. 방 3개에 거실, 화장실 2개, 욕조 하나, 혼자 살기 딱 좋은 소박한 25평의 아파트였다.


공인중개사 앞에선 나쁘지 않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모든 게 좋았다. 두근거렸다. 게다가 인근에 전세넘쳐나서 몇 층으로 할지 고를 수 있을 정도로 옵션이 많았다.



못 먹어도 GO


단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지금 살던 집보다 전세가 천만 원 정도 더 비쌌다. 맥시멀 리스트인 친구에게 고민 상담을 했다. 친구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명쾌하게 말했다. 친구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명랑했다.      


- 방 3개짜리 아파트라니. 신도시에서만 가능한 기회야. 무조건 GO야. 못 먹어도 GO야.     


뭘 못 먹는지는 모르겠지만 GO라니 GO 하기로 했다. 어쩌면 결심에 추진력 부스트를 달아줄 의견을 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고민 끝에 계약을 하기로 했다. 부모님은 그냥 살지 왜 번거롭게 집을 옮기냐고 하셨지만 이사를 행했다. 그리고 곧 그 집을 사랑하게 되었다.  



해먹과 소파가 있는 집


방 하나는 서재로 꾸몄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이 가득한 책장 2개와 캠핑의자, 요가매트를 두었다. 멕시코에서 가져온 형광 노란색이 아름다운 매트를 깔았다.


다른 방 하나는 거울과 옷장이 있는 드레스룸으로 꾸몄다. 몬스테라를 조촐하게 놓았다.


거실에는 초록색의 해먹을 두었다. 해먹이라니. 소파를 넣을 공간도 없이 살다가 해먹을 흔들어도 좋을 공간이 생겼다. 해먹은 그냥 해먹이 아니었다. 대학 입학 이후로 지금까지 원룸, 투룸, 국내외 기숙사의 이 층 침대, 10평 남짓 주택까지 이사했지만 해먹을 둘 공간은 없었다. 해먹은 낭만이고 여유였다.


동생 내외가 쓰 회색의 패브릭 소파를 기부했다. 자취집에 다리가 달린 3인용 소파는 처음이었다. 소파 있는 내 집에 처음 살게 되었다.



취향의 탄생


안방은 아직 비어 있었다. 신축이라 붙박이 화장대는 었으므로 좋은 침대를 사기로 결심했다.  


원목의 침대 프레임을 한 달에 걸친 고민 끝에 들였다. 해외 매트릭스 매장을 방문하여 매장의 모든 매트릭스에 누워보았다. 매트릭스의 강도도 10개 이상으로 나눌 수 있고 매트릭스는 종류는 라텍스, 메모리폼 등등 다양하며 프레임도 모양에 따라 갈비형, 판상형, 소재에 따라 가죽, 원목 등을 다양하며 가격대도 천차만별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매트릭스도 언뜻 보면 비슷해 보였지만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6시간 동안 알게 된 것은 매트릭스마다 느낌이 천차만별이었다. 미국 대통령에게 납품되는 매트릭스, 핸드메이드 매트릭스 등 매트릭스의 세계는 넓고도 깊었다.


여러 번의 등(!) 면접과 사장님과의 상의 끝에 몸부림이 심한 사람은 중간보다 좀 더 딱딱하고 탄성이 있는 매트릭스가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트릭스에 취향이 생겼다. 씰리에서 반려 매트릭스를 만났고 할부로 구입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비싼 매트릭스였다.


부모님이 냉장고를 사주었다. 냉장고는 붙박이장처럼 집에 늘 있는 가전이라고 생각했으나 돈을 주고 사야 하는 것이었다. 내 생애 첫 새 냉장고였다. 냉장고를 감싸고 있는 비닐을 떼고 식재료를 넣었다. 왠지 감격스러웠다.


이미 결혼한 친구들이 남편과 했을 혼수 구입 및 집 꾸미기가 이런 기분일까?  


넓어진 거실에서는 내 사랑 몬스테라를 포함하여 식물을 마음껏 키울 수 있었다. 몬스테라 수경재배를 거듭했고 그의 자식들은 여러 방으로 뻗어 나갔다. 동생에게도 선물로 나눠주었다. 부모님 집에서 엄마의 반려식물이었던 야자나무를 입양했고 해가 좋은 남향집에서는 큰 노력하지 않아도 식물들이 커갔다. 자신감이 생겨 상추며 토마토까지 키우기 시작했지만 벌레의 습격에 도시농부로서의 야심 찬  접었다.



가장 남향의 집, 가장 행복


친구들도 나의 집을 사랑했다. 잠자고 뒹굴 공간이 충분하니 사람 초대하는데 망설임이 없어졌다. 반조리 식품을 사서 식사를 대접했다. 대구탕을 사서 집에서 끓였다. 1박 2일 동안 파티를 벌였다 멜론과 치즈와 와인을 먹었다.


덕질하는 친구들을 초대해 티브이로 사랑하는 우리의 가수의 예능을 보고 같이 웃었다.


새해에는 떡국을 먹고 어느 겨울의 아침에는 호박 수프를 끓여 먹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작은 양처럼 둘러앉아 캐럴을 들었다. 물론 손에는 맥주가 들려있었다. 친구들은 해먹에서 뒹굴고 과자를 먹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가장 남향의 집은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는 제격이었다. 겨울에는 주방까지 길게 해가 들고 해가 늦게 졌다. 여름에는 해는 창가에서만 맴돌았다. 에어컨을 틀 일이 별로 없었다.   


주말에는 집에서만 뒹굴어도 심심하지가 않고 마음 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원룸에서 살 때에는 하루 종일 집(이라고 부르고, 하나의 방)에 있으면 답답해서 집 앞 카페를 가든 괜스레 친구를 만나든 거리를 떠돌았다.


이제는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다가 지루하면 요가를 하러 작은방에 갔다. 몸이 뻐근하면 안방 욕조에서 반신욕을 했다. 태국에서 온 마사지 오일을 바르고 직접 만든 소이캔들을 켜고 반신욕을 했다. 사회생활을 하며 몸과 마음에 쌓인 피로와 먼지를 툴툴 털어버릴 수 있었다.


반신욕을 끝내면 H&M에서 몇천 원에 득템 한 포근한 노란 긴 타월을 안방에 깔고 바디로션을 발랐다. 극세사 가운을 걸치고 머리를 말리다 침대에 몸을 뉘어 잠이 들었다.



가능한 최고를 선택할 용기


그 집 이전에는 결혼 유예자로서의 방 한 두 칸에 내 몸을 뉘었었다. 미혼으로서의 나의 삶은 완벽하진 않지만 결혼 전까지는 이 정도로 만족하자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집을 선택하니 그만큼의 행복이 따라왔다. 혼자 살아도 적절한 수준의 큰 집은 필요했다.  


주말에도 밖을 돌아다니거나 호캉스를 가지 않아도 나의 남향집완벽했다. 나취향은 가구와 가전, 인테리어로 확대되었다. 사람들과 음식과 웃음을 나누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행복을 선택하고 최고를 선택했다.  


언젠가 누군가 나에게 의식주의 우선순위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뚜렷하게 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집에 살게 된 이후로 주가 절대적이고 식이 다음이고, 의는 추위와 더위를 피할 정도만 있으면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하게 되었다. 집에 대하여 뚜렷한 의견을 가지게 되었다. 


입사하고 얼마지 않았을 때 상사 중 하나는 집을 사라고 권하곤 했다. 하지만 20대에 내 이름으로 된 아파트를 사는 건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졌고 수중에는 돈이 없었다. 돈이 조금 모이고 회사 동기들이 결혼 후 대출을 끌어 집을 살 때에도 집을 살 생각은 하지 않았다. '결혼하면 그때 사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집에 살면서 집을 사고 싶어졌다. 집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혼자 큰 아파트에 살아보지 않았으면 집을 살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여전히 아직 결혼하기 전의 유예자처럼 '나쁘지 않은' 집에서 30대를 보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집에 살면서 집에 대한 욕망이 생겼고, 내 집을 사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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