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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미의 colorful life Sep 14. 2021

다용도실의 백골로 발견되지 않도록 신문을 구독하자

싱글의 도시괴담

옆자리에 앉은 차장님에게 돌싱인 친구가 있는데 보지도 않는 신문을 구독한다고 한다. 보지도 않는 신문을 왜 시키냐고 물으니 혹시 혼자 집안에서 무슨 일이 있어 쓰러지면 이웃에서 문 앞에 쌓인 신문을 보고 신고를 해줬음 하는 바람 때문이란다. 신문이 일종의 SOS구호인 셈이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싱글이면 요구르트든 신문이든 정기구독을 권했다고 한다. 듣고서 싱긋 웃고 말았다. 재밌는 친구의 재밌는 이야기구나 하면서. 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는 괴담 인지도 모르고서.


또 다른 싱글의 도시괴담이 있다. 신문으로 읽었는지 뉴스에서 접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사실이 아닌지도 모른다. 인터넷에 떠도는 풍문일 수도 있다. 이야기인 즉, 어떤 대학생이 한 달간 해외여행을 가겠노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통보했단다. 그리고 출국날 한국에서의 마지막 샤워를 했는데 화장실에 있던 마대가 문을 밀어버리고 화장실에 갇히고 말았단다. 당연히 가족과 친구들은 해외에 있다고 생각해서 찾지 않았고 가족이 한참 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집을 찾아갔을 때는 이미 백골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이 이야기는 내 주변 여러 독거인에게도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으나 많은 이야기가 그러하듯 이내 기억에서 잊혔다.

 

그리고 새 아파트에 이사 간 지 한 달이 안된 어느 봄 주말이었다. 날은 좋았고 동생 내외가 이사하고 처음으로 집에 놀러 오기로 했다. 함께 먹을 음식은 사 두었고 집안 청소는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으나 내 눈에 다용도실 바닥의 먼지가 들어왔다.

      

- 그래. 저 다용도실 바닥까지 치우고 샤워 후 정갈한 몸으로 손님을 맞이하자.

      

불현듯 청소에 대한 의지가 차올랐다. 이런 의지는 신내림을 받듯 드물게 찾아왔기에 나는 청소신을 영접해야만 했다. 핸드폰으로 서바이벌 음악 프로그램을 크게 틀어 둔 후 다용도실로 진격했다. 잠옷 바지가 젖을 수도 있으니 바지는 벗었다. 곰돌이 푸처럼 티셔츠만 입었다. 보는 사람 없기에 관계없었고 다용도실 청소까지 결심한 자신이 기특했다. 수도꼭지를 돌렸고 차가운 물이 뿜어 나왔다. 청소솔을 찾느라 청소도구함을 뒤지는 동안 엉덩이가 문을 스쳤고 문은 닫혔다. 3분 정도의 짧은 청소 끝에 먼지와 몇 가닥의 머리카락을 전리품으로 얻었다. 흐뭇한 마음은 더욱 커졌다. 문 너머로 거실장 근처에 둔 핸드폰에서는 좋아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참가자가 우렁찬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 노래 잘하네. 오늘 우승하겠다. 이제 샤워해야겠다.

      

시선은 앞을 향했다. 문고리를 돌렸다. 문고리가 안 돌아갔다. 왜 이러지? 다시 돌렸다. 또 안 돌아간다. 마음이 살짝 급해졌다. 애써 침착을 찾으며 다시 문고리를 돌렸다. 정말 안 돌아간다.

 

갇힌 걸까? 문을 잠근 적이 없는데 갇힐 리가. 이렇게 속절없이 갇힐 리가, 왜 안에서 문을 여닫는 버튼이 없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갇혔다고 인지하자마자 몸이 빠른 속도로 굳었다.

      

- 어쩌지 어떻게 탈출하지.

      

밖엔 아무도 없고 방금 전까지 나를 춤추게 했던 핸드폰의 서바이벌 참가자의 노랫소리는 지나치게 컸다. 힘으로 문을 여는 수밖에 없었다.

 

시선은 위를 향했다. 오른쪽 문 위에 길게 나온 스토퍼를 오른쪽 손으로 움켜쥐었다. 내 키에 비해 높은 스토퍼를 잡으려고 온 힘을 모아 까치발을 했다. 종아리에 내 생명이 달렸다. 쥐가 나는 것 같았지만 갇혔다고 생각하니 평소답지 않게 민첩하게 종아리의 알을 모아 모아 발끝으로 설 수 있었다. 스토퍼를 잡았으나 손으로 쥔다고 해서 문을 뜯을 순 없었다. 문은 내 기대만큼 물렁하지 않았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시계는 없지만 체감 상 5분이 지났다.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흘리듯 들었던 화장실의 백골 도시괴담이 생각났다. 이렇게 백골로 발견될 순 없었다. 그러기엔 이룬 것이 없는 특색 없는 삶이었다. 특히 아랫도리를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떼다 남은 눈곱이 있는 얼굴로 발견될 순 없었다.

      

시선은 밖을 향했다. 세탁기 뒤로 창문이 보였다.

      

- 소리를 질러볼까?

      

세탁기 때문에 창문 가까이 접근하기는 어려웠지만 있는 힘껏 다가가서 소리를 질렀다.

     

- 여기 XXX호 다용도실에 사람 있어요. 살려주세요. 갇혔어요.  

    

살려주세요. 태어나서 남이 말하는 걸 들은 적도 없지만 처음 입 밖으로 내뱉어본 문장. 내 입에서 내고 내 귀로 들리는 그 문장이 생경했다. 창문으로 소리를 질렀지만 집은 13층이었다. 길가에 있었다. 4차선의 자동차 소음에 목소리가 묻혔다. 바깥에서 들릴 리가 없었다. 외마디 비명과 같은 구호 요청을 4~5번 외치던 목소리를 이내 작아졌다.

      

이제 시선은 아래를 향했다. 하수구가 있었다. 범죄영화나 좀비 영화에서 보면 하수구를 통해 아랫집 윗집에 신호를 전달하곤 하지 않는가. 잡지식이 여기서 발휘되었다. 대사는 전과 동일했으나 톤은 애절해졌다. 시계가 없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으나 체감 상 30분은 흐른 듯했다. 아랫집은 답이 없었다. 핸드폰은 아스라이 저 먼 곳에서 시끄러운 경연곡을 부르고 있었다.


아 그렇다. 나는 다용도실에 갇히고 만 것이다. 실감이 났다. 윗도리만 입고 눈곱 낀 곰돌이 푸로 발견될 것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었다. 발견되지 못해 이곳에서 고독사 할 것을 두려워해야 했던 것이다.

 

다행히 바깥은 아직 밝았고 2~3시간 뒤에 오기로 한 동생 내외를 떠 올렸다. 하지만 동생 내외가 닫힌 현관문 앞에서 다시 돌아갈 가능성도 있었다. 상상만으로 절망적이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내가 며칠이나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다용실의 물건들을 훑어보았다. 고장 난 심장은 여전히 빨리 뛰었다. 각종 세제와 접는 분홍 빨래 건조대, 수도꼭지, 물.

 

그래. 음식은 없지만 물은 있으니 며칠은 버틸 수 있을 것이었다. 하수구가 있으니 화장실을 해결할 수는 있겠다. 무단결근하면 회사에서 찾으러 올까? 아니. 주말 이후에도 며칠간 샌드위치 연휴였다. 회사에서 대리 하나 결근한다고 가정방문까지 하는 정성을 보일 리 만무했다. 꺼이꺼이 눈물이 났다. 가끔 삶의 끝을 상상하곤 했었지만 이런 차림은 아니었다. 아니다. 이렇게 하의 실종한 채로 삶을 포기할 순 없었다.

 

시선은 다시 뒤를 향했다. 각종 세제와 접는 분홍 빨래 건조대, 빨래 건조대의 빨래, 빨래집게의 쇠꼬챙이,


맞다. 저거다. 영화에서 보면 범죄의 대장들이 저 꼬챙이로 탈출하지 않는가. 맘이 급해졌다. 빨래집게를 분해해서 쇠꼬챙이만 빼냈다. 구불어져 있는 것을 악력으로 길게 만들었다. 흥분한 손놀림에 쇠꼬챙이에 찔린 손에선 피가 났다. 피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범죄영화에서 왜 이렇게 침착하지 못하게 도구를 쓰고 피를 질질 흘리면서 흘린 피도 신경을 쓰지 않나 했더니 실제로 쓰일 신경이 없었다. 그래. 문을 보니 꼬챙이가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있었다. 그냥 마구 찔렀다. 앞으로 뒤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그러다 달칵. 달칵


튕기듯 세상으로 돌아왔다. 왈칵 눈물이 흘렀다. 긴장한 종아리를 안고 주저앉아 손에서 피를 흘리며 울었다. 서바이벌 참가자는 우승 소감을 말하고 있었다. 다시 돌아온 이승은 놀랄 만큼 평온했다. 시계를 보았다. 갇힌 지 불과 15분이 지났는데 영겁처럼 느껴졌다. 날은 여전히 좋았다.

 

집에 오기로 한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생의 목소리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평온했다. 벌벌 떨며 꾸우꾸우 울며 방금 있었던 일을 말하니 동생이 크게 웃었다. 그래서

      

- 너 언니 집에 왔는데 언니가 문 안 열어주면 어떡할 거니. 경찰에 신고할 거니.      

- 아니. 그냥 언니 무슨 일 있나 보다 하고 돌아올 거야

     

하고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는 동생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1도 없었다. 참 밝았다.


회사에 가서 옆 자리 차장님에게 곰돌이 푸 백골로 발견될 뻔한 일화를 말하며 무단결근하면 가정방문하실 거냐고 하니 하루 가지고는 어림도 없단다. 한 3일 되면 그때 생각해본단다.


그러고 보니 회사 시스템 상 주소도 아직 업데이트해 놓지 않았다. 생존을 위해 부리나케 업데이트한다. 그리고 다이소에 가서 문 닫힘 방지 턱을 허겁지겁 10개는 샀다. 큰 거 5개. 작은 거 5개.

 

근처 사는 독거인들에게는 엄중한 상황임을 선포했다. 사뭇 목소리도 얼굴도 근엄하고 진지해졌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서로 카톡 1이라도 보내서 확인해야 한다며 주지시켰다. 친구 어머니 아버지의 전화번호도 주고받는다. 동생에게는 집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마지막으로 아파트 관리실에 전화해서 왜 이런 거냐며 갇혔다고 성토했다. 내 이야기를 듣던 관리실 직원 아주머니께서 큰일 날 뻔했다며 위로해주시는 덕에 화가 누그러졌다. 그런데 아주머니 말씀으로는 다용도실, 베란다실처럼 밖에서 누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은 집 안에서 문을 잠그도록 되어 있단다. 그럼 열어줄 동거인이 없는 독거인은 어찌하나요.


결국 다용도실 찬장에 문을 찌를 수 있는 젓가락 하나를 뒀다. 동생은 웃으며 라면이나 빵 같은 먹을 것도 찬장에 구비해 놓으라고 한다. 나는 심각한데 다들 재밌다.


혹시 모를 비상사태를 위해 구몬이라도 신청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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